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19세기, 미국 전역은 금광을 찾아 떠난 개척민들로 북적였다. ‘골드러시(Gold rush)’로 알려진 황금광 시대였다. 200여년이 흐른 지금, 두 번째 골드러시가 전 세계 산업계에 불고 있다.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금광 덕분이다. 아직 완전한 시장지배자가 없는 이 신 시장은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AI기술 확보에 혈안이 됐다.
그런데 최근 이 금광에 ‘황금’이 없을 수 있다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AI가 가진 가치가 그저 허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AI 자체는 대단하지만 이 기술이 실제로 큰 수익으로 연결될 만한 기술이나 서비스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투자자들 사이에선 ‘제2의 닷컴버블’이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 관련주 하락 추세에 ‘AI거품론’ 솔솔
‘AI거품론’이 불거지는 가장 큰 이유는 ‘엔비디아(NVIDIA)’의 주가 하락이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따르면 엔비디아 주가는 지난 6월 20일 140.76달러로 최고점을 돌파했다. 하지만 이후 엔비디아 주가는 순식간에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치솟던 주가는 6월 24일 118달러 대로 16% 넘게 하락했다.
엔비디아 주가는 7월 11일까지 다시 회복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듯했으나 8월 5일까지 25일 간 약 21% 하락, 최대 90.69달러까지 주가가 떨어졌다. 다음달인 8월 15일까지 다시 회복세를 보이며 종가 122.86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대 주가 대비 여전히 13% 떨어진 상태다. ‘구조대’가 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AI 대장주’인 엔비디아 주가가 하락하자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도 급락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주가는 한 달간 각각 8.5%, 19.9% 떨어졌다. 양사 모두 AI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제품을 생산한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5세대 모델 ‘HBM3’을 독점 공급 중이다.
증권가에서는 AI열풍에 의한 일시적 하락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투자 과열로 인한 급격한 주가 상승이 이뤄지면서 동시에 하락 폭도 함께 커졌다는 것. 실제로 KB증권에 따르면 엔비디아 주가가 최고점을 달성한 6월 10일~14일 국내 해외주식 투자자가 순매수한 금액은 3억1,542만달러(약 4,287억1,886만원)에 달했다. 직전 주에도 1억9,447만달러(약 2,643억6,251만원)를 매수했는데 이는 미국 증시 순매수 규모의 60%에 달하는 규모다.
김동원 KB리서치 본부장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플랫폼 등 올해 미국 빅테크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40% 증가한 2,060억달러(약 282조원)로 6년 만에 최대로 증가할 것”이라며 “빅테크 업체들에게 단기 수익성보다 장기 생존이 걸린 AI 생태계의 주도권 확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좋긴 한데”… 당장 체감 안 되는 ‘AI 특이점’
일각에서는 AI거품론이 단순 주가 하락 때문이 아닌 ‘상품성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모두 비슷한 기능의 AI서비스만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오픈AI의 ‘GPT-4o’, 구글의 ‘제미나이’,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 등 대형언어모델(LLM)들이 제공하는 AI서비스는 모두 챗GPT와 비슷한 대화형 AI서비스다. 또한 그림 생성형 AI도 수준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유사하다.
이는 AI서비스의 실제 이용자 수 감소로 이어지는 추세다. 트래픽 통계 사이트 ‘시밀러웹(Similarweb)’에 따르면 오픈AI의 챗GPT는 지난해 5월 18억명의 방문자 건수를 달성했다. 하지만 그해 8월 21% 줄었고 11월엔 3%, 12월엔 7% 줄었다. 올해 들어선 방문자 수 감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5, 6월 기준 방문자 수는 각각 6억3,700만명, 2억6,000만명으로 집계됐다. 각각 지난해 5월 대비 64.6%, 86% 감소한 수치다.
‘환각 현상(Hallucination)’도 AI서비스의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환각현상이란 AI가 거짓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교묘하게 말하는 것이다. AI가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표적 오류다. 정확한 정보 제공이 필수인 금융권 기업들이 거대 언어 모델 사용을 꺼리는 이유도 이 환각 현상 때문이다.
전문지식 분야일수록 환각 현상 발생 확률도 높아진다. 미국 맨해튼 칼리지·뉴욕시립대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GPT-3.5와 GPT-4가 연구 논문을 인용할 경우 각각 55%, 18%의 오류가 발생했다고 한다. GPT-4의 경우 큰 폭으로 환각현상이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한계가 뚜렷하다.
공동 연구팀은 “GPT와 같은 LLM은 심층신경망을 이용, 텍스트 시퀀스의 다음 단어를 예측하고 훈련 중 학습한 통계적 패턴에 따라 응답을 제공한다”며 “이 과정에서 챗GPT가 예측 알고리즘에 의존해 인용 정보를 생성했다면 정확한 정보와 거짓 정보를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 AI시장, ‘닷컴 버블’과 패턴 달라… 전문가들 “우려일 뿐”
경제·IT분야 전문가들 대다수는 AI거품론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과거 닷컴 버블과는 다르게 AI기술은 분명한 실체가 있고 응용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는 것.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Statista)’는 올해 AI산업 규모가 1,840억달러(약 249조 8,72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오는 2030년 8,260억달러(약 1,122조원)를 돌파할 전망이다.
미국 종합금융지주사 ‘골드만삭스’ 리서치의 피터 오펜하이머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AI기업 관련 주식이 상당히 상승했지만 버블에 빠진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며 “2000년대 붕괴한 닷컴 버블과 달리 AI 주식 시장은 1990년대 후반 암시된 예상 성장률보다 훨씬 낮다”고 분석했다.
이어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기술 주기의 비교적 초기 단계에 있다”며 “이는 AI산업이 추가적인 아웃퍼포먼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AI거품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최신 연구 결과도 있다. 폴란드 그단스크 공과대학 경영 경제학부의 마르신 포트리쿠스(Marcin Potrykus) 교수가 이달 발표한 연구다. 해당 연구에서 마르신 교수는 “AI 시장은 현재 도취 단계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도취 단계(euphoria phase)’란 투자자들이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흥분된 상태에 빠지는 시기다. 이 단계에선 시장이 급격히 성장해 투자자들이 주가가 계속 오를 것이란 착각에 빠진다. 이로 인해 매수에 집중하는 경향이 발생, 주가에 거품이 형성될 수 있다.
마르신 교수는 AI산업 주가 및 산업 발전 패턴을 닷컴 버블 사태와 비교했다. 비교 데이터는 1998년 10월 1일부터 2000년 3월 10일까지의 나스닥 닷컴 관련 주가다. 그 결과 AI시장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닷컴 버블과 비슷한 패턴을 보였으나 이후 오히려 도취 단계와는 거리가 먼 상태가 됐음을 확인했다.
마르신 교수는 “AI시장은 전체적으로 볼 때 닷컴 버블의 행복기 나스닥 지수와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 기간에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김동원 KB리서치 본부장은 “AI 거품론은 AI 시장이 본격적으로 꽃이 피기 전 나타난 시기상조로 판단된다”며 “이 같은 우려에 따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기업의 주가 하락은 견조한 실적 전망을 고려할 때 실체가 없던 닷컴 버블과 차원이 다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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