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고은 기자】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복권 문제가 여야 내부의 갈등 요소가 되고 있다.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진영의 적자로 꼽혀온 김 전 지사의 정치 재개가 가능해지면 야권의 새로운 구심점이 될 것으로 관측되면서 더불어민주당 친이재명계(친명)와 비이재명계(비명) 분열이 우려됐다. 하지만 김 전 지사 복권 문제가 여권의 당정갈등으로 번지면서 총선과 전당대회 기간 불거진 이른바 ‘윤한(윤석열·한동훈) 갈등’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경수 복권’ 野 분열책? 진실공방 번졌지만 진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던 김 전 지사의 복권(復權)안이 13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날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김 전 지사 복권 등을 포함한 광복절 특별사면(특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특사안을 곧바로 재가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지사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징역 2년 형을 확정받고 복역해 지난 2022년 12월 특별사면으로 남은 5개월여의 형기 집행을 면제받았지만, 복권은 이루어지지 않아 선거 출마 등 정치 활동에는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복권이 최종 결정될 경우, 김 전 지사는 다시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된다. 이에 김 전 지사 의지에 따라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친노·친문 인사로 비명계 구심점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어 야권 내 ‘이재명 일극 체제’를 흔들 수 있어 김 전 지사의 복권 카드가 야권 분열책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에 민주당은 김 전 지사의 복권 과정에서 이 전 대표가 요청한 사실을 밝히며 당내 분열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여권에서 이를 부인하면서 진실공방으로 번지게 됐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0일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8·18 전당대회 경기 경선을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직간접적으로 여러 가지 루트를 통해 제가 복권을 요청한 바 있다”고 직접 밝혔다. 지난 4월 영수회담 당시 복권 문제가 의제로 다뤄졌는지에 대해 묻자 “영수회담 때는 아니다”며 “밝히기가 조금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도 지난 11일 이 전 대표 입장에 힘을 실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대전 서구 배재대학교에서 열린 전당대회 순회 경선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 8일 사면·복권 회의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전에 대통령실에서 문의가 있었다”며 “대통령실이 ‘민주당은 누구를 사면·복권하면 좋겠나’라고 물었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 전 대표가 김 전 지사와 정경심 교수에 대한 사면·복권 의견을 제게 전달했고 많은 분들 의견을 종합해 대통령실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당 주류인 친명계가 비명계의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김 전 지사의 복권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밝혀 오히려 당내 포용과 통합을 강조하게 됐다.
한 대표는 김 전 지사가 대법원 유죄 판결 이후에도 범죄행위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이다.
앞서 지난 2021년 7월 21일 대법원에서 ‘드루킹 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된 김 지사는 “진실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당원 게시판에도 김 전 지사 복권에 반대하는 기류가 강하게 일자 국민의힘에서도 김 전 지사 복권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도 했다.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지난 9일 기자들에게 “여야 간 협치의 시작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긍정 평가했지만, 같은 날 오후 언론 공지에서는 “김 전 지사 복권에 대한 당 입장은 정해진 바 없다”며 “정부에서 검토 중인 만큼 신중히 상황을 주시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 대표가 반대 입장을 보이자 입장을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집권여당 대표가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인 사면권 행사에 대해 반대 의견을 노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한 대표 취임 이후 당정 화합을 위해 이뤄진 러브샷, 윤-한 회동에도 대통령과 여당 대표 간 이견이 노출되면서 윤-한 갈등은 여전히 여권 내 최대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지난 11일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나와 “집권 여당 대표고 그간 인간적인 껄끄러운 관계가 형성됐다고 다 알고 있기에 한 대표가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기 조금 걱정스러운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12일 MBN 유튜브 지하세계-주간 이철희에서 “마치 지지층에 반대하는 결정을 윤 대통령 혼자 독단적으로 한 것처럼 만들어버렸다”며 “‘정치 지도자로서 취할 자세가 아니다’ 라는 느낌이고 내부적으로 들어가는 실익도 과연 있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정면충돌 ‘확전’ 막았지만 불씨 남아
국무회의에서 의결됐고 대통령실이 사면·복권을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고 밝힌 이상 윤 대통령이 김 전 지사의 복권을 재가할 전망이다. 한 대표는 복권 여부와 상관없이 추가 언급은 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한 대표는 지난 12일 김 전 지사 복권과 관련해 “제 뜻은 충분히 전달된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의견이 다르더라도 최대한 확전을 자제해 당정 정면충돌을 피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다만 한 대표가 앞으로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해 ‘김경수 복권 문제’와 같이 반대 의사를 밝히고, 당정 이견을 노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친한계 진종오 청년최고위원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우리가 국민들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지명직 최고위원인 김종혁 최고위원도 같은 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여당 정치인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느냐”며 “‘대통령이 내린 결정이니까 여당에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마라’고 얘기하는 것은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했다.
한 대표는 당 대표 후보 당시에도 수평적 당정관계 재정립이라는 공약을 내걸었기 때문에 향후 각종 현안이나 정국 주도권 확보를 둘러싸고 당정 충돌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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