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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외교·경제로 ‘반전’ 노렸지만…지지율 곤두박질에 결국 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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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외교·경제로 '반전' 노렸지만…지지율 곤두박질에 결국 백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4일 총리 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9월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말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이 불거진 뒤 지지부진한 내각 지지율로 당 안팎에서 퇴진 압박을 받아오다 결국 불출마를 결단했다. AP연합뉴스

2022년 7월 일본 집권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선인 단독 과반을 확보하며 ‘황금의 3년을 손에 넣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취임 1년이 채 안 된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내각) 지지율도 59%까지 뛰며 탄탄대로가 펼쳐진 듯 보였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은 이날을 정점으로 내리막길을 걸었고 취임 1046일 만인 이달 14일 당 총재 선거 한 달여를 남겨두고 ‘총리 연임 포기(총재 선거 불출마)’를 공식 발표했다. 올 6월 국회 회기 종료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 때만 해도 집권 2기를 염두에 둔 정책들을 내놓으며 연임 의욕을 보였으나 지지율 붕괴 등에 가로막히자 ‘새 인물에게 당의 재건을 맡겨야 한다’는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분석이다.

기시다 정권은 지난해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디지털 전환을 위해 야심 차게 추진한 디지털 신분증 ‘마이넘버카드’가 심각한 행정 오류로 인해 국민적 원성을 샀고 지난해 9월 개각에 나선 뒤 약 한 달 만에 정무관과 부대신 등 정무3역이 불륜 및 선거 개입 의혹 등으로 자진 사퇴하며 인사 검증 논란에 휩싸였다. 지지율 반등과 10월 중·참의원 보궐선거를 겨냥하며 단행한 소득 감세도 ‘선거용’이라는 비판에 직면하며 지지율을 오히려 깎아먹었다. 총재 선거를 대비해 진용을 정비하려는 목적에서 단행하려던 ‘중의원 해산’ 역시 잇따른 실책에 불발됐다. 결정타는 자민당 내부에서 터졌다. 바로 주요 파벌의 정치자금 스캔들이다. 자민당 내 주요 파벌의 정치자금 모금 행사(파티) 모금액 일부가 장부에 기재되지 않은 채 의원들에게 전달돼 비자금 조성에 쓰였다는 게 골자다.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자 기시다 총리가 나서 파벌 해체를 선언했지만 관련자 처벌이 용두사미로 끝나면서 국민적 불신만 키웠다. 급기야 일부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이 10%대까지 추락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내각과 당의 지지율이 동시에 추락하며 2009년 민주당에 정권을 빼앗겼을 때보다도 지지율이 더 떨어졌고 국정 운영 동력은 더욱 약해졌다.

기시다, 외교·경제로 '반전' 노렸지만…지지율 곤두박질에 결국 백기

‘내각 지지율과 집권 여당의 지지율 합이 50%를 밑돌면 정권은 와해된다’는 일명 ‘아오키의 법칙’에 빠진 뒤로 자민당은 주요 선거에서 계속 패했다. 민심 악화로 선거 후보조차 못 내는 상황까지 나오자 자민당에서는 ‘기시다를 당의 얼굴로 해서는 다음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총리의 총재 선거 불출마를 촉구하는 ‘기시다 끌어내리기’도 심화했다. 정치자금법 개정 과정에서는 ‘총리가 야당에 너무 많이 양보했다’는 당내 불만까지 쏟아졌다. 정권 초 ‘삼두정치’라는 말까지 나왔던 ‘기시다 총리-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모테기 도시미쓰 당 간사장’ 간의 균열도 심화했다.

기시다, 외교·경제로 '반전' 노렸지만…지지율 곤두박질에 결국 백기

올해 초만 해도 기시다 총리는 사태 반전을 내심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탈(脫)디플레이션을 위한 임금 인상과 공급망 강화를 겨냥한 반도체 산업 투자 등 경제적인 측면과 한일 관계 개선, 한미일 공조 강화, 주요 7개국(G7) 히로시마 정상회의 개최 등 외교 성과를 내세워 지지율을 반등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날 회견에서도 그는 30년간 이어진 디플레이션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임금 인상이나 투자 촉진, 대규모 저출산 대책 실행 및 한일 관계 개선 등 주요 성과를 일일이 나열하며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고 평가했다. 기시다 총리는 그러나 현 상태로는 다음 총선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연임 의지를 내려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제 정치권의 관심은 ‘포스트 기시다’로 옮겨가고 있다. 차기 자민당 총재 후보군으로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고노 다로 디지털상,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 모테기 간사장,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이 중 이시바 전 간사장과 모테기 간사장, 고노 디지털상 등이 출마 의욕을 내비치고 있다. 다만 이들 모두 ‘기시다급’이라고 하기에는 인지도나 영향력이 크지 않은 데다 최근 일본 내에서 불고 있는 ‘새 인물론’에 부합하지도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에서는 지난달 도쿄 도지사 선거에서 2위 득표로 낙선한 이시마루 신지 전 아키타카타 시장의 선전을 계기로 기성 정치와는 거리를 둔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지지통신이 이달 초 진행한 ‘자민당 차기 총재 지지’ 설문 조사를 보면 이시바 전 간사장이 18.7%로 7월에 이어 1위를 차지했다. 고이즈미(12.5%), 다카이치(6.5%), 고노(5.2%) 순으로 ‘차기 총재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은 가운데 기시다 총리와 가미카와 외상이 각각 4.7%로 5위였다.

한편 기시다 총리는 다음 달 3년의 총재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9월 말)에 맞춰 총리 자리에서도 물러난다. 2021년 10월 취임 후 재임 일수는 이날 기준 1046일이다.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1241일)에 이어 전후 여덟 번째로 긴 기간이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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