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가족은 부모와 자녀, 그리고 가까운 친족들이 함께 거주하며 협력하는 공동체로 인식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1인 가구의 증가, 비혼 인구의 증가, 친족 공동체의 해체 등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2023년 가족실태조사결과’를 보면 1인 가구의 비율은 전체 가구의 33.6%로 2010년의 15.8%에서 두 배나 증가했다. 또 전체 응답자 중 47.4%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에 동의했는데 20대의 경우는 그 비율이 66.9%나 된다. 이처럼 급격한 가족형태의 변화는 법률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유류분 제도와 친족상도례에 대한 위헌 결정은 이러한 가족 형태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유류분 제도는 경제적으로 능력이 없는 상속인을 보호하고, 특정한 상속인이 모든 재산을 물려받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가족 공동체의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는 유언에 의한 재산 처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고, 변화하는 가족의 형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올해 4월 헌법재판소는 형제자매는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나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 등이 거의 인정되지 않으므로,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규정은 위헌이고, 패륜적인 행위를 한 상속인에게 유류분 상실사유를 정하지 않은 부분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친족상도례 규정은, 친족 공동체는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관리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로, 친족간에 발생한 재산 범죄에 대해서는 친족 내부의 결정을 존중하고 국가 형벌권이 개입하지 않는 제도다. 이 규정 또한 친족 간 유대관계가 약화되고 친족 간 재산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올해 6월 헌법재판소는 친족상도례 규정은 형사 피해자의 재판 절차 진술권을 침해하고, 취약한 지위에 있는 피해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이는 법률이 더 이상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다양한 가족 형태와 현대적 가치관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65세 인구의 비율이 전체의 20%에 이르는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상속과 유언 제도에 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사망할 경우, 법률에서 정한 상속순위에 따라 상속재산을 분배하는 법정상속이 일반적이다. 법정상속 제도는 전통적인 가족제도 하에서 상속인들간의 분쟁을 최소화하고 가족 공동체의 재산을 유지하는데 효과적인 제도다. 그러나 가족공동체가 약화되고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확산되면서, 사후에도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재산을 분배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사용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법정상속에 따르면 비혼이거나 결혼을 했어도 자녀가 없는 경우에 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까운 친족에게 재산이 상속된다. 자녀가 없는 가구, 비혼 가구, 1인 가구의 경우에는 법정상속보다는 유언상속에 관심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유언과 관련한 법률규정은 미흡한 부분이 많고, 유언집행자의 지위와 권한에 관한 규정도 명확하지 않다. 유언상속이 일반적이지 않다 보니 축적된 판례도 많지 않다.
얼마 전 모 학교법인으로부터 유언과 관련된 법률자문을 받은 적이 있다. 학교 졸업생 중에 독신으로 살다가 돌아가신 분이 전 재산을 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하겠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사촌 동생이 짐을 정리하다가 유언장을 발견하고 학교에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다행히 법률에서 정한 요건을 갖춘 자필 유언이었기 때문에, 유언장 검인과 유언집행자 선임 등 절차를 거쳐서 고인의 재산을 학교법인이 취득할 수 있었다. 만약 법률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유언장이었거나, 유언장을 발견한 사촌동생이 학교에 연락을 하지 않았다면, 고인의 재산은 법정상속인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유언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상속재산을 둘러싼 법률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인데도, 법률에서는 유언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증명하는 방법을 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유언장이 분실되거나 상속인이 은닉할 위험성이 크고, 위 사례에서 보듯 유언의 존재 자체를 상속인이나 수유자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은 ‘유언서 보관법’이라는 특별법을 제정해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장을 법무국의 유언서 보관소에 보관할 수 있도록 하고, 상속인의 열람청구권, 유언서의 보관사실에 대한 증명서 제도를 도입했다. 또 자필 유언 방식을 완화해서 상속재산의 목록은 자필이 아닌 컴퓨터로 작성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도 유언서를 공적인 기관에서 보관하는 제도를 통해 유언의 존재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법적인 분쟁을 감소시키고, 유언장 작성 방법을 간소화하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유언은 삶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는 과정이며, 죽음 이후에 자신을 둘러싸고 발생할 수 있는 법률관계를 미리 준비하고 정리하는 작업이다. 누구나 쉽게 법률적인 효력을 갖춘 유언장을 작성할 수 있도록 작성 방법을 간소화하며, 유언의 효력을 명확히 보장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유언의 자유와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와 삶의 방식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유언상속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이유정 법무법인 원 대표변호사
〈필자〉1968년 서울 출신으로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서 법여성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제23기 사법연수원 수료 후 서울북부지방검찰청 검사로 2년간 근무했고, 1996년부터 변호사로 근무했다. 2010년에 법무법인 원으로 복귀해 헌법, 행정, 가족법 등을 중심으로 업무를 수행해 왔으며, 2020년 이후에는 ‘인공지능대응팀’과 ‘ESG센터’를 만들어 사회 변화에 따른 새로운 법률이슈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올해 4월 법률·세무 종합 컨설팅 프로그램인 ‘헤리티지 원’을 출시해 유언과 상속, 추모 문화를 확산하고 있다. 로펌의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이끌 적임자로 평가받아, 지난달 법무법인 원 업무집행대표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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