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조윤찬 기자 게임산업 생태계의 선순환에는 인재 발굴과 함께 인디게임 지원이 강조된다. 이를 위해 게임업계는 한국게임개발자협회(KGDA)를 만들었다. 소형 개발사와 인디게임 개발자들을 위한 ‘안정적인 게임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시사위크>는 지난 27일 서울시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에서 정석희 한국게임개발자협회(KGDA) 회장을 만나 게임산업 생태계 활성화 관련해 대화를 나눴다.
KGDA에 대해 정 회장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지원하는 예산 사업을 게임산업이 고스란히 혜택을 받도록 가교역할을 하는 기관”이라고 설명했다. 2003년 설립된 KGDA는 △게임 교육 △게임 마이스 △게임 특화기업 인큐베이팅 △게임산업인 권익 보호 활동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정 회장은 ‘게임인 야구단’을 운영하고 게임물관리위원회 등급 직권 재분류 위원회에도 참여하는 등 게임업계를 이끄는 인물이다. 정 회장은 2020년 3월부터 지난 2월까지 4년간 경기게임마이스터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는 등 게임 교육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중이다. 그를 보고 해당 학교에 입학하려는 학생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 눈에 띄는 게임으로 넥슨의 콘솔 게임 ‘데이브 더 다이버’를 꼽았다. 넥슨이 다른 회사에서 하기 힘든 새로운 시도를 계속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안정적인 게임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어떤 사업을 하고 있나.
“중소 개발사나 아마추어 개발자들이 게임을 만드는 데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유니티 등 게임 엔진이 좋아져서 전문가 수준이 아니라도 게임을 만들 수 있다. 협회는 개발비 부담을 덜어주는 사업으로 ‘게임자료 공유마당’을 해왔다. 중단된 프로젝트의 그래픽 리소스를 양도받아 가공하고 개발자에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유니티 에셋스토어에 3D 그래픽 에셋들이 많다면 저희는 기본적으로 2D 에셋을 중점을 두고 배포한다.”
-글로벌인디게임제작경진대회(GIGDC) 성과는 무엇이 있나.
“협회가 진행하는 가장 큰 사업으로 글로벌인디게임제작경진대회(GIGDC)가 있다. 문체부 장관상도 수여돼 신인들을 발굴하는 등용문의 성격을 갖고 있다. 사우스포게임즈의 ‘스컬’이 ‘2019 GIGDC’에서 대상을 받아 박상우 대표가 발굴되기도 했다. 사우스포게임즈는 전남대학교 게임개발 동아리에서 시작해 네오위즈의 투자를 받았다. 이러한 선배들의 성공과 실패 경험담들을 후배들이 참고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해주는 아카이브를 만들고 있다.”
-인디게임 전시회에 나온 게임을 유명 게임사가 퍼블리싱하면 인디게임이 아니게 되는가.
“인디게임이라는 말이 오남용되고 있다고 본다. 음악으로는 락 인디밴드의 저항 정신이 있다. 기본적으로 자본으로부터 독립됐는지가 인디게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예로 원더포션의 ‘산나비’를 네오위즈가 퍼블리싱하면 인디게임이 더 이상 아니라는 말이다. 대학생, 소규모 인력 등으로 인디게임을 정의하는 것은 애매하다. GIGDC에 출품한다면 그 시점에는 투자가 안 돼야 한다. 물론 소액 투자는 가능하지만 시리즈 A나 B 단계가 인디게임에 지원하는 것은 협회의 대회와는 맞지 않는다.
엉성하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한 게임을 인디게임 대회에서 주로 다룬다. 하지만 대기업도 창의적인 게임을 만들 수 있어 아이디어가 참신한 것만으로도 인디게임을 정의하기 어렵다.”
-2월까지 경기게임마이스터고등학교 교장이었는데.
“대학교에 게임학과가 생겨났지만 게임 교육 분야가 성장하지 못했다. 교수가 되려면 박사 학위를 요구하는데 게임 개발자들이 그렇게 되는 것이 쉽지 않다. 실무 베이스 교육이 필요해 게임마이스터고(겜마고)와 게임인재원이 생긴 것이다. 마이스터고는 취업을 전제로 하고 입학하는 학교다. 기숙사 등 모든 교육비(급식비 제외)를 학교에서 제공한다. 대학 진학 교육은 하지 않는다.”
-겜마고 교장 시절 생각나는 일화가 있을까.
“게임축제 지스타가 11월에 열려 수능과 일정이 겹칠 수 있다. 교장은 수능장을 운영해야 해서 지스타에 못 간 적이 있다. 그때 한 학생이 다음에는 지스타에 꼭 같이 가자는 말을 해줬는데, 다음에는 아예 학교에서 지스타 부스를 만들어서 참가했다. 지스타에 무조건 갈 수 있도록 했다. 게임업계에서 ‘게임인 야구단’ 단장을 맡고 있는데 최근에는 겜마고 졸업생들이 신입 단원으로 들어왔다. 그 학생들은 재학생 때부터 야구단에 들어오고 싶어 했다. 학생들이 캐치볼하자고 찾아오기도 했다.”
-타 특성화고와 차별점은.
“기본적으로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육성하는 학교라고 강조했다. 게임은 ‘재미있어?’라는 것이 절대적인 명제다. 스토리텔링도 필요하고 그래픽도 세련되고 플레이 방식과 아이디어도 창의적이어야 하는 등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창의적인 체험 활동을 많이 했다. 단순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을 배우는 것이면 소프트웨어나 앱 만드는 고등학교와 다를 게 없게 된다. 본인이 똑똑하고 훌륭한 것도 필요하지만 협업이 되는 사람이냐가 훨씬 중요하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만 하면 성과가 없다.
입학 전형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일반 전형은 내신 성적이 좋아야 하지만 마이스터 전형은 게임 만든 결과물을 보고 심층 면접을 해서 뽑는다. 학생들 성장 과정을 보면 공부 잘하는 일반전형 학생이 결과가 좋았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버티는 능력이 되는 것이다.”
-중국 게임들이 국내에서 흥행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보고 있나.
“중국 사람들이 한국 공략법을 다 파악했다고 생각한다. 중국 게임이 10위권 안에 몇 개씩 들어있는 상태다. 문제는 사행성 있는 게임들이 한국 규제를 피해서 온다는 것이다.
현재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에서 등급 직권 재분류 위원회를 하면서 사행성 게임을 걸러내는 일을 하고 있다. 게임위가 사후 관리에 집중하는 상황이지만 사전심의가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은 무분별하게 해외 게임이 들어올 수 있는 구조인데 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문제다.
중국은 판호 발급으로 한국 게임을 막고 있다. 한국 게임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도 있을 수 있다. 중국은 외국 콘텐츠가 자국에 들어와서 중국인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작업을 자신들이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불평등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누구든지 사업을 할 수 있게 열어둔다.”
-게임사들이 확률형 아이템 BM을 줄이는 상황이다.
“지금 청소년과 청년들의 게임 소비를 보면 ‘린저씨’처럼 파워유저는 아니다. 이러한 젊은 세대는 지갑이 두툼해질 때 파워유저가 되려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메이저 게임사들은 속히 수익 모델을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넥슨이나 네오위즈가 콘솔 게임을 만들어서 성과를 내는 것이 굉장히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참여하는 디지털경제연합이 일부 고소득 노동자에게 근로시간 제한을 두지 않는 미국을 모범 사례로 제시했다.
“디지털경제연합은 메이저 기업들이 참여한다. 자신들의 산업을 유리하게 가져가려고 정책 제안을 하는 것이다. 미국 사례가 나왔는데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도 근로시간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 소득 기준을 계속 올리고 있다. 소득 기준이 낮으면 안 된다.”
-향후 사업 계획은.
“지난해 7월에 러시아에 다녀왔다. 전쟁으로 서방이 경제 제재를 해 미국과 유럽의 게임들이 철수한 상태였다. 러시아는 이를 기회로 보고 자신들의 게임으로 채우려 하더라. 러시아를 도와줄 수 있는 게임 강국인 나라는 중국과 한국밖에는 없다. 러시아에서 게임을 세계화하는 방법을 물어서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었다. 4월 중에 엑스모라는 회사의 대표가 한국에 온다. 협회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핵심 인력을 교육시켜주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로 할 것이다. 러시아를 시작으로 베트남이나 태국 등의 동남아와 중동 지역에 보급할 수 있는 글로벌 아카데미를 만들려고 한다. 게임 개발 교육과 기업들을 위한 엑셀러레이팅이나 인큐베이팅 쪽이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게임산업 규제가 어떻게 개선돼야 하나.
“개발도상국 시절에 효율적으로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이것만 해’라는 규제가 있었다면 지금은 ‘이것만 안 되고 나머지는 가능하다’는 형태로 변하길 바란다. 제도에 대한 가치관이 전환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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