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연미선 기자 19세 미만의 소년이 범죄나 비행을 저지르면 ‘소년보호재판’을 받는다. 이때 소년부 판사는 ‘보호처분’을 내릴 수 있다. 보호처분에는 보호자인 부모가 소년을 돌보도록 하는 것부터 아동복지시설 위탁, 소년원 송치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무엇보다 핵심은 소년 범죄나 비행에 이르게 된 환경에 대해 살피고 이를 변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소년보호처분에는 1호부터 10호까지 총 10가지가 있는데, 이 중 소년에게 일정한 내용의 강의를 듣도록 명령하는 보호처분이 ‘수강명령(2호 처분)’이다. 현재 서울시립청소년드림센터에서 진행되는 수강명령 청소년 교육은 2호 처분 중 교육 처분을 받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집단교육 프로그램이다.
시립청소년드림센터는 지난 2013년부터 서울가정법원 수강명령 위탁 기관으로 지정된 바 있다. 이 센터는 지금까지도 수강명령 처분을 받은 청소년들의 재비행을 예방하고 건강하게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상담 및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선 준법교육이나 생명존중교육뿐만 아니라 요리치유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시사위크>는 27일 수강명령 처분을 받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시립청소년드림센터에서 요리치유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는 추은정 한식전문강사를 만나 음식과 요리가 주는 소통과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추은정 강사는 현재 한식미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숙명여대 전통예술대학원 전통식생활문화전공에서 푸드커뮤니케이터 전문가 과정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 시립청소년드림센터에서 진행되는 ‘수강명령 청소년 교육’에 관해 간략히 소개한다면.
“현재 시립청소년드림센터에서는 청소년의 진로나 학교 밖 청소년 등에 관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중 하나가 법원 수강명령 대상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이다. 필수로 들어야 하는 20시간의 프로그램 중에서 경찰이나 변호사 등과 함께하는 준법교육이나 선도교육도 있고, 제가 맡아 진행하는 요리치유 프로그램도 있다.
저는 (이곳에서) 요리와 관련된 진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다가, 수강명령 교육 중 요리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자는 제안이 와서 함께하게 됐다. 2018~2019년도부터 시작해 코로나 팬데믹 시기 2년 쉬고 지난해부터 재개됐다. 교육을 받으러 온 청소년 중에는 나이가 어리면 초등학생부터 많게는 스무 살까지 골고루 있다. 한 달에 한 번, 3~4시간가량 진행한다.”
– 수강명령 청소년 교육으로 ‘요리치유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 있나.
“사실 처음에는 작은 마음에서 시작됐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한끼 먹여서 보내자는 취지였다. 예를 들어 수제비를 만든다고 하면, 프로그램 1시간 전에 가서 진한 국물을 끓여 놓는다. 그러면 아늑한 집에서 맡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음식 냄새가 풍긴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막상 들어오면 ‘아 배고파’라고 하면서 기웃거린다. 이러한 취지로 시작해 점차 발전하면서 아이들이 이것저것 다양하게 만들어 보는 요리치유 프로그램이 됐다.”
– 닫힌 마음의 문을 열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나.
“조금 놀라웠다. 20시간 내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입을 열지 않을 것 같던 아이들이 밥 한끼 같이 해 먹는 시간이 지나니까 풀어지는 모습을 보이더라. 처음 들어올 때 ‘전 안 해요’라고 거부하던 친구들도 부드러워진다. 4명씩 모여서 모둠으로 진행하는데,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드는 것부터 청소와 뒷정리까지 다 같이 한다. 그전까지는 서로 말도 안 하던 친구들이 (요리 과정을 거치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입맛을 고려하면서도 그때그때 유행하는 주제들을 선정했다. 예를 들면 백종원 비빔국수가 유행할 때는 그걸 흉내도 내보고, 빼빼로데이 시즌에는 빼빼로를 만들었다. 처음엔 참여를 거부하던 아이도 마지막엔 10개씩 만들어 포장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주겠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아이들도 있다. 사실 요리도 일종의 기술이어서 딱 보면 센스가 있거나 잘 할 만한 친구들이 있다. 이런 친구들에게 한번 제대로 배워보는 게 어떨지 물으면 본인도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 교육이 끝나면 아이들에게 피드백을 받는데, 프로그램을 통해 요리에 관심을 갖고 이쪽으로 진로를 정하겠다는 아이도 있었다.”
– 처음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어땠을지 궁금하다.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처음엔 무서운 마음에 경직돼 있었던 건 사실이다.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도 있었지만,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료를 다듬는 도구 사용에 주의가 필요한 때도 있었다. 예컨대 칼은 때로는 흉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 복귀를 준비하려고 마음먹은 아이에게 ‘너는 플라스틱 칼을 써’라고 배제하면 상처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보조 강사가 들어오고 제가 옆에 붙어 돕는 방향을 선택했었다. 물론 이런 경우 프로그램 직전, 기관에서 먼저 상의한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 아이들이 나의 어떤 편견이나 (마음의) 벽으로 더 상처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추억 하나를 안고 갔으면 좋겠다. 그래서인지 매번 기적이 일어난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나갈 때 한껏 부드러워진 모습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안녕히 계세요’라며 인사를 하고 나가는 건 기본이다.
물론 매번 긍정적이고 즐겁기는 어렵다. 갈 때마다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말만 하면 토를 달거나 딴소리하는 친구들이 힘들기도 하다. 그럼에도 많은 아이가 나름의 변화를 거쳐 간다는 점에서 보람이 있다.”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을까.
“경계심이 많고 눈빛도 날카로웠던 친구가 있었다. 보호처분을 받게 된 이유도 다소 심각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이전에 요리를 배워본 경험이 있는 친구였다. 마침 분야도 한식이었다. 사실 한식 분야는 다리 건너 누구인지 아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같이 요리하면서 ‘나도 한식 분야야!’라고 소개하고 어떤 교수님에게 배웠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같은 분야와 관심거리를 이야기하다 보니까 경직된 분위기가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 친구에게는 ‘앞으로 네가 한식 분야에 있게 되면 10년 뒤, 20년 뒤에 또 나를 만나게 될 수 있어’, ‘우리 그때 성공해서 만나자’라고 말했다. 아이가 알겠다고 대답하는데 눈빛이 바뀌는 게 보였다. 그 이후부터는 프로그램에 잘 적응해서 조장도 맡더라. 옆에 아이들에게 ‘너는 어떤 일을 하고 싶어’라고 물으면서 분위기를 주도하고 조를 이끄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 현장에서 요리를 통해 청소년들과 만나 느낀 점이 있다면.
“사실 수강명령을 받으러 온 친구들은 대부분 따뜻한 방식의 소통이나 교류가 부족했던 친구들이다. 그래서 마음을 여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대화를 통한 상담이 어렵기도 하다. 지금 햇수로 거의 5년째 이 일을 매달 하고 있는데, 이 아이들이 처음부터 나쁜 아이들이라기보다는 소통의 방법이 막혀있었던 친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럿이서 음식을 만들려면 양보도 해야 하고 차례도 기다려 줘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는 것이다. 바른 방식의 교류를 배운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많이 배워가는 듯해서 기분이 좋다.”
– 요리에도 다양한 쓰임이 있다. 수강명령 대상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
“원래도 교육 쪽에 관심이 많았다. 한식을 전공하면서도 뭔가 의미 있는 교육을 전달하고 싶다는 고민을 많이 했었다. 지금 한식미각연구소를 운영하는 것도 한식을 전문으로 하면서 이것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하던 것의 연장선 차원이다. 무엇보다 내가 뭔가를 알려주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더라.
그래서 수강명령 청소년을 대상으로 요리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자고 연락이 왔을 때 흔쾌히 대답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내가 전혀 몰랐던 부분에서 배우는 게 많다. 처음에는 그저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아이들이 변화되는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이다. 그래서 푸드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아이디어도 낼 수 있었다. 이를 숙대 전통식생활문화전공에서 논의하고 구체화한 게 푸드커뮤니케이터 전문가 과정이다.”
– 상담에서 자주 쓰이는 미술‧음악과 비교해 요리는 어떤 차별점을 가지나.
“정확하게 얘기할 수 있다. 그 부분 때문에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술이나 음악은 오감을 모두 사용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미술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그리지만, 귀나 코는 쓰지 않는다. 음악도 귀로 듣지만, 맛을 보거나 눈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다섯 가지 감각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활용하는 게 요리다.
여기에 더해 ‘미각’은 단순히 맛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때 소통하는 모든 게 포함된다. 예컨대 우리가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감미로운 음악과 와인 따르는 소리를 듣고, 분위기 좋은 조명 아래서 소중한 사람과 식사했다고 가정하자. 우리는 이 모든 걸 통틀어서 추억 속에 남아 있는 그 맛을 ‘맛있다’고 표현한다. 오감을 모두 사용한다는 점에서 마음을 열기 더 쉽고, 그래서 타 상담 방식보다 라포르(친밀감) 형성이 단시간에 가능하단 얘기다.”
– 식사와 요리의 과정에 생각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
“그렇다. 밥을 먹는다는 개념은 그저 ‘물리적인 섭취’의 의미를 넘는다.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을 ‘식구’라고 부르는데, 사실 요즘에는 가족끼리도 다 같이 모여 밥을 먹기가 힘들지 않은가. 같이 식사하는 과정에서 소통하고 치유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것을 현장에서 적용했던 게 수강명령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 요리를 통한 소통과 치유를 가르치는 푸드커뮤니케이터로서 올해를 정리하자면.
“음식을 접시에 예쁘게 담아서 나에게 주는 선물을 만들고,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내가 만든 음식을 주변에 나눠주는 것이 모여 ‘맛있었다’라는 기억이 되는 것이다. 이걸 그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대충 있는 걸 꺼내먹는 것과 잘 차려진 밥을 먹는 것은 다르다.
센터에서 만난 아이들은 사실 다시 만나지 않는 게 제일 좋다. 아이들도 다시 오고 싶지 않아 한다. 수강명령 처분을 받고 오는 곳이니까 다시 오지 않아야 하는 게 맞다. 수강명령은 기록에 남지 않는다고 들었다. 결국 이 과정은 아이들이 사회에 다시 복귀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내년 강의 일정을 받았다. 내년에도 더 많은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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