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영양=박설민 기자 어느 날 문득 집 뒷산에 호랑이가 살게 됐다고 상상해보자. 멸종위기종 호랑이의 개체 수 복원차 방생한 데 따른 상황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당연히 매우 부정적일 것이다. 맹수인 호랑이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호랑이 방생을 철회하라는 민원도 쏟아질 것이다.
물론 호랑이가 집 근처 야산에 방생될 확률은 거의 없다. 하지만 최근 멸종위기종 복원 사업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인근 지역 주민들이 증가하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수달이나 산양이 인근 농가·민가로 내려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로 인해 농작물과 물고기 등을 먹어치워 피해가 발생하지만 이렇다 할 보상 방법도 딱히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멸종위기종을 복원하는 것은 무너진 자연 생태계의 퍼즐 조각을 맞추는 일이다. 특히 자연도태가 아닌 인간 개입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종이라면 더더욱 복원할 가치가 높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임정은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선임연구원을 만나 멸종위기종 복원의 가치, 그리고 인간과의 공생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아무도 내 집 뒷산에 ‘표범’이 오길 바라진 않는다
“사라졌던 멸종위기종이 생태계로 돌아왔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또 인간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예측해 복원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멸종위기종 연구자들의 핵심 과제입니다.”
경상북도 영양군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서 만난 임정은 연구원은 이 같이 강조했다. 임정은 연구원은 현재 센터 내 복원전략실 소속 평가분석팀에서 포유류 복원 연구를 총괄하고 있다. 국가에서 5년마다 진행하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전국분포조사’와 ‘멸종위기 야생동물 신규지정 및 해체연구’도 맡고 있다.
그런 임정은 연구원이 멸종위기종 복원 후 영향에 대한 분석에 힘쓰는 것은 중점 연구 분야와 관계가 깊어서다. 센터에서 여러 분야를 담당하고 있지만 그를 대표하는 연구종은 ‘아무르 표범(Amur leopard)’이다. 흔히 ‘한국표범’으로 알려진 아무르 표범은 과거 한반도 전역에 서식했던 동물이다.
아무르 표범은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며 숫자가 급감했고 현재는 한반도에서 사실상 멸종됐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개체수가 매우 적어 현재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제시한 멸종위기등급에서 ‘위급(CR. 극단적으로 높은 절멸 위기)’ 단계로 분류되기도 한다. 때문에 생물학적 표본으로써 가치는 매우 높다.
하지만 맹수를 복원하는 것은 일반 멸종위기종 복원과는 확실히 다른 문제다. 복원 사업으로 생태계에 방사된 대표적 맹수인 반달가슴곰의 예를 들어보자. 성격이 온순하고 경계심도 많아 등산객이 반달가슴곰과 마주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러나 2009년 일본 노리쿠타 버스터미널에선 반달가슴곰의 습격으로 관광객 12명이 크게 다친 일도 있었다. 더욱이 훨씬 더 공격적인 표범이라면 인근 야산에 복원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임정은 연구원은 “현재 아무르 표범은 러시아 극동 연해주와 아무르 강 일대, 중국 북부 일대, 러시아 표범의 땅 국립공원 등에서 서식하고 있다”며 “민가 습격 등은 거의 발생한 사례가 없지만 가축 등 공격에 대해선 완전히 안전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 누군가에겐 피해가 되는 ‘멸종위기종’ 복원… 개체수 조절·관리 필요
표범, 반달가슴곰과 같은 맹수뿐만이 아니다. 다른 멸종위기종 복원에도 애로사항은 존재한다. 성공적 복원으로 급격한 개체수 증가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때문이다. 이는 가장 대표적인 멸종위기종 복원 사례인 ‘수달’의 예로 확인 가능하다.
수달은 IUCN에서는 해당 지역의 수(水) 환경 ‘건강도’를 판단하는 ‘지표종(Indicator species)’으로 분류한다. 따라서 적절 수의 수달은 그 지역 하천 생물군 균형이 건강히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현재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복원 사업도 성공적으로 이뤄져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선 오는 2027년 수달 보호 등급을 2급으로 하향 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복원 사업 성공으로 급증한 수달은 인근 주민들에겐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수달의 주 서식지가 위치한 지역 어민들은 통발이나 양식장에서 물고기를 도둑맞는 일이 허다하다. 실제로 지난 2012년 3월 해남군 관내 양식장에선 수달 습격으로 우럭 등 양식 어종의 씨가 말라버린 사례도 있다. 작은 물고기보다 큰 물고기를 수달 입장에서 양식장은 그야말로 뷔페인 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서도 비슷한 사례가 존재한다. 일본에서는 1970년대부터 멸종위기종 ‘산양’을 보호종으로 지종, 40년 넘게 복원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당시 100여마리였던 개체수는 현재 10만마리가 넘는 수준까지 불어났다. 문제는 일본 역시 표범 등 최상위 포식자가 없어 산양 개체수 조절에 실패, 농작물과 주변 산림을 다 먹어치워 황폐화시키는 골칫거리가 되고 말았다.
임정은 연구원은 “국내의 경우 현재 산양이나 수달은 멸종위기 1급인 상태인 만큼 보호가 필요하지만 개체수가 증가했을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정확한 예측이 필요하다”며 “일본 산양 개체수 증가로 농작물 피해가 늘면서 현재는 더 이상 보호종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 산양 보전 사업이 잘 추진된다면 국내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산양, 수달 등 멸종위기종의 개체수가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지만 그전에 어느 지점에서 제동을 걸어야할지 기준마련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개체 수 조사 연구가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 결국 핵심은 ‘사전 서식지 연구’… 마주칠 시 관련 기관 연락 필수
결국 멸종위기종 복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지역 주민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는 공생 방안 찾기가 현재로선 시급한 과제다. 이를 위해선 동물 생태 습성을 정확히 이해하는 연구도 필연적으로 뒷받침돼야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
특히 임정은 연구원은 동물들의 ‘서식 환경 조사’는 매우 필수적인 연구 분야라고 강조했다. 복원된 멸종위기 야생동물들이 민가로 내려오는 이유를 파악하고 이를 막을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수달의 경우 인근 양식장에 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등을 설치하고, 동시에 하천으로 유도하는 생태 이동통로를 건설하는 등의 방식이다.
반달가슴곰과 같은 맹수 복원도 사전 서식 환경 조사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예를 들어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연구진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아무르 표범은 암컷 기준 33~136km², 수컷은 155~300km²의 행동 범위를 갖는다. 이를 기반으로 아무르 표범의 생태계 복원을 추진한다면 인간과의 접촉도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등산객, 인근 주민들의 안전 대책 마련도 훨씬 수월할 것이다.
임정은 연구원은 “현재 아무르 표범은 러시아 극동 러시아 지역과 중국, 그리고 북한 북부의 3개 국가 접경지대에 살고 있다”며 “표범은 특히 굉장한 부끄럼쟁이기 때문에 사람이 눈으로 보기 전에 먼저 달아나거나 숨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표범이 완전히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결코 없다”며 “현재 국가적으로 추진하는 표범 및 호랑이 등 맹수의 복원 사업은 관람을 위한 동물원과 달리 최대한 자연 서식지에 가까운 환경을 제공하는 인공 서식지 제공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임정은 연구원은 만약에라도 멸종위기 야생동물과 접촉할 시 멸종위기종복원센터나 환경부, 구조센터 등에 신고할 것도 당부했다. 위험성뿐만 아니라 이들의 야생성을 지켜 인근 마을이나 인간과의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임정은 연구원은 “멸종위기의 야생동물이 민가로 내려오는 이유는 우연도 있지만 쉬운 먹이 활동에 익숙해져서일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귀여운 담비나 삵, 수달 등의 새끼가 다가오면 이들을 뿌리치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사랑스럽고 안쓰럽다는 이유에서 적응 중인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삶에 인간이 직접 개입하는 것은 이들이 야생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만약에 이들을 만날 시 좋은 마음으로 돌보시기보단 관련 기관에 연락해 이들이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