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가속화되면서 전 세계 각국에선 이에 대응하기 위한 ‘첨단과학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관련 산업 규모도 해마다 급성장하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오는 2033년 기후 대응 관련 기술 시장 규모는 오는 2033년 1,830억달러(약 252조4,851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연평균 성장률은 24.5%로 기후위기 대응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정부가 4월 25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의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한 ‘3대 게임체인저 기술 이니셔티브’를 살펴보고 기후위기 과학 연구 사례와 향후 우리 정부가 집중 지원해야할 기술·연구 사례를 분석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양자역학’은 물리학을 넘어 과학 분야 중 가장 난해한 학문으로 꼽힌다. 실제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양자얽힘’ 등 관련 핵심 이론을 살펴보면 헛소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4차 산업시대,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양자이론의 값어치도 높아지고 있다. 그간 풀지 못했던 기술적·과학적 난제들을 양자이론으로 풀어낼 수 있게 되면서다.
특히 최근 전 지구적 난제로 손꼽히는 ‘기후위기’도 양자기술과 이론이 새로운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은 양자 기반 ‘탄소중립’ 기술 개발이 기후위기의 중요한 대응책이 될 것이라 강조한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에 적극적 투자를 약속한 우리 정부는 어떨까.
◇ 핵심은 ‘양자 시뮬레이션’… 구체적 전략 부재는 아쉬워
25일 정부가 확정한 ‘3대 게임체인저 기술 이니셔티브’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기술’로 구성된다. 이 전략안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의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했다.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는 과학 분야 최상위 의사결정 기구에서 검토한 것이다. 즉, 향후 국가 과학 발전의 이정표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국가 양자과학기술 글로벌 주도권 확보를 위해 내년 예산을 최소 2배 이상 확대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양자프로세서, 양자알고리즘, 양자네트워크 등 9가지 양자 분야 핵심기술을 집중 육성한다. 또 2030년까지 양자기술 수준을 최고 선도국의 8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핵심인재도 1,000명 이상 확보한다는 목표다.
이때 양자기술 관련 내용인 ‘퀀텀 이니셔티브’안을 살펴보면 ‘기후위기’와 관련한 대목도 존재한다. 기후위기 관련 내용은 양자기술에 대한 ‘현황 및 전망’ 분석 파트에 담겨 있다. 자문회의는 “양자과학기술은 미래 기술 패권을 좌우할 핵심 전략기술 분야”라며 “경제‧사회‧안보‧기후변화 등 다양한 난제 해결에 중추 역할”이라고 명시했다.
정부가 양자기술을 활용한 기후위기 대응 방안 중 하나로 꼽은 것은 ‘양자 시뮬레이션’이다. 이는 초고성능의 ‘양자컴퓨터’를 활용, 자연계와 같은 복잡한 시스템 동작을 이해·구현하는 기술이다.
양자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면 지구온난화, 오염 및 자완관리와 같은 시급한 환경 문제에 대한 효과적 솔루션 제공이 가능하다. 때문에 자문회의는 환경·기후에 대한 정밀한 데이터 확보 및 시뮬레이션을 위해 양자과학기술에 대한 지속적 R&D 투자 및 정책 추진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양자 시뮬레이션 기반의 기후 대응 관련 내용은 ‘퀀텀 활용 및 서비스 개척-퀀텀 킬러 애플리케이션’ 계획에 담겨져 있다. 세부 계획안에 따르면 정부는 국내 첨단 제조‧서비스 산업에 양자과학기술을 적용,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하고 활용사례를 창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만 아쉽게도 이것을 제외하면 관련 내용은 없었다. 양자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기후위기 대응에 사용할지, 향후 어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양자기술 개발 지원이 있을지에 대해선 구체적 내용이 담겨있지 않았다.
‘퀀텀 킬러 애플리케이션’ 부문에서 기후와 관련된 내용은 서비스 부문의 ‘정밀한 기상‧기후 예측’ 정도만 명시돼 있었다. 때문에 정부의 양자기술 기반 기후위기 대응 능력이 향후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 예측하는 것은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연구기관에서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양자기술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시사위크>에서 국내 양자과학연구를 주도하는 정부출연 연구기관 한 곳에 문의한 결과 “양자기술 관련 연구는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나 기후위기 간 연결점을 갖고 있는 연구자는 아직 없는 것으로 보인다”라는 답을 받았다.
◇ 美·歐에선 관련 기술 개발·활용 중
미흡한 국내 실정과 달리 해외에서는 이미 기후위기에 맞설 핵심 기술로 양자기술을 꼽는다. 미국 스미스대학교 물리학과 연구팀과 보스턴대학교 Rafik B. Hariri 컴퓨터 공학 연구소 연구팀은 2021년 공동으로 발표한 ‘기후변화에 대한 양자기술 예비평가’ 보고서에서 “양자기술은 기후 변화 관련 문제를 평가하고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에서는 기업을 중심으로 양자 시뮬레이션 기반의 기후 대응 시스템을 개발·운용 중에 있다. 미국 IBM은 2019년부터 양자컴퓨터 기반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기상관측 솔루션(GRAF)’을 운용 중이다. 현재 10~15㎢ 규모, 6~12시간 단위로 진행된 기상 관측을 3㎢ 규모, 1시간 단위로 관측할 수 있어 예측 정확도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글로벌 컨설팅 그룹 ‘딜로이트(Deloitte)’은 매년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양자기술 개발에 ‘양자 기후 챌린지(Quantum Climate Challenge, QCC)’를 개최하기도 한다. 딜로이트 그룹은 올해도 QCC 2024를 개최한다. 참가자들은 6주 동안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양자기술 관련 챌린지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우승자에겐 1,2000유로(약 1,800만원)의 상금이 지급된다.
딜로이트 그룹은 “매년 개최하는 QCC는 지속 가능성 및 기후 전문가와 양자 컴퓨팅 전문가 간의 영향력 있는 기후 관련 협력을 촉진을 목표로 한다”며 “각 국가의 산·학·연 연구팀이 함께 모여 중요하고 시급한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자 컴퓨팅의 잠재력을 탐구해 혁신적인 문제 해결하길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유럽(EU)’도 현재 관련 분야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다. 특히 우주항공과학과 양자기술을 융합해 기후위기 대응에 나설 채비를 이미 마쳤다.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양자 기술과 결합된 우주 기반 기후 데이터 및 환경 프로세스 모델링 개발은 유럽이 기후 변화와 미래 재난을 더 잘 평가하고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대표적 사례는 ‘독일 헬름홀츠 율리히연구소(Forschungszentrum Jülich)’의 ‘양자컴퓨터 기반 지구 관측 시스템 개발(QC4EO)’이다. 이 프로젝트는 ‘유럽우주청(ESA)’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수행됐다. 연구기관으로는 헬름홀츠 율리히연구소와 함께 ‘탈레스 알레니아 스페이스’, ‘이탈리아 국립핵물리학연구소’ 등이 포함된다. 세부적 프로젝트 내용은 위성·양자컴퓨터 기반의 기후 예측, 3D모델링 구축이다.
헬름홀츠 율리히연구소는 “우리가 진행한 양자기술과 우주항공의 융합으로 지구 기상 관측에 대한 통찰력 있는 답변과 잠재적 해결책을 제안한다”며 “연구 범위는 12가지 사용 사례, 향후 15년의 기간을 다루며 양자컴퓨팅의 잠재적 이점과 가까운 미래에 필요한 하드웨어의 가용성을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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