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라는 말이 통용되는 시대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7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 스위스에 이어 세 번째로 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평균 수명이 늘어난 상황에서 ‘인생 2막’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평균 퇴직 나이는 49세. 기대수명대로라면 퇴직 후에도 무려 3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인생의 한 과정으로 겪어야 하는 인생 2막. 조선비즈는 인생 2막을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박종흠(47) 이팝소프트 대표는 교육 애플리케이션 업체 창업자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이팝소프트가 개발한 영어 교육 앱 ‘말해보카’는 국내 교육 카테고리 부문 1위(올해 1월 기준)다.
박 대표는 인생 2막을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시작했다. 27세에 첫 창업을 했고 지금까지 모두 세 차례 창업을 했다. 첫 창업한 회사가 외국계 기업에 인수되면서 임원 생활을 5년 가까이 하기도 했다. 이후 36세, 41세에 두 번째와 세 번째 창업을 했다. 현재 운영 중인 이팝소프트가 세 번째 창업이다.
박 대표는 ‘인생 1막’도 대학생이던 19세에 시작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1학년을 마치기도 전에 게임 업체 넥슨에 개발자로 취업한 것이다. ‘카트라이더’ 등 인기 게임 개발에 참여했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가 게임개발실장까지 8년간 넥슨에서 근무한 뒤 창업을 위해 퇴사했다. 그동안 병역 특례로 군 복무도 마쳤다.
박 대표는 “고등학교 때부터 창업 생각이 있었다”라며 “당시 이찬진 한글과 컴퓨터 창업자, 빌 게이츠 등이 유명했는데 모두 컴퓨터와 연관 있었다”고 했다. 박 대표도 중·고등학생 시절 컴퓨터 경진대회를 나가기만 하면 메달을 땄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대학 전공도 컴퓨터공학으로 정했다. 컴퓨터 기술만 배워두면 혼자서도 창업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선비즈가 박 대표를 지난 6일 인터뷰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다운로드 600만회를 넘어선 교육 카테고리 1위 애플리케이션 말해보카를 개발한 이팝소프트 박종흠 대표다.”
–’인생 1막’에 해당하는 시기에 대학을 다니며 넥슨도 다녔다.
“대학 1학년 11월 겨울 방학 직전에 넥슨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초기 넥슨은 지금처럼 게임 개발만 하는 게 아니라 웹개발도 하고 있었다. 그때 웹개발 담당 일을 하며 KBL(한국프로농구연맹) 사이트와 현대자동차 홍보 정보시스템 등 웹개발 업무를 1년 정도 했다. 이후 게임 파트 담당자가 같이 게임 개발을 해보자고 해서 게임 개발에 나섰다.”
–당시 학업과 직장을 어떻게 병행했나.
“중학생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매년 컴퓨터 경진 대회에 나갔다. 사실 대학 전공과목들은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경험해 왔던 것들이라 크게 어렵지 않았다. 낮에 학교 가서 공부하고, 저녁에 일하고, 회사 침대에서 또 일하고, 학교 가면 졸리면 자고 했다. 시험 기간에는 벼락치기로 공부했다. 회사에도 시험 기간이라서 어려울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래도 대학 졸업할 때는 우등 졸업했다.”
–넥슨 대표 게임인 크레이지 아케이드, 카트라이더 등 개발에 참여했다. 게임개발실장까지 올라갔는데 퇴직한 이유는.
“크레이지 아케이드는 개발 9개월 정도 만에 나왔다. 당시는 현재처럼 게임 개발 인력이 많던 시절이 아니었다. 5명 정도에서 만들었다. 카트라이더는 1년 넘게 걸렸다. 여러 게임을 만들고 소위 말하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해외서는 히트 게임을 개발한 개발자도 명성이 생기는데 한국에서는 거의 없었다. 당시도 넥슨의 게임이지 내 게임이 아니었다. 온전히 내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창업은 언제, 어떻게 했나.
“2004년 넥스 동료 일부와 함께 나와 게임 회사 제이투엠 소프트를 차렸다. 그때 나이가 27세였다. 제이투엠 소프트는 창업 4년 만인 2008년 ‘피파’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 EA(일렉트로닉 아츠)에 매각됐다. 글로벌 게임 업체가 국내 업체를 인수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나는 EA코리아 부사장으로서 피파온라인3 개발 총괄을 맡았다.”
–두 번째 창업은 어떻게 한 건가.
“EA에서 5년간 근무하고 2013년에 다시 창업에 나섰다. 이번에는 모바일 게임 회사를 차렸다. 당시 모바일 게임 붐이 일었고 나도 게임하던 사람인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바일 퍼즐 RPG(역할수행게임)를 개발해 넷마블게임즈, 카카오 게임에 공급했다.”
–첫 직장과 두 차례 창업이 모두 게임 관련이었다. 세 번째 창업을 교육 분야로 잡은 계기는.
“30대 후반 어느 순간 게임이 재미 없어졌다. 영어 교육 앱 개발을 고민했던 것은 (첫 창업한) 제이투엠 소프트가 (미국계 게임 기업인) EA에 매각된 직후였다. 해외 업체에 인수되다 보니 당연히 회의는 영어로 진행됐다. 업무에 들어가 보니 모두 영어를 쓰는데 혼자 통역으로 소통해 대화 흐름에 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 여러 차례 이어지다 보니 회의하는 도중에 ‘멍청한 것 같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영어 교육 앱을 내놓겠다고 하니 반응이 시큰둥했다. 하지만 ‘내가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영어 전문가도 아닌데 영어 교육 앱을 어떻게 개발했나.
“나도 전혀 알지 못하던 외국어인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을 먼저 공부하기 시작했다. 영어를 전혀 못 하는 사람들이 왜 영어를 힘겨워하는지 알기 위해서다.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을 공부할 수 있는 해외 앱을 사용했다. 여기에서 깨달음이 왔다. 결국 언어의 출발은 단어를 익히는 것이다. 일부에서 단어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데 단어가 없으면 안 되겠구나. 단어가 정말 핵심인데 단어를 가르쳐주는 서비스가 한국에는 없더라. 빈칸에 들어갈 단어가 무엇인지 찾는 방법으로 공부하는 게 효과가 가장 크다고 판단했다. 나와 주변의 경험이 그랬다.”
–모르는 단어를 공부하게 만드는 게 어렵지 않은가.
“사용자들의 리뷰를 보면 다른 공부에서도 재미를 느껴본 적이 없는데 우리 앱을 쓰고 ‘왜, 재밌지’라는 반응이 많다. 말해보카 앱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국내서 영어 관련 사업을 하시던 분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하시는 분들이다. 우리는 게임 개발자들이 교육 앱을 만들었다. 사용자의 몰입감을 높일 수 있는 여러 기술을 접목할 수 있다. 예컨대 우리 앱은 문장 내 빈칸을 스스로 채워나가는 식으로 학습한다. 학습 이후에는 사용자에게 포인트 등으로 보상해주고, 이는 자신의 캐릭터 꾸미기에 활용할 수 있다. 공부하면서 승부욕을 자극하는 시스템은 가장 잘 만든다고 자신할 수 있다.”
–끝으로 앞으로 계획은.
“그전까지 창업했을 때는 그 일이 끝이라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이번 회사는 지금보다 더 재밌는 일을 아직 못 찾았다. 추후 역량이 된다면 한국어를 교육하는 앱을 만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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