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佐渡) 광산(金山) 내 전시실에 조선인이 가혹한 노동에 종사했고, 위험한 암반 구멍 뚫기에 동원된 한국인이 일본인의 4.5배에 이른다는 기록이 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닛케이)이 12일 보도했다.
닛케이는 니가타(新潟)현 사도섬 광산 갱도로 이어지는 길 입구에 있는 아이카와(相川) 향토박물관 내 전시에 ‘강제 노동’이라는 표현이 없는 데 대해 한국 내 일각에서 반발하고 있는 데 대해 징용이나 그 영어 표현 ‘Requisition(징발)’이 국가의 명령에 의해 개인의 권리가 박탈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한국 내 일각에서는 ‘강제’라는 용어에 침착한다고 전했다.
|
박물관 내 광산의 역사와 금 채취 방법 등을 설명한 전시실을 지나 계단을 올라간 안쪽에 지난달 28일 문을 연 ‘한반도 출신을 포함한 광부들의 생활’이라는 제목의 전시실이 있는데, 이곳에 제2차 세계대전 중 사도 광산에서 일한 한반도 출신이 약 1500명이었다고 설명돼 있다고 닛케이는 밝혔다.
전시는 일제 식민지였던 한반도에서 1939년 민간인 노동자 모집이 시작돼, 1942년엔 행정에 의한 ‘관(官·조선총독부)의 알선’이 시작됐고, 1944년 국가가 국민을 동원한 징용이 한반도에도 도입됐다며 한반도 출신이 특히 가혹한 노동에 종사하고 있었다는 데이터를 보여준다고 닛케이는 소개했다.
위험성이 높은 갱내 작업 중 암반에 구멍을 뚫는 ‘착암’ 작업에 투입된 일본인(내지 출신)이 27명인데 반해 한반도 출신은 123명이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갱내 붕괴 방지용 나무를 세우는 ‘지주’나 채굴한 광석을 운반하는 일에도 일본일(39명)보다 조선인(56명)이 더 많이 투입됐고, 이들의 한달 평균 노동 일수는 28일이었다는 기록과 함께 작업 중 조선인이 사망한 사례도 명시됐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전시실에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지난해 5월 서울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한 후 징용피해자(일본 ‘전 징용공’)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고 한 발언도 소개돼 있다고 한다.
|
한국 외교부 관리가 지난달 26일 일본이 전체 역사를 반영하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위한 실질 조치를 이미 취했다”고 했는데, 이 관리가 이 전시를 ‘실질적 조치’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닛케이는 평가했다.
아이카와 박물관은 금 생산 기술과 동시에 노동에 초점을 맞췄고, 조선인 관련 전시실 옆 전시실에는 메이지(明治)시대 이후 광부들의 노동 환경 및 복리후생 개선된 사실이 소개돼 있는데, 이러한 노력과 한반도 출신을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게 했던 사실을, 감정에 호소하는 과장된 모형 등이 아니라 문장과 사료를 통해 담담하게 나란히 소개해 당시 상황이 복합적으로 다가온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닛케이는 일본 측이 한반도 출신자들의 가혹한 노동을 다룬 전시를 마련한 데 대해 한국 측이 인정한 것이 사도 광산이 지난달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46차 회의에서 한국 등 21개 회원국의 컨센서스(전원동의)로 세계유산으로 등록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한국과의 협상에 관여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닛케이에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냉정한 논의가 결실을 맺었다”며 “역사에서 이렇게 타협한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닛케이는 한·일 합의를 위한 노력이 없었다면 한반도 출신 전시가 설치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며 한·일이 타협점을 모색해 합의를 실현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 결과, 박물관의 전시가 더 다각화됐다고 평가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