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빛은 인류 문명 발전의 뿌리다. 하늘의 태양빛은 농작물의 생장을 촉진시켰다. 어둠을 몰아낸 빛은 낮에 한정돼 있던 생활권을 밤까지 연장시켜 문명 발전 속도를 앞당겼다. 뿐만 아니라 현대 문명에 이르러서는 첨단 광학 기술을 통해 반도체, 의료 산업 등에도 빛의 활약은 말 그대로 눈부셨다.
하지만 어둠이 사라진 세상은 ‘빛 공해(Light pollution)’라는 부작용이 새롭게 등장했다. 빛 공해는 인공조명의 부적절한 사용으로 인한 과도한 빛이 건강과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과도한 조명은 스트레스와 수면 방해 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려대의대 연구진에 따르면 빛 공해가 심각한 지역의 여성은 유방암 발병률이 24.4%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빛 공해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도심 지역 인근에 서식하는 수많은 식물과 야행성 동물들은 빛 공해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특히 편의를 위해 환히 밝혀진 도심의 불빛은 자연 생태계에 ‘눈부신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 눈부신 재앙 ‘빛 공해’, 반딧불 짝짓기와 박쥐 먹이활동 방해
빛 공해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는 생물종은 매우 다양하다. 당장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반려동물, 식물들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의 새, 곤충, 파충류 등 생물들은 빛 공해에 시달리고 있는 종이다. 런던자연사박물관의 생태학자 스테파니 홀트(Stephanie Holt) 연구원은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때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종은 ‘반딧불이’와 ‘박쥐’로 꼽았다.
스테파니 연구원은 “빛에 대한 동물들의 반응은 종마다 천차만별”이라며 “어떤 동물은 빛에 매력을 느끼지만 다른 동물은 혐오스럽거나 중립적이기도 해 빛 공해로 인한 피해 종류도 저마다 다른데, 박쥐와 반딧불이가 특히 피해가 크다”고 말했다.
스테파니 연구원의 설명에 따르면, 반딧불이는 수컷과 암컷의 시력이 서로 다르다. 때문에 인공 조명에 대한 반응도 제각각 다르다. 수컷의 경우 인공조명에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반면 암컷은 수컷이 내는 빛을 찾기 위해 불빛에 민감한 시력을 가지고 있다. 이 경우, 수컷은 암컷이 만들어내는 녹색 불빛에 이끌리지만 암컷은 인공조명 때문에 수컷을 찾기 어려워진다. 때문에 이들의 짝짓기 성공 확률은 크게 떨어지게 된다. 조명을 좋아하는 반딧불이 암컷의 특성이 종족 번식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스테파니 연구원은 “우리는 곤충이 빛을 향해 달려드는데 있어 부정적인 측면 중 하나는 산만함으로 인한 번식 능력의 감소를 발견했다”며 “가로등 등 광원 쪽으로 끌리면 짝짓기, 번식 등에 방해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야행성 동물인 ‘박쥐’도 빛 공해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다. 밝은 빛은 박쥐들의 사냥과 생활을 방해한다. 영국 랭커스터 대학교(Lancaster University) 연구진이 2015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박쥐는 빛이 밝은 공간에선 비행거리가 현저히 줄어든다. 박쥐는 맹금류 등 포식자를 피해 어둠속에서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빛이 많은 지역을 피하는 습성 때문이다. 이 같은 습성은 박쥐가 먹이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스테파니 런던자연사박물관 연구원은 “큰말굽박쥐와 같은 다른 박쥐는 새매와 같은 맹금류 천적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불이 밝은 지역을 적극적으로 피한다”며 “때문에 도심 지역의 인공조명 강도가 심해질수록 박쥐의 먹이 활동 영역이 좁아지고 이는 개체군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생태계 파괴하는 빛 공해… 반딧불·박쥐 개체수 급감
이 같은 빛 공해의 위협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반딧불이종도 급증하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는 2020년 ‘사이프러스 반딧불이(Cypress Firefly)’, ‘점선 반딧불이(Dot-dash Firefly)’가 멸종위기 직전으로 분류되는 ‘취약종(VU)’으로 분류했다. ‘신비 랜턴 반딧불이(Photuris mysticalampas)’의 경우 2013년 개체수가 매우 적은 종에게 부여되는 ‘멸종위기종(EN)’에 들어갔다. IUCN은 이들 종 모두 ‘산림 파괴 및 도시화’를 개체수 감소의 주 원인이라고 게재한 상태다.
미국 터프츠대학교 연구진은 2020년 발표한 ‘반딧불 멸종 위협에 대한 세계적인 관점’ 리포트에서 “포괄적인 검토가 부족한 상황이지만 빛 공해로 인해 전 세계 약 2,000여종의 반딧불이가 보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며 “서식지 손실, 살충제 등 지역별 위협 요소가 다양했지만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빛 공해였다”고 분석했다.
반딧불이와 함께 박쥐 역시 빛 공해로 개체수가 급감하는 추세다. 폴란드 그단스크 공과대학교(Gdansk university of technology) 연구진이 2021년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연례 음악 축제 등 야간 행사가 자주 열리는 지역에서 박쥐의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음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네덜란드 자연보호구역(Natura 2000) 내 서식하는 연못박쥐(Myotis dasycneme)의 개체수를 2011년부터 10년 간 조사했다. 그 결과,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꾸준히 늘어났던 연못박쥐의 개체수는 음악 축제 활성화 및 도시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2016년 이후 한 마리도 관찰되지 않았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도시화가 가속되면서 빛 공해도 심각해지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 스테파니 연구원이 ‘유네스코(UNESCO)’와 공동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우주에서 볼 수 있을 만큼 조명이 밝은 지역은 전 세계적으로 1992년부터 2009년 사이에 19% 증가했다.
런던자연사박물관 연구진들은 “유럽에서는 빛 공해가 매년 약 6.5%로 세계 평균보다 낮은 비율로 증가하고 있다”며 “아프리카와 아시아 역시 밤하늘의 밝기는 매년 거의 8%씩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러한 빛 공해의 증가는 전 세계 인구의 약 30%가 더 이상 북미 지역 인구의 80%에 해당하는 우리 은하인 은하수를 볼 수 없음을 의미한다”며 “이는 생태계의 균형과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의 생체 호르몬인 멜라토닌 생성을 억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세계 각국, 빛 공해 방지 대책 마련…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빛 공해로 인한 생태계 파괴가 심각해지면서 세계 각지에선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분주하게 이뤄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은 유럽이다. 유럽은 북미와 함께 빛 공해가 가장 심각한 지역으로 꼽힌다. 유럽 선진국은 현재 인공조명의 과도한 사용을 줄이기 위한 법적 조치를 시행 중이다.
대표적인 것은 영국과 프랑스의 법안이다. 영국은 ‘청정근린 환경법’에 위법 인공조명에 대한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개인 사생활을 침해할 수준의 조명에 대해선 시정 명령 및 벌금 부과가 가능하다.
프랑스의 경우 환경법전(Code de l′environnement) 제5권에서 등재된 제 3장 ‘빛 공해 방지 원칙이다. 이 원칙은 인공조명이 야기하는 인명 및 환경 위험을 방지·예방하기 위해 2011년 7월부터 시행 중이다. 법안에는 공공 치안, 국방 및 취약한 시설이나 건조물 안전의 목적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명 강도 축소 의무를 시설의 운영자나 사용자에게 부과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미국의 경우 아직 빛 공해를 규율하는 연방법은 없는 실정이다. 다만 주 단위로 관련 주법을 제정 시행 중이다. 최초의 빛 공해 관련법은 1972년 애리조나 주 투손(Tucson)시에서 시행핬다. 현재 100여개 시에서 빛 공해 관련 주법을 시행 중이다. 특히 애리조나주의 경우 백열전구 150W, 다른 광원 70W 이상의 빛이 외부로 새나가는 것을 금지하는 등 강경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빛 공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한국’ 역시 마찬가지. 우리나라 정부는 2013년부터 지난 2013년부터 ‘빛 공해 방지법’을 시행하고 있으나 세계 최악 수준의 빛 공해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2016년 미국, 이탈리아, 독일 등 국제공동연구진이 발표한 ‘G20 국가 빛 공해 순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개 국가 중 2위를 차지했다. 미국 관측 위성 ‘수오미(Suomi) NPP’를 이용해 국가별 인공조명 밝기를 측정한 결과, 우리나라 국토의 89.4%가 인공조명에 뒤덮힌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법적 조치도 중요하지만 우리 실생활의 작은 노력이 빛 공해를 줄일 수 있는 해답이라고 강조한다.
스테파니 연구원은 “빛 공해를 줄이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며 누구나 할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이 있다”며 “당장 당신이 있는 집 안의 빈 방 불을 끄고 창문의 커튼을 닫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집의 전구와 형광등 색을 바꿔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수 있다”며 “흰색 LED조명은 색 연출과 에너지 효율성에 좋지만 너무 밝아 여러 생물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흔히 따뜻한 빛이라 불리는 오렌지색 계열의 전구를 사용하면 야행성 생물들에게 영향을 적게 미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A Global Perspective on Firefly Extinction Threat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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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3 | bioscience |
Bye-bye dark sky: is light pollution costing us more than just the night-tim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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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5. 23 | Natural history museum |
An Impact Analysis of Artificial Light at Night (ALAN) on Bats. A Case Study of the Historic Monument and Natura 2000 Wisłoujście Fortress in Gdansk, Polan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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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28 |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
How artificial light at night may rewire ecological networks: concepts and model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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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8. 30 | The Royal Socie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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