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여개 언론·시민단체들이 ‘방송4법’에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고집불통, 아집을 조금도 바꾸지 않겠다는 확인 사살을 한 셈”이라며 “민주주의에 대한 심대한 도전이자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방송4법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다변화하고 사장 선출에 시민 참여를 보장하는 방송3법과 방송통신위원회 의결정족수를 상임위원 5인 중 4인으로 규정하는 방통위법을 말한다. 집권 3년차 윤 대통령은 12일 방송4법에 19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1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권여당은 그동안 방송3법, 방통위설치법 개정 논의를 철저히 외면하고, 국회 의장의 중재안도 걷어차며 반대만을 외쳐왔다. 고집불통 윤석열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입법권을 가진 국민의힘은 용산의 2중대를 자처하며 ‘노조의 공영방송 장악법’, ‘좌파 영구장악법’이라는 왜곡 선동으로 방송3법 개정안을 폄훼했다”며 “4월 총선에서 혹독한 채찍을 맞고도 공영방송을 장악하면 권력을 주야장천 누릴 것이라는 환각이 집권 여당을 집어삼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사유에 대해선 “후안무치, 자가당착에 빠진 윤석열 정권의 민낯”이라 반박했다. 대통령실은 전날 방송4법에 대해 “(방송 관련법이) 여야 협의와 사회적 공감대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채 정략적으로 처리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며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훼손시키려는 야당의 법안 강행 처리에 대응한 불가피한 조치”라 밝힌 바 있다.
관련해 공동행동은 “윤석열 술친구 박민 씨를 KBS 사장으로 앉혀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광복절 특집으로 이승만 찬양 다큐 방영을 추진하고 있으며 2인 체제 불법 방통위는 YTN을 유진그룹에 팔아넘기고 언론장악 부역자 김백 씨를 낙하산 사장으로 꽂아 YTN을 장악했다”며 “2인 체제 불법 방통위의 이동관·김홍일 위원장은 탄핵안이 발의되자 줄행랑을 쳤고, 역대 최악 부적격자 이진숙 씨는 불법적 공영방송 이사 선임 의결로 탄핵안이 발의돼 업무가 정지됐다”고 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공영방송 구성원들도 비판을 높였다. 박상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은 “권한이라는 건 적법하고 합리적으로 사용돼 구성원 동의를 얻어야 정당성이 부여될 수 있다”며 “정권이 자신들의 권한만 얘기하며 얼토당토 않는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이제 국민들이 권한을 발휘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윤 대통령 친분 관계와 낙하산설이 불거진 박민 사장 체제 KBS에서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이승만 미화 영화 광복절 편성, 단체협약상 임명동의제를 거치지 않은 국장 인사 등이 잇따른 점을 언급했다.
이호찬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다음주 수요일(21일) 고 이용마 기자 5주기다. 이용마 기자는 공정방송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웠고,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싸우다 병을 얻었고 세상을 떠났다”며 “그의 마지막 소망이 공영방송을 국민 품으로 돌려드리는 것이었고,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 사장을 뽑을 때 국민이 직접 참여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두려워할 일인가”라고 물었다. 2012년 MBC 파업을 이유로 해고된 이 기자는 1·2심에서 부당해고를 인정 받았지만 사측 불복으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다 2016년 복막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투병 중에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목소리를 내던 그는 해고 5년9개월 만인 2017년 12월 복직이 결정됐지만 2019년 8월 별세했다.
이 본부장은 이어 “이 정권은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않았다. 숙의도 협의도 하지 않았다. 오직 반대만 하며 시간을 끌다가 결국에는 기존의 방송3법을 이용해 극우 혐오 공안 검사, 민영화론자 같은 사람들을 방문진(MBC 대주주)에 내리 꽂았다”며 “법원이 집행정지 결정을 통해 무도한 윤석열 정권의 방송 장악 시도에 반드시 제동을 걸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오는 19일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문화진흥회(MBC대주주) 인사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 심문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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