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호 경찰청장은 지난 12일 취임식에서 “악성 사기, 마약, 도박 범죄는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했다. 그는 이들 범죄가 “수많은 가정을 파탄 내고 미래 세대를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사기, 마약, 도박 범죄는 모두 역대 최다 발생 기록을 경신 중이다. 특히 청소년층의 마약, 도박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한 경찰 간부는 “신임 경찰청장이 취임식에서 근절을 다짐할 정도로 사기, 마약, 도박 범죄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 사기 21만6287건 적발…역대 최고치 기록 경신 전망
14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국내에서 발생한 사기 범죄는 21만628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17만2324건)보다 25.51% 늘어난 것이다.
앞서 국내 사기 범죄는 지난 2020년 최고치(34만7675건)를 기록했다. 2021년 29만4075건, 2022년 32만5848건으로 줄었다가 작년 34만9786건으로 최고치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올해도 상반기와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연간 40만건을 돌파하며 최고치 기록을 또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
사기 범죄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범죄이기도 하다. 작년 국내 발생 범죄는 총 147만8691건인데, 이 중 사기가 34만9786건(23.65%)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전체 범죄 78만2980건 중 사기가 21만6287건(27.62%)이었다.
사기 범죄가 늘어나는 이유는 낮은 형량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단독 범행으로 300억원 넘는 사기 피해를 일으킨 경우 기본 형량이 6~10년이다. 가중처벌이 돼도 형량은 최고 13년이다. 한 법조인은 “사기로 빼돌린 수백억원을 들키지 않는다면 징역을 살더라도 사기를 치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작년 마약류 범죄 사상 최고치…10대 마약사범 1년 만에 207%↑
작년에 마약류 범죄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2년(1만331건)보다 42.10% 늘어난 1만4680건이 발생했다. 마약류 범죄는 최근 3년간 해마다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검·경이 검거한 마약 사범도 비슷한 추세로 늘어나고 있다. 2019년 1만6044명을 시작으로, 2021년을 제외하고 작년까지 매년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2020년(1만8050명), 2022년(1만8395명)에 이어 작년(2만7611명)에는 처음으로 2만명을 돌파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2021년은 코로나로 국내외 항공편 운항이 대폭 감소해 마약류 유입도 줄었을 것”이라고 했다. 항공편 추적 사이트 ‘플라이트어웨어’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적으로 결항한 항공편은 2800편 이상이다.
특히 10대 마약 사범이 늘고 있다. 작년 검·경에 붙잡힌 10대 마약사범은 1477명으로 2022년(481명)보다 207.07% 급증했다. 이에 따라 전체 마약 사범에서 10대가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2019년에는 1.49%에 불과했지만, 4년 만인 작년에는 5.35%까지 치솟았다.
스마트폰과 텔레그램 등 보안 메시지 사용 확대가 마약 범죄 증가의 배경이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우리나라는 집안에서 마약을 소셜미디어(SNS)로 피자 한 판 값에 직구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청소년들이 유튜브로 마약을 ‘선행 학습’한 뒤 텔레그램으로 마약을 사서 실전에 돌입하는 격”이라며 “그런 식으로 마약을 접하는 경우가 이제는 너무 흔해졌다”고 했다.
◇10대 도박 사범 해마다 늘어…평균 연령은 매년 낮아져
올해 상반기에 발생한 도박 범죄는 346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113건)보다 63.94%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에 따르면 국내 도박 인구는 전체 인구 대비 5.5% 수준인 237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프랑스(1.3%), 미국(1.5%) 영국(2.5%) 등과 비교해 높은 수준이다.
도박 범죄로 적발되는 중·고등학생 등 10대도 늘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활용해 언제, 어디서나 도박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작년에 도박 혐의로 입건된 소년범은 171명이다. 2022년(74명)보다 2.3배 증가했다. 이는 초범, 도박 금액 등에 따라 입건되지 않고 훈방 또는 즉결심판 처분된 경우를 제외한 숫자다. 도박 범죄로 적발된 10대가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다는 뜻이다.
도박 범죄 소년의 평균 연령도 계속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16.1세였다. 2019년(17.3세), 2020년(17.1세), 2021년(16.6세), 2022년(16.5세) 등 해마다 어려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경찰이 올해 적발한 사이버 도박범 최저 연령은 9세였다. 경찰 관계자는 “도박에 중독됐거나 빚을 갚으려고 친구 등 다른 청소년을 끌어들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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