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텐그룹 산하 이커머스 플랫폼 티몬·위메프 정산지연 사태로 인해 정부와 국회에서 재발 방지를 위한 각종 대책이 나오고 있다. 현재까지 등장한 티메프 재발방지 대책은 정산대금 등을 은행 같은 곳에 예치하는 에스크로 제도 도입과 판매대금을 별도 관리하는 방안 등 크게 두 가지다. 플랫폼 업계, 스타트업계 등은 이런 대책에 계속 우려를 표하고 있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성명, 토론회, 간담회 등 최근 나흘 간 세 번에 걸쳐 통해 정부·국회의 플랫폼 일괄 규제 움직임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괄 규제가 스타트업 혁신 생태계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다.
티메프 사태로 인해 거론되는 판매대금 회계 분리, 대금 예치 서비스 의무화 등을 모든 플랫폼 기업에 도입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스타트업 간 양극화가 심화된다는 것이다. 이는 티메프 사태 재발을 막겠다고 규제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티메프 하나로 모든 플랫폼에 동일한 규제를 일괄 적용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플랫폼 및 스타트업 업계가 온라인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온플법) 등 플랫폼 규제를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스타트업 업계 우려가 큰 모양새다. 스타트업이 성공할 수 있는 효율적 전략 중 하나가 플랫폼인데 이를 여행·숙박·오픈마켓 등 다양한 업종의 플랫폼을 한꺼번에 규제하는 건 옳지 않다는 이유다.
또 인플루언서 갑질 등으로 플랫폼이 항상 우월한 협상지위를 갖는 것이 아님에도 규제 정책은 플랫폼의 협상지위가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전제 아래 이뤄진다고 봤다.
정지하 트립비토즈 대표는 14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개최한 ‘이커머스 스타트업이 바라본 티메프 사태 해결방안’ 간담회에서 이 같은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그는 여행 플랫폼 트립비토즈 이용자가 숙박상품을 예약할 때 보통 1~2개월 전에 예약하는데 이중 절반쯤이 기존 예약을 취소하고 더 저렴한 상품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이동한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예약 취소 이용자에게 환불할 때다.
이용자 50%쯤이 예약을 취소하면 플랫폼은 결제대행업체(PG사)를 통해 플랫폼으로 들어온 결제대금 중 50%을 이용자에게 환불해야 한다. 만약 에스크로 제도가 의무화될 경우 제3의 계좌에 대금이 이동됐을 때 이런 환불대금을 누가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플랫폼이 건드릴 수 없는 에스크로 계좌에 결제대금이 예치되어서다.
정지하 대표는 “트립비토즈는 고객이 체크아웃하면 숙박시설에 즉시 대금을 정산하는데 고객이 서비스를 경험하는 즉시 정산하는 서비스에 에스크로를 어떻게 도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며 “현재 규제는 앞으로 경쟁해야 하는 수많은 해외 플랫폼에게 적용하기 어려운데다 그 국가와 도시에 같은 규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업계는 또 규제 논의, 규제 관련 질의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스타트업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실제 정부 입법, 정부사업계획, 의원 입법 및 질의 등이 경영에 영향을 줬는지 묻는 설문에 스타트업 71.4%가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긍정영향보다 부정영향이 많았다는 점이다. 이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7월 119개 스타트업 대표이사 및 임직원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다. 스타트업은 입법 및 정책 이슈화로 인한 사업모델(53.8%), 기존 산업 종사자 갈등(50.4%), 매출(47.9%), 국내외 인력 채용(42%) 등 조사 영역 대부분에 부정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지하 트립비토즈 대표는 “이번 티메프 사태로 많은 공급자와 소비자가 피해를 본 건 사실이라 만약 이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에스크로를 도입하는 건 순기능이 될 수 있다”며 “그러나 모든 플랫폼에 에스크로를 도입하는 건 논의가 시작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커머스 생태계에 타격을 준다”고 주장했다.
김동환 백패커 대표 역시 “백패커가 운영하는 핸드메이드 마켓 아이디어스는 주문제작 형식이라 주문부터 제품 발송까지 길게는 한 달 넘게 걸리는 제품도 있는데 이런 것까지 정산기한을 일괄 규제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백패커도 티메프로부터 적다면 적지만 스타트업에게는 큰 3600만원 정도의 미정산 대금이 있는데 잠재적 규제 대상으로 거론된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조용민 머스트잇 대표도 일괄 규제를 반대했다. 조용민 대표는 “이번 티메프 사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해 일부 기업의 일탈을 전체 기업으로 일반화해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유동성 위기나 불건전한 재무 상태에 있다는 걸 고지하는 제도를 통해 입점사가 보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건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도한 정부 개입이 플랫폼의 회생이나 반등 기회를 막을 수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그에 앞서 기업의 책임이자 경영자의 책임은 재무건전성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라며 “애초에 유동비율이 떨어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았어야 하고, 그렇게 됐더라도 반등 기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에 집중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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