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8일 발표한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로 제시했다. 지난 5월 발표한 전망치 2.6%에서 0.1%포인트(p) 하향 조정했다.
KDI는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배경으로 고금리 장기화로 민간소비가 위축되고 있으며, 설비투자가 예상보다 저조하다고 설명했다. KDI는 지난 5월 전망에서 올해 반도체 업황 회복으로 설비투자가 2.2%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으나, 수정 경제전망에선 이를 0.4%로 1.8%p나 내렸다.
16일 KDI에 따르면 연구진은 설비투자 전망치를 대폭 하향 조정한 배경에 대해 “반도체 경기 호조세가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은 반도체 덕분에 살아나고 있지만, 설비투자는 반도체가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이 호황기를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설비투자가 저조하다는 점은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지표에서도 포착됐다. 지난달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2분기 연간 실질 GDP’ 속보치에 따르면 우리나라 2분기 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0.2%를 기록했다.
1분기 GDP 성장률이 1.3%로 높았던 게 기저효과로 작용해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는 것이 한은의 설명이었지만, 지표 상으로는 설비투자 감소가 눈에 띄었다. 설비투자는 운송장비(자동차)가 늘었으나, 기계류(반도체제조용장비 등)가 줄면서 2.1% 감소했다. 설비투자는 지난해 5∼12월 내리 감소한 데 이어 올해도 2월부터 다섯 달째 줄고 있다.
반도체 제조용 장비 도입 지연은 제조업 국내공급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통계청이 8일 발표한 ‘2분기 제조업 국내공급동향’에 따르면 2분기 반도체 품목 국내공급은 전년 동기 대비 17.4% 감소했다. 국산이 8.1%, 수입이 24.2% 감소했다. 반도체 품목 국내 공급은 지난해 4분기(-11.1%), 올해 1분기(13.0%)에 이어 3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반면 반도체 수출은 훨훨 날고 있다. 올해 상반기 반도체 수출액은 658억3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9.9% 증가했다. 인공지능(AI) 시장 성장, 정보기술(IT)기기 시장 회복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로 국산 반도체 수출이 급증했다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설명했다.
그동안은 수출 등 출하가 증가하면 1분기가량의 기간을 두고 설비투자가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왔다. 예컨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이 좋은 실적을 거뒀던 지난 2022년 1분기에 수출이 전기 대비 3.0% 증가하자, 설비투자는 2분기(1.4%)와 3분기(5.7%) 연속으로 전기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장비 설비 투자가 뒷걸음질 치는 가장 큰 이유로 ‘반도체 불황기 때의 교훈’을 꼽았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과거 반도체 기업들은 반도체 가격이 내려갈 때도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해 증산 기조를 유지하고 설비투자를 지속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AI 반도체로 수요가 급격하게 이동한 데다, 기존 범용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늘린 설비가 재고 증가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진 것이 기업들을 주춤하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 센터장은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수출 부문에서 호황을 보이는 것 같지만, 인공지능(AI)용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제외하고는 반도체 수요가 되레 줄었다”면서 “작년에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들이 적자를 겪은 상황이라 HBM 외에 공격적으로 설비투자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고금리 장기화도 반도체 설비투자 지연 원인으로 거론된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반도체는 수출이 증가하면 설비투자도 같이 따라왔다. 동시에 되거나, 선행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지금은 반도체 경기가 호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투자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고 했다. 정 실장은 이어 “반도체의 경우 투자 결정이 대규모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현재 설비투자가 잘 안되는 것은 역시 고금리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설비투자가 장기 지연되면 안 된다고 제언한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지금은 HBM으로 주력 분야가 변화하는 상황이라 수출지표가 좋아도 국내 기업이 설비투자를 바로 늘리지 않고 일종의 ‘준비 기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반도체 투자는 2~3년 이후부터 효과가 나타난다. 올해 하반기에 투자를 본격화하지 않으면 세계 각국이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반도체 산업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하반기부터 반도체 투자가 살아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영업익 호조를 기록한 반도체 기업들이 하반기쯤에 설비투자를 본격 시작하면 수출·투자가 동시 증가하는 지표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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