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지구온난화 방어 마지노선이 무너졌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넘게 높아진 것이다. 유럽연합(EU) 기후변화 감시 기구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C3S)’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지구 온도는 1.52도 상승했다.
1.5도는 국제사회가 기후위기를 막고자 약속한 한계점이다. 2100년까지 이 온도 이상 상승하는 것을 막는 것이 당초 목표였다. 그러나 운송수단 등에서 뿜어 나오는 온실가스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뿐만 아니라 4차 산업시대 핵심 산업인 인공지능(AI), 로봇, 반도체 생산 등에 필요한 전력 공급량도 급증했다.
하지만 인류 문명이 존속되는 한 ‘에너지’의 사용을 멈출 수는 없다.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는 기후위기의 주범 화석연료를 대체할 친환경 에너지원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물로 생산 가능한 궁극의 친환경 에너지원인 ‘그린수소’에 대한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 급성장하는 PEM 수전해 산업… 국내선 ‘지필로스’가 선두
‘수전해 기술’은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만드는 기술이다. 수소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이 전혀 없어 ‘궁극의 친환경 에너지 기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장 성장 가능성도 충분하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스트레이트리서치(Straits research)’에 따르면 전 세계 수전해 산업 규모는 오는 2032년 132억6,000만달러(약 18조4,194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시장 가능성 덕분에 국내서도 여러 에너지 기업들이 수전해 기술 개발에 매진 중이다. 그중 대표적인 곳은 ‘지필로스’다. 지난 2009년 설립된 지필로스는 국내 친환경에너지 사업을 이끄는 기업 중 하나다. 태양광, 풍력 등에서 생산된 잉여전력으로 그린 수소를 생산하는 ‘P2G시스템’, 전철 제동 시 발생하는 회생에너지를 재활용하는 ‘전력변환장치’는 지필로스를 대표하는 기술이다.
특히 지필로스는 국내 ‘고분자 전해질막(PEM)’ 시스템 개발의 선두주자로 손꼽힌다. PEM 수전해 기술은 이온이 이동 가능한 양성자 교환막 장치와 백금 촉매를 이용한다. 많은 양의 전류가 흘러도 문제없어 수소 생산 효율이 높다. 뿐만 아니라 작은 크기에서도 성능 유지가 가능해 소형화에도 적합하다. 때문에 현재 최신 수전해 기술 산업을 대표하는 기술로 꼽히기도 한다.
이용 지필로스 수소팀장은 “PEM 수전해 시스템과 함께 수전해 양대 산맥 기술로 불리는 알칼라인 타입은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기술적으로도 성숙도가 높다”며 “하지만 알칼라인 수전해는 액체 전해질(주로 수산화칼륨, KOH)을 사용해 누출 및 부식의 위험이 높아서 유지보수 및 안전 관리 비용을 증가시킨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PEM 수전해 시스템은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므로,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알칼라인 수전해에 비해 누출 및 부식의 위험이 적고 빠른 부하 응답성으로 인한 효율적인 재생 에너지와의 연계가 가능하다”며 “또한 PEM 수전해 시스템은 높은 전류 밀도 운전이 가능해 단위 면적당 더 많은 수소를 생산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시스템 크기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국내 최초 수전해 시스템 상용화 인증도 획득… 시장 활성화 기대
PEMEC Pured100K는 국내 최초로 상용화 인증을 받은 수전해 시스템이기도 하다. 지난 4일 지필로스는 한국가스안전공사(KGS)로부터 해당 제품의 ‘수소용품인증(KGS AH 271:2024)’을 받았다. 수소용품과 수소용품 제조자는 상용화를 위해선 KGS가 진행하는 평가를 통과해야만 한다. 이는 ‘수소경제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KGS의 평가를 받아야하는 수소 관련 제품은 △수전해설비 △수소추출설비 △고정·이동형 연료전지 등 4종이다. 수전해설비는 그동안 ‘현장설치형’ 및 ‘초소형 제품’에 대해서만 인증이 진행됐다. 하지만 수전해 시스템 상용화를 위해 ‘공장제조형 제품’으로 100kW급 KGS 수소용품인증을 받은 것은 이번 지필로스의 PEM 수전해 시스템이 처음이다.
지필로스는 수소용품인증 획득을 바탕으로 PEM 수전해 시스템을 여러 사업장에 본격적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올해 지필로스는 첫 도입 사업장으로 부산 두명터널을 선정했다. 도입 모델은 PEMEC Pured100K로 1기가 투입될 예정이다.
두명터널에서는 낮에 태양광 발전으로 생성된 전기를 사용해 PEM 수전해 시스템으로 수소를 생산해 저장한다. 그 다음 태양광 발전이 불가능한 야간에는 저장된 수소를 PEM 연료전지를 이용, 전기로 변환해 LED 및 기타 장치에 전원을 공급하게 된다.
이용 수소팀장은 “실증 사업을 통해 올해 9월 이전까지 스마트 터널인 부산두명터널에 PEM 시스템을 공급할 계획”이라며 “현재는 100kW급 모델 1기를 설치하고 향후 지속적으로 스케일업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수전해 시스템은 KGS 인증이 뒷받침되지 않아 판매와 상용화에 애를 먹어왔다”며 “이번 지필로스의 PEMEC Pured100K 수소용품인증 획득은 지필로스뿐만 아니라 국내 수전해 기술 관련 업계가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 韓수소업계, 부족한 지원·인증 절차에 주춤… 해외 기업 시장 장악 우려
에너지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지필로스의 수소용품인증 획득으로 국내 수전해 사업 발전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외 시장 상황 역시 밝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프레지던스리서치(Precedence research)’에 따르면 PEM 수전해 기술 시장은 약 75억6,000만달러(약 10조4,215억원)로 추정된다. 연평균 성장률은 7.13%로 오는 2032년엔 131억2,000만달러(약 18조859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다만 수전해 사업이 향후 ‘꽃길’만 걸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국내 수소 산업계 현황이 밝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해외 업체들의 시장 장악은 넘어야 할 산이다. 국내의 경우 벌써 노르웨이의 ‘넬(Nel)’, 미국의 ‘블룸에너지(Bloom Energy)’ 등 대형 수소·수전해 기업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특히 넬은 1월 삼성물산으로부터 10MW 규모 수전해 설비 공급 발주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소 관련 특허도 선진국 대비 부족하다. 실제로 ‘유럽특허청(EPO)’에 따르면 2011~2020년 지난 10년 간 수소 관련 특허출원의 28%가 유럽에서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일본이 24%, 미국이 20%로 뒤를 이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7% 수준으로 집계됐다. 10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12.2%로 괄목한 성장을 보이긴 했으나 유럽, 미국 등 앞선 주자를 따라잡기엔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이용 수소팀장은 “수소용품인증을 받은 것은 매우 기쁜 일이나 수전해 장치는 전기와 가스분야의 기술이 융합된 시스템인 만큼 가스안전공사(KGS)에서의 인증 절차 과정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며 “현재 관련 기관들에서도 표준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인증 절차의 효율성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수소·수전해 산업계 전반이 살아나기 위해선 정부의 관련 정책 수립, 규제 완화, 연구개발 등의 지원이 필히 뒷받침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해외 선진 업체들이 기술·자본력을 앞세워 국내 시장을 장악할 것이고 결국엔 한국 수소 산업 전체가 해외에 뺏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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