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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유행[서우석의 문화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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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유행[서우석의 문화 프리즘]

요즈음 외국 여러 나라의 젊은 층에서 한글의 인기가 대단한 모양이다. 시쳇말로 난리가 난 정도라고 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자. 한글을 배우면서 느끼는 재미와 쾌감을 한번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언어에 사용되는 소리를 지칭할 때에 영어에서 “phone”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한국어로는 “말소리”일 것이다. “phoneme”는 “음운/음소”의 두 뜻 모두로 사용하는가 보다. 여기서 우리는 “phoneme”를 “음소”로, “phone”을 “말소리”로 번역해 사용하기로 한다. 훈민정음은 “말소리”를 위해 28자의 “음소”를 제정한다고 명시했으며, 음소들을 자음과 모음으로 나누었고, 이를 조합해 “말소리”를 기록하는 방법을 문자-모양의 그림으로 예시하였다. 한글의 자음/모음 조합으로 만들 수 있는 “말소리” 즉, 글자 수는 8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송아지”라는 말소리를 들으면 그 뜻을 모르는 사람의 경우, 그것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생각해 낼 수가 없다. 그 관계가 인위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상징의 관계”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는, 특히 시각적 상징이 많다. 시각적 상징의 예를 들어보자. “☎”는 전화기, “♨”은 온천, “♀”은 암컷, “π”는 원주율을 상징한다. 앞쪽의 둘은 그 뜻의 짐작이 쉽지만, 뒤의 둘은 사전 지식이 없으면, 알 수 없는 상징들이다.

청각적인 상징을 보자. 우리는 고양이 울음를 “야옹”으로, 중국은 “미야오, 미야오”(喵喵), 일본은 “냐, 냐”라는 의성어로 상징화한다. “喵”은 글자 자체가 고양이의 울음 소리를 뜻하는 한자라고 한다. 의성어는 “전화기”의 상징처럼 짐작하기 쉬운 상징일 것이다. 그러나 언어의 “말소리”는 모호성이 대단히 높은 상징이다. “말소리”의 다음 단계인 단어 차원에 들어서게 되면, 언어의 모호성은 더욱 증가한다. 언어 상징의 모호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리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잠시 일본과 중국의 경우, “말소리”에서 시작되는 상징의 모호성을 줄여나간 방법을 살펴 보자. 일본은 한자를 도입함으로서 이 모호성을 줄였고, 중국은 원천적으로 한자를 만듦으로서 모호성을 해소했다. 일본과 중국 모두 시각적 기록을 사용한 것이다. 일본이 보조적이었다면, 중국은 원천적이다. 그러나 두 언어 모두 “말소리”와 “한자”의 관계를 암기해 두어야만 한다. 물론, 암기하고 나면 편리하다는 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 이 편리함이 한자 사용을 고집하는 원인일 것이다.

조선 역시 한자를 도입해 사용했다. 그러나 일본과는 다른 점이 있다. 한자의 발음을 하나로 정해 놓고 그것을 준수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 “泉”을 음독으로 읽으면 “せん”(센)이고, 훈독으로 읽으면 “いずみ”(이즈미)이다. 한국어에 빗대어 말하면, “木”을 “목”으로도 읽고, “나무”로도 읽는다는 뜻이다. 일본어의 훈독은 뜻을 지칭한다는 의미에서 중국어 방식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중국어는 몇몇 어조사(語助辭)와 외국어의 음성표기를 제외하면, 모두 훈독이다. 중국은 사투리, 또는 언어가 다른 종족에 따라 같은 한자를 다르게 읽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중국 문자는 모두 뜻 글자이기 때문에 “코카콜라, 아프리카”등을 표기하는 데에 상당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이 사물을 뜻하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야 하지만, 교육용 문자의 수를 줄여야한다는 주장 앞에서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프리카를 “阿非利加”(āfēilìjiā)로 음성표기하고 약해서 “非洲”(fēizhōu)로 표기한다고 한다.

한국어에는 훈독이 없다. “蟲”을 “벌레”로 읽지 않는다는 뜻이다. 표의문자를 거부하고 표음문자를 철저히 지킨 점이 한국은 일본과 다르다. 표의문자 세계에 들어서기를 거부한 것이다. 물론 지식인 층의 자기 보호와 과시 본능으로 인해 한자의 표의적인 지각, 즉 한자의 시각적 인식 없이 듣기만으로는 그 뜻을 알기 어려운 문장을 만들려는 경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시각적 개입의 최소화로 인해 한국어는 표음 체계를 철저히 지킬 수 있었다. 이는 말을 알아 듣게 되는, 말소리와 뜻 사이의 연결을 직접적인 것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다시 말해,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独立国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와 같은 어려운 표현도 말소리만 듣고도 그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한글을 읽을 때에 더 중요한 점은 한글의 글자 모양이 세밀한 근육 운동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자의 모양으로 자음과 모음 조합을 명료하게 보여줌으로서, 발음을 위한 신경회로의 형성을 논리적으로 알려준다. 글자를 볼 때마다 구강의 많은 근육들을 어떻게 배합해야 하는가를 직감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글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 연습의 단계를 넘어서서 발음 수행의 자동화에 도달해야 한다. 자동화는 신경회로의 확립과 그 고정화일 것이다. 넘어져가며 연습한 후에, 신경 쓰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단계에 이르는 것과 같다. 자전거를 배울 때의 즐거움과 성공한 순간의 만족감을 “한글-읽기”에서도 느끼는 것이다.

모호성의 감소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일본인들은 “さん”(산)이라는 말소리를 들을 때에 그것이 “낳음/재산”(産), “시큼한 맛”(酸), “셋”(三), “산”(山) 중 그 뜻을 선택해야 한다. 뜻의 모호성을 없애기 위해 한자가 도움을 준다. 따라서 기록이 필수적이다. 언어 발달 과정에서 기록은 구어를 억압하고 지배하기 때문에 한자를 선택하고 나면, 기록된 한자는 “갑의 입장”에 서게 되고, 피할 수 없는 억압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중국 사람들은 “hé”(하) 발음을 들을 때에, 그 모호성을 없애기 위해, 그것이 뜻하는 바에 따라 글자를 새롭게 만들었다. “河”(강), “和”(화합하다), “合”(더하다), “何”(무슨), “盒”(작은 상자)라는 글자를 만들어 그 모호성을 없앤다. 다섯 글자 모두 성조(声调)에서도 같은 “phone”이다. 물론 여기에는, 글자가 먼저 있었는지 말이 먼저 있었는지에 대한 논란을 있을 것이다. 말이 먼저인 경우도 있었고 글자가 먼저인 경우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표의문자의 개입으로 일본과 중국에서는 새로운 발음 개발이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새로운 말소리를 만들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만들지 않게 되었다. 중국은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해결했기 때문에 고민할 일이 없었다. 일본의 경우, “さん”(산)의 여러 뜻인, “낳음, 재산”, “시큼한 맛”, “셋”, “산”을 발음만으로 구별해야하는 요구가 오랜 동안 지속되었다면, 새로운 발음이 개발되었을 것이다.

이 네 뜻을 표기하기 위해 예를 들면, “産”를 “섭”, “酸”을 “싴”, “三”을 “삼”, “山”을 “산”등으로 한국처럼 한 음절로 된 새로운 발음 개발을 개발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보는 것이다. “산”(山)을 제외한 세 발음은 일본어에는 없는 “말소리”들이다.

새로운 발음이 생긴다는 것이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새로운 말소리를 발음을 하기 위해서는, 뇌는 복잡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처음 만나는 말소리를 시도한다는 것은 호흡에서부터 발음과 관련된 혀와 입의 근육 운동, 발음 후의 청각적 확인 등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시도이고 경험이다. 이어서 근육의 움직임을 자동화하고, 발음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즉시 수행이 이루어지는 신경회로를 고정화해야 한다.

한국 사람 중에도 지역과 나이에 따라 “관광산업”을 “간강산업”으로 잘 못 읽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기존의 고착화된 신경회로를 없애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일본 사람들 거의 전부가 “김치”를 “기므치”로 발음하는 것을 보면 올바른 발음 수정이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이제 세계의 젊은이들이 한글을 배우는 즐거움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의 글자를 보았을 때에, 그들은 “자음-모음” 또는 “자음-모음-받침”으로 조합된 하나의 “글자” 모양을 보고, 각각의 자음과 모음의 발음을 순서대로 구사하라는 명령을 뇌에서 내려 보낼 것이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한글을 보고 새로운 “phone”를 시도해야 하고 신경회로의 자동화를 이루어나가야 한다. 정확한 발음에 도달한 다음, 단어의 뜻을 생각하게 된다. 한국어 이해의 긴 여정에 들어서는 것이다.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은 위 표의 “큘, 턀, 펼”등과, “훑어본다”던지 “괜찮다”에서 “훑”과 “찮” 등의 발음을 시도하기 위해서 구강 근육의 경이로운 조합을 명령해야 한다. 우리는 사용하지 않는 “말소리”임을 알고 있는, “퓒, 홻, 괆”같은 한글 글자를 상상할 수 있고, 발음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 놀라운 발음이 상상의 세계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발음을 연습하고 읽혀 갈 때, 한글을 배우는 젊은이들이 느끼는 즐거움과 쾌감은 대단할 것이다. 한글을 일상적으로 읽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 즐거움을 짐작하기 어렵다. 그들은 한글을 배우면서, 글자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자전거 타기에 성공하는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다.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약력]서울대 명예교수 [저서]시와 리듬(1981, 개정판 2011), 음악을 본다(2009), 세계의 음악(2014) 등 [번역]기호학 이론(U. Ecco, 1984), 서양음악사(D. J. Grout,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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