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역사관’ 논란을 낳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인사로 광복회 등 독립운동 단체와 우원식 국회의장, 야6당이 정부 주최 경축식에 불참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 과거사 반성 촉구나 식민지배 비판은 언급하지 않은 채 ‘흡수통일’ 방식의 통일비전을 제시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으로 촉발된 뉴라이트 논란에도 침묵했다. 그러면서 정부 비판 또는 반대파를 빗대어 “사이비 지식인, 거짓선동 세력, 검은 세력, 반자유 반통일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한겨레는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비판했고, 조선일보도 “상대방 비판보다 통합의 메시지가 나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과거사 언급 없는 이상한 경축사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의 식민지배 등 과거사 문제와 관련, 아무 언급을 하지 않은 반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패전일을 맞아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료를 봉납했다. 우리의 국방부장관에 해당하는 일본 방위상은 3년 만에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했다. 경향신문은 “한국이 일본과 관계 개선에만 몰두해 역사 문제를 외면하는 동안 일본은 왜곡된 역사 인식을 더 공고히 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경향신문은 “윤 대통령이 역사 문제를 한·일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여기고 회피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며 “윤 대통령은 앞서 취임 이후 두 차례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과거사 문제를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통일 독트린’ ‘815 독트린’ 경축사 비판 봇물 “통일정책 아닌 대북 심리전”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이번 경축사를 8.15독트린이라고 자평했다. 윤 대통령은 자유 민주주의에 의거한 통일비전과 과제를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 주민들이 자유 통일을 강력히 열망하도록 배려하고 변화시키겠다”고 밝힌 뒤 “북한 주민들이 다양한 경로로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정보 접근권을 확대” 등 7대 추진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조중동에서도 실효성 등에 우려를 제기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尹 ‘통일 독트린’… 실효성 안 보이는 ‘자유 확장’ 선언」에서 “7대 추진 방안을 살펴보면 대부분 국내 사상전과 대북 심리전, 국제 여론전이라 할 만한 내용들”이라며 “북한의 대남 ‘적대적 두 국가’ 선언에 맞서 우리 정부가 내놓은 전방위 대북 압박전략, 나아가 북한 정권 붕괴론에 기초한 흡수통일 정책과 다를 바 없다는 평가도 그래서 나온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자유 통일’이라는 이념적 선명성에 집중하다 보니 우리 정부의 현실적인 대화 상대여야 할 북한 정권의 태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전략은 사실상 전무했다”며 “남북 당국 간 ‘대화협의체’ 설치 제안도 포함됐지만, 생뚱맞게 구색 맞추기용으로 끼워 넣은 모양새였다”고 분석했다.
동아일보는 ‘반쪽 경축식’을 두고도 “통일의 이념적 이분법은 우리 사회 내부의 국론 분열을 더욱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았다”며 “자유의 가치관 확립을 위해 ‘사이비 지식인’ ‘검은 선동세력’에 맞선 투쟁을 역설했는데, 야당은 야권과 시민사회를 겨냥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국민 통합의 자리여야 할 광복절인데, 순국선열에게 갈라진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현실만 내보인 하루였다”고 우려했다.
중앙일보도 사설 「경축식 파행에 아쉬움 남긴 통일 독트린…씁쓸했던 광복절」에서 “북한이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현실성 있는 담론을 제시해야 설득력을 가질 통일 독트린의 속성상 이번 발표엔 아쉬움도 적지 않다”며 “통일의 전 단계인 공존이나 평화에 대한 구체적 구상이 보이지 않는 점이 대표적”이라고 지적했다.
‘자유가 박탈된 동토의 왕국,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북녘땅으로 자유가 확장돼야 한다’, ‘북한 주민의 자유 통일 열망 촉진과 정보접근권 확대’ 등의 표현을 두고 중앙일보는 “북한을 자극해 독트린의 실현 가능성을 줄이는 역효과를 낼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의 허위 선동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대목에 대해서도 이 신문은 “북한이 아니라 우리 내부 정치세력을 겨냥한 듯한 내용이라 독트린에 적절한 언급은 아니라고 보인다”고 지적했다.
경축식 파행 책임을 두고 중앙일보는 야당이 선을 넘고, 우원식 국회의장도 경축식에 참석했어야 한다면서도 “정부도 논란이 있는 인물의 독립기념관장 임명을 일방통행식으로 강행해 야권의 극한 반발을 자초한 점에서 경축식 파행에 책임이 크다”고 비판했다.
광복회장 비판한 조선일보, 윤 대통령에겐 “상대방 비판보다 통합 메시지 냈어야”
조선일보는 사설 「나라 되찾은 광복절에 펼쳐진 기막힌 풍경들」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을 두고 “이승만을 어떻게 친일로 몰 수 있나. 이 회장이 독립기념관장으로 민 인사가 탈락하자 이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다만 “대통령실과 정부는 인사 논란을 조기에 진화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다 사태를 더욱 키웠다”고 지적했다. 특히 윤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현 야권과 좌파 진영을 겨냥,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로 국민을 현혹해 자유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부수는 반자유 세력과 반통일 세력에 휘둘리면 안 된다’고 한 점을 두고 “상대방 비판보다는 통합의 메시지를 내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동시에 “해방된 지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친일’ 프레임이 판치는 현실은 참담하다”며 “민주당이 또다시 친일 이슈를 들고 나와 정권 공격의 소재로 쓰고 광복절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다른 사설에서 ‘8·15 통일 독트린’을 두고 “북이 일시 반발할 수도 있지만 북의 내부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고선 통일에 한 발짝도 다가갈 수 없다”며 “북 정권과 대화의 문을 열어 놓으면서 아래로부터 변화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일보 “광복절에 왜 일본에 대한 언급이 없나”
한국일보는 사설 「남북 ‘대화협의체’ 제안하면서 공세적인 8·15 통일 독트린」에서 “윤 대통령이 (북한에) 대화를 제안한 건 평가할 만하다”면서도 “‘북녘 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돼야 한다’며 사실상 공세적인 통일론으로 상대방을 자극한 게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북한 주민들이 다양한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정보접근권’을 확대하겠다’고 한 대목을 두고도 “북한 입장에선 대화의 진정성까지 의심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윤 대통령의 통일 담론도 공허한 선언으로 끝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광복절 기념사인데 일본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는 점도 아쉽다”면서 “이러한 정부의 태도가 광복회 등 일부 독립운동단체가 경축식에 불참하고 자체 기념식을 연 단초가 됐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경축사에서 돌연 ‘가짜 뉴스’를 반통일 세력으로 몰아간 것도 생뚱맞다”며 “남북 통일을 얘기하기 전에 국민 통합이 먼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라고 썼다.
경향신문 “회의적 통일론” 한겨레 “대국민 선전 포고…지도자 자격 의심”
경향신문은 사설 「“자유 통일” 외친 윤 대통령, ‘적대국 남북’ 해소가 먼저다」에서 “남한 내 공론화 작업이 없었고, 파탄난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 실질적 조치도 없는 통일 구상에 북한이 화답할지는 회의적”이라며 “통일 구상에 동력이 생기려면 우리 내부부터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야당 등을 향해 ‘가짜 뉴스에 기반한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 ‘검은 선동세력’이라고 한 데 대해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국론만 분열시키는 통일론에 무슨 힘이 생기겠는가”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도 사설 「광복절 두쪽 내고 국민 비판에 선전포고한 윤 대통령」에서 경축사를 두고 “흡수통일이라는 이념적 푯대만을 강조하며 국민 생존과 직결된 평화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의 독단적 주장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국민을 척결해야 할 ‘반자유, 반통일 세력’으로 몰아세웠다는 사실”이라며 “윤 대통령이 이처럼 통합의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분열만 부추기는 한 국가지도자 자격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KBS 광복절 기미가요 여론에 기름 부어
KBS는 15일 0시부터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기미가요 선율이 들어간 오페라 ‘나비부인’ 공연을 방송했다. 경향신문은 다른 사설 「뉴라이트·굴욕외교·이승만 다큐로 ‘두 쪽 난 광복절’」에서 “광복절의 분열과 갈등에는 ‘친윤 낙하산’ 사장이 이끄는 공영방송 KBS도 기름을 부었다”며 “오전엔 잘못된 태극기 이미지를 배경화면에 넣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미화시키고 ‘객관성 결여’로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독립영화로도 인정받지 못한 다큐 「기적의 시작」을 심야에 방송했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파장이 커지자 국민에게 사과했지만, 기미가요로 시작해 이승만 다큐로 마무리한 ‘KBS의 광복절’이 개탄스럽다”고 썼다.
김진태 강원도지사 “1948년 건국” 경축식 파행
강원도 광복절 경축식도 파행을 빚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1948년에 건국했다고 발언한 경축사 내용에 반발한 광복회원들이 행사 도중 항의하며 퇴장했다. 김진태 지사는 15일 강원대 백령아트센터에서 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1919년에 건국이 됐다고 하면 나라가 이미 있어서 독립운동도 필요 없고 광복 자체도 부정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며 “1948년 건국을 극구 부인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은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자학적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던 김문덕 광복회 지부장이 강하게 항의한 뒤 광복회원들과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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