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쥔 사람들은 MBC를 KBS처럼 바꾸고 싶어 한다. (중략) 이진숙씨의 전임자가 사퇴하고 이진숙씨가 임명되는 과정에서 국회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사실을 보면,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눈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인사다. 가장 중요한 방송기관을 총괄하는 합의제 행정기관의 인사라기보다는 과거 군사 반란군들의 방송국 점령을 연상시킨다.” (‘MBC 지키자! 시민모임’ 기자회견문)
19일 오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신임 이사 임명 처분 집행정지 심문기일이 예정된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방통위의 위법적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비판하는 ‘MBC 지키자! 시민모임’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재판 시작 한 시간 전인 오전 10시, 법원 앞에 모인 이들은 “권력을 남용하는 대통령과 행정부를 사법부가 준엄하게 꾸짖어 달라”며 공영방송 이사 선임 효력 정지를 주장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5일 간 1만3271명의 시민들이 탄원서에 서명했다.
앞서 방문진 이사 공모에 지원했으나 탈락한 조능희, 송요훈, 송기원 3인은 지난 1일 방문진 이사 선임 취소소송을 제기하고 효력정지를 신청했다. 지난 5일 방문진 권태선 이사장과 김기중, 박선아 이사 등 현직 이사 3인 역시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9일 두 사건 관련 첫 심문이 예정됐으나 방통위 측이 연기를 요청해 19일로 심문기일이 연기됐고, 서울행정법원은 방문진 신임 이사 임명의 효력을 오는 26일까지 정지했다.
이날 기자회견 발언에 나선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은 “마지막 남은 공영방송 MBC가 살아남느냐 못하느냐 절박한 지경에 와있다”며 “윤석열 정권이 친일로 종종걸음 치고 있다. 내년 을사년에 친한일협정, 다시말해 제2의 을사늑약이 이뤄지려고 하는데, 하나 남은 공영방송 MBC가 깜깜이가 되어버리는 것을 우리가 보고만 있을 수 있겠나”라고 소리 높였다.
우희종 언론소비자주권행동 공동대표는 “오늘 이 자리는 단순히 한 공영방송의 의미를 되찾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완성을 향한 첫 걸음”이라며 “잘못된 언론이야말로 민주사회를 가로막는 가장 큰 원흉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가 제자리로 가기 위한 몸부림의 첫 시도라는 걸 많은 분들이 이해해달라”고 했다.
안진걸 민생문제연구소 소장은 “요즘 국민들이 ‘정권을 빼앗긴줄 알았는데 나라를 빼앗겼다는 탄식을 한다”며 “민주주의의 핵심은 언론자유, 방송 독립이다. 내용뿐 아니라 절차에서도 윤석열 정권과 이진숙 방통위는 너무나 많은 하자를 극명하게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안 소장은 “법원만이 제대로 제동을 걸어줄 수 있다”며 “오늘 방문진에 대한 선고로 (위법성을) 바로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탄원서에서 “방통위는 대통령 추천 2인, 국회 추천 3인으로 구성되는 합의제 행정기구임에도 불구하고 현 방통위는 대통령이 추천한 2인의 위원만으로 공영방송 MBC의 최고 의결기구인 방문진 이사를 선임했다”며 이사 선임이 “합의제 행정기구의 법적 취지를 위반한 위법적 행정처분이며 공영방송 MBC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 지배 간섭을 초래해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하는 중대한 위법행위”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진숙 방통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 당일 오전 11시에 취임식을 하고 오후 4시에 공영방송 이사 선임을 위한 의사일정을 공지한 후 오후 5시 부터 불과 1시간 30분만에 52명의 KBS 이사후보와 31명의 방문진 이사후보 중에서 7명의 KBS 이사와 6명의 방문진 이사를 선임했다”며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제대로 된 서류심사와 심층적인 면접심사 등 마땅히 거쳐야 할 심사절차가 생략된 졸속한 위법행위이며 국민 정서상으로나 상식적으로도 용납하기 어려운 국민에 대한 기만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 들어 김어준 방송의 편파성을 이유로 TBS는 해체 단계에 처해 있고 준공영방송의 역할을 하던 YTN은 자격미달의 악덕기업 유진그룹에 불하됐다. 법인카드로 꼬투리를 잡아 KBS 이사장을 해임시키고 사장을 갈아치운 KBS는 땡윤방송이라는 따가운 비판과 분노의 대상이 됐다”며 “현 정부에서 임명한 분이 장으로 있는 영화진흥위 조차 ‘객관성이 결여된 다큐멘터리로 독립영화 인정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불인정’한 이승만 다큐영화를 비싼 값에 사들여 어떻게든 방송하려는 KBS가 한국사회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라고 따져물었다.
그러면서 “마지막 남은 공영방송 MBC를 우리 사회가 지켜주지 못한다면 후대로부터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못난 세대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며 “후대의 평가보다 더 두려운 것은 견제받지 않은 권력과 사회적 강자들의 횡포하에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의 삶이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보수성향의 MBC제3노조(MBC노동조합)는 이날 오전 9시30분부터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방문진 이사 선임 취소소송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이어갔다.
이들은 “지난 수년간 MBC는 전례없는 불공정 보도로 국민의 지탄을 받아 왔다. 많은 MBC 직원들은 방문진 이사들의 교체부터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고 믿었다”며 “구 방문진 이사들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며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믿음은 철저히 배신당했다. 구 방문진 이사 3명이 이미 임기가 다 끝났는데도 자리에 계속 있겠다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고 주장했다.
MBC제3노조는 “민주당은 방통위원 국회 추천을 미뤄 방통위를 2인 체제로 만들더니, 탄핵으로 아예 마비시켰다. MBC를 장악하기 위해서라면 정부가 마비되고 나라가 무너져도 상관없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그 모든 배후에는 알량한 기득권을 놓치 않으려는 언론노조 MBC본부가 있을 것이다. 국민주권 회복을 위한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호소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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