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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절망적 한국 교육, 더 급진적으로 개혁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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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최초의 3선 교육감인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절망에 놓인 한국 교육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과감하고 급진적”인 개혁도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만난 조 교육감은 2014년 처음 취임한 뒤로 10년간 혁신교육, 공동체형 교육을 지향해온 대표적인 진보 교육감이다. 그는 그간 학생 간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한 장치들을 모색하는 한편 기후 위기 대비를 위한 생태 교육 확대, 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 추진 등 성과를 내왔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한국 교육은 소위 ‘명문대’를 가기 위한 경쟁이 갈수록 과열됐으며, 최근에는 명문대보다 문턱이 좁은 의대를 가기 위해 사교육 시장이 더욱 커졌다. 과열 경쟁만 문제가 아니다. 학생인권과 교사의 노동권을 일컫는 이른바 ‘교권’이 모두 추락하는 불상사도 문제다. 교사의 노동권 문제의 경종을 울린 ‘서이초 사건’, 서울시의회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시도 모두 최근의 일이다.

조 교육감은 한국 교육이 모두에게 상처를 입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유를 “극한 경쟁”에 있다고 봤다. 과열된 경쟁은 과거 고도 성장을 이룩하는 원동력이 됐지만, 이제는 하위 90%를 패배자로 만들고 수능 이후로는 교육에 손을 대지 않는 등 부정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수십 년 동안 누적된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정 진영이 아닌 범국민적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 교육감은 주장했다. 학생들의 사고력을 늘릴 수 있도록 수능을 논·서술형으로 전면 전환하고 AI 기술을 도입하는 등의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교내 갈등은 사법적 해결에 앞서 구성원 간 양보와 조정을 통해 해결하는 ‘공동체적 해결’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조 교육감과의 일문일답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취임 10주년을 맞아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

“한국 교육은 학생 90%를 ‘루저’로 만드는 절망의 교육이 됐다”

프레시안 : 지난 10년을 돌아봤을 때 기억나는 성과와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조희연 : 교육 불평등에 도전하는 교육감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격차가 자녀의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고, 장애인 학생들이 불편 없이 교육받을 수 있도록 특수학교를 늘리는 기본계획을 세웠다. 교육 과정, 수업, 평가, 기록 네 가지 측면에서 혁신을 통해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교육으로 진화시켰다. 여러 성과가 있었지만, 교육 격차가 더욱 악화된 점에 있어서는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입시에 더 유리한 방식을 선택하기 위해 학교를 자퇴하고 수능만 준비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조희연 : 지금 교육은 상위 10%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다. 나머지 90%는 ‘루저’로 만든다. 그동안 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고도 성장과 선진국 진입을 이뤄냈다. 치열한 경쟁은 아이들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는 1등 인재를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 교육은 아이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잃은 절망의 교육이 됐다. 즐거움이 없으니 평생교육의 가능성도 사라진다. 좌우를 넘어 국민적 합의를 통한 대책을 만들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교육 개혁에 있어서) 더 과감하고 급진적이어도 된다고 본다.

프레시안 : 수능을 전면 논·서술화로 전환하고, 채점에 AI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조희연 : AI시대, 한국이 선진국이 된 시대인만큼 오지선다형 및 암기식 교육에 매몰되지 말고 생각하는 힘을 측정하는 논·서술형 교육을 도입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논·서술형 도입에 진전이 없다. 과감하게 우리 사회의 상상력을 열어젖히자는 취지에서 수능을 완전 논·서술형으로 전환하는 2030 대입제도 개선을 제안했다. 논·서술형 전환에 따른 실무적 부담은 AI에게 1차 채점을 맡기고 교사와 교수가 2차로 채점하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논·서술형 전환에 따른 사교육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조희연 : 논·서술형이 사교육을 부추길 여지가 있지만, 관련 제도의 변화에 따라 사교육의 개입 정도는 달라질 수 있다. 학교 수업, 수행평가를 중심으로 논·서술형을 전환하면 사교육을 조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와 더불어 절대평가로의 전환, 수능의 자격고사화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 사교육 과열을 해소하는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조희연 : 디지털 교과서가 불러올 여러 문제들을 따져봐야 한다. 디지털 교과서를 적용하는 최저 학년은 2022년 국가교육과정을 도입하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아동 시기에 스마트 기기를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 만큼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디지털 교과서 도입으로 기초 학력 저하 문제가 심화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AI로 개별화·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문제를 맞춘 아이에게 더 어려운 문제를 내주고 틀린 아이에게는 같은 난이도를 제공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아이들의 학습행동을 기록한 데이터가 에듀테크 기업, 즉 사교육 업체에 공유될 수 밖에 없는 현 구조에 대해서는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 입시 준비를 하는 ‘의대 광풍’ 현상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인가.

조희연 : 사교육을 국가가 강압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다만 독일처럼 선행학습에 대한 법적 규제를 사교육 현장까지 적용하는 방법은 고려할 수 있다. 의료개혁을 논의할 때 의사의 공급만 늘리는 게 아니라 의료 수가, 지방 공공의료 등의 문제를 동시에 풀어야 했지만 정부가 의사 공급을 늘리는 방법만 제시했다. 종합적이고 보완적인 대책을 통해 의대 증원 문제를 풀었으면 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취임 10주년을 맞아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프레시안

“학교 구성원 간 갈등, ‘공동체적 해결’ 지향해야”

프레시안 : 서이초 교사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희연 :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서이초 사건이라는 비극으로 인해 ‘교권’ 보호에 대한 여러 보완 조치들이 이뤄졌다. 그럼에도 교권 보호 제도는 여전히 현장에서 실효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받는다. 선생님들은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학대 조항을 제한해달라고 한결같이 요구한다. 아동단체와 인권단체에서는 이를 반대한다. ‘아동 학대가 사회 어느 영역에서도 없어야 한다’는 가치와 ‘아이들을 가르치기 너무 힘들다’고 하는 교사들의 절규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민주화 시대에는 권위주의 하에서 모든 인권의 가치가 억눌렸기 때문에 인권적 가치를 최대한 확장하는 게 선(善)이었고, 실제로 좋은 결과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 개의 좋은 가치가 충돌하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두 가치의 합리적 핵심을 견지하면서도 의도치 않은 딜레마들을 해소하기 위한 전향적인 노력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인식의 전환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조희연 : 교내 문제를 대하는 각 주체들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은 사법적 처벌만을 강화해서 ‘교권’ 보호나 학교폭력을 다루니 학교가 사법기관처럼 되어가고 끝없는 분쟁에 시달리게 된다. 사법적으로 ‘교권’ 침해를 풀면 경찰과 검찰의 조사 과정, 3심에 걸친 사법적 절차에 교사가 연루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3심(心)에 기반한 공동체 학교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싶다. 공동체 학교를 위해서는 학생에 대한 교사의 존중심, 교사에 대한 학생의 존경심, 학부모의 협력심이 어우러져야 한다.

프레시안 :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조희연 : 민주적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권리와 권리 간 충돌이 발생했고, 민주적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하지만 (학생인권침해가 가능한) 과거로 돌아가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서울시의회가 내놓은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를 보면, 갈등조정위원회를 만들어 다양한 주체의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갈등을 평화롭게 조정하려는 대목이 있다. 해당 조례와 학생인권조례를 활용한 공동체형 학교를 더욱 적극적으로 제안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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