민주 유력주자들의 자멸에 힘입어
주변 인사들의 잇따른 극단적 선택
말이 흉측해야 점수를 더 얻는 구조
어느 구름에 비가 든 줄을 누가 알랴
‘이재명 사법리스크’라는 표현이 시나브로 언론에서 사라지고 있다. 한창 관련 기사가 쏟아질 때는 당장이라도 이 대표가 사법적 단죄를 받아 정치권에서 맥없이 밀려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런데 위기에 몰리는 것이 아니라 그 소동을 뚫고 나와 버젓이 정치 전면에서 권력투쟁을 이끌고 있었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간발의 차이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패배했지만 ‘정치적 사회적 강자’임을 대중에게 인식시키기엔 부족함이 없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승부였다.
민주 유력주자들의 자멸에 힘입어
그간의 온갖 추문과 의혹과 혐의들로 보자면 여당의 대선 후보는커녕 정치적 추방을 면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 처지였다. 그렇지만 그는 이미 정치적 거물이 돼 있었다. 반면에 문재인 전 대통령의 직계이자 유력한 차기 주자군(群)을 형성하고 있던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 제풀에 나가떨어졌다. 김 전 지사는 포털사이트 댓글 조작으로, 안 전 지사는 비서 성추행과 위력에 의한 간음 등의 죄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조 전 장관은 감찰 무마와 입학업무 방해 등의 혐의로 2심에서까지 2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의 불개입·관망의 태도는 민주당 이 대표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법하다.
민주당 이 대표는 201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안 전 지사의 득표율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3위에 그쳤었다. 그때 후보별 득표율은 문 후보 47.8%, 안 후보 36.7%, 이 후보 15.3%였다.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해 “여러분의 손으로 무덤을 파자. 우리의 손으로 그를 잡아 역사 속으로, 박정희의 유해 옆으로 보내주자”(2016년 12월 3일)라고 하는 등 모진 말을 쏟아냈으나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 덕분에 그만큼이라도 표를 얻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더불어민주당 유력자들 가운데, 혼자만 법망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 대표의 경우는 말 그대로 천운(天運)이었다고 하겠다. 2018년부터 시작된 선거법 위반 재판에서도 운은 그의 편이었다. 이듬해 대법원이 2심의 유죄판결(벌금 300만원)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덕분에 기사회생한 것이다. 만약 2심 선고대로 확정됐다면 그는 경기도 지사직을 내놔야 할 정도가 아니라 2022년 대선에도 출마할 수 없었을 터였다.
그 재판 이전에도 4개의 전과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형수에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흉측한 욕설을 퍼부어댔다. 아는 사람은 다 알만큼 그 욕설이 육성으로 유권자들에게 전파됐다. 배우 김부선 씨와의 스캔들은 김 씨 자신의 폭로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지금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이 대표와 그의 추종자들이 어떻게 김 씨를 형사고소·고발하지 않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주변 인사들의 잇따른 극단적 선택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는 2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후보직을 꿰찼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박용진 의원 등을 거뜬히 제친 것이다. 이 또한 의외적 현상이었다. 이 전 총리가 너무 무력한 모습을 보인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당원들은 이 대표의 의외성과 그의 악구(惡口)에 매료됐던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후 대선후보로서 강력한 파워를 과시했지만, 법망이 늘 그의 주변에서 어른거렸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성남 FC 후원금 의혹, 불법 대북 송금 의혹,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위증교사 의혹 등 갖가지 범죄 의혹이 그를 따라다녔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자신 및 부인 사건과 어떤 식으로든 연루된 인사들이 까닭 모르게 죽어가는 미스터리가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는 지금 7개 사건, 11개 혐의로 4개의 재판을 받고 있으며, 이제까지 6명의 주변 혹은 유관 인사가 사망했다. 이 중 1명만이 지병으로 인한 사망이었고 다른 5명은 ‘극단적 선택’이었다. 이 얼마나 으스스하고 기괴한 사건들인가. 그런데도 이 대표는 건재할 정도가 아니라 승승장구하고 있다. 훗날 ‘한국 현대정치 미스터리’ 순위에 오를만한 일일 텐데도….
그는 지난 18일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85.40%를 얻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압도적 득표라기보다는 싹쓸이였다. 2년 전의 전당대회(23년 8월 28일)에서 확보한 득표율 77.77%보다 7.63%포인트나 더 얻어 자신이 세웠던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그만큼 이 대표의 민주당 장악력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몇 차례 당내 경선의 와중에 이 대표에 대한 도전 세력은 씨가 말라버렸다고 하겠다. 2위 김두관 후보의 득표율은 12.12%에 불과했다.
말이 흉측해야 점수를 더 얻는 구조
이날 치러진 최고위원 경선에서는 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초반에 1위로 부상했던 정봉주 후보가 ‘명팔이(이재명 팔이) 척결’ 한 마디에 탈락의 나락으로 추락해 버렸다. 반면에 김민석 후보는, 이 대표가 “왜 이렇게 김 의원 표가 안 나오는 것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동영상이 확산한 데 힘입어 1위를 차지했다. “김건희 살인자”를 외쳐댄(14일 법제사법위원회 청문회) 전현희 후보는 당락 턱걸이 상황에서 일약 2위로 뛰어올랐다. 더 흉측한 말일수록 더 점수를 얻게 되는 민주당 특유의 방정식이다.
이로써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민주당임이 전 국민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이재명 대표가 명실상부한 ‘민주당의 아버지’라는 사실에도 변경 불가능한 진실이라는 확인 도장이 찍혔다. 북한 김정은 집단의 경우 외엔 어디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선거 과정과 결과를 대한민국의 제1정당이 자랑스레 보여주다니!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정당 모습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최고위원 선거 4위로 당선된 김병주 의원은 19일 SBS라디오 ‘김태연의 정치쇼’에 출연, 이 대표가 피선거권이 박탈될 수 있는 형을 선고받으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묻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상황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없는 죄를 만들면 재판부도 국민적 저항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국민적 저항을 받을 거라는 것을 재판부도 너무나 잘 알 것이다. 현명한 판단을 할 거라고 본다.”
4성 장군에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사람의 인식이다. 이 대표를 위해서라면 무슨 말이든, 어떤 행동이든 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게 이 대표와 그 극렬추종 세력의 작전계획인 듯하다. 이재명 팬덤의 절대적 지지를 민의의 표출로 여기도록 국민의 착시를 유도하면서 검찰뿐만 아니라 법원까지 압박해 위축시키는 수법이다.
어느 구름에 비가 든 줄을 누가 알랴
분위기로만 말한다면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 대표에 대한 사법적 징벌과 관련, 검찰의 열의가 갈수록 식는 인상이다. 법원도 서두는 빛이 없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이 느긋하다. 체포동의안 통과를 막으려고 단식투쟁까지 하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 부인을 우습게 알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는 것 같다. 과거엔 외면으로 일관하던 여당 대표와의 회담을 먼저 제의하면서 대통령 축하 난(蘭)을 두고는 대통령실과 진실게임을 벌이는 데 계산이 없겠는가. 이제 ‘국민적 저항’이라는 가장 강력한 방패까지 갖췄다는 자신감의 발로로 보인다.
“나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시오.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할 것입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1953년 쿠데타 혐의로 법정에 서서 한 말이다.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는 좌파의 자기 합리화 슬로건이 이에서 비롯됐다.
이재명 대표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시오. 그건 무효가 될 것입니다. 여론이 나를 무죄로 할 것이니까요.”
2심 재판에서까지 2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가 감옥에 있지 않고 정치권을 활보하면서 기세등등 권세 자랑을 하는 시대다. 아직 1심 판결이 언제 날지도 확실하지 않은 이 대표가 겁낼 일이 뭐 있겠는가. 언론들이 예상하듯 10월에 1심 선고가 난다고 해도 유죄를 속단할 수는 없고, 설령 유죄라고 한들 3심 확정판결 때까지는 부지하세월일 수가 있다. 이 대표처럼 닳고 닳은 사람이 그런 재판을 두려워하랴.
아무래도 오랜 풍자 경구(警句)가 진리로 굳어질 조짐이다.
무권유죄(無權有罪) 유권무죄(有權無罪)!
물론 이것으로 대미(大尾)가 될 것은 아니다. 어느 구름에 비가 들은 줄을 누가 알겠는가.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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