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8월 임시국회에서 비쟁점 민생법안 처리에 뜻을 모으면서 협치의 첫발을 뗐다.
합의 처리 법안으로는 21대 국회에서 야당 단독 처리 후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간호법 제정안을 비롯해, 여야 이견이 적인 법안들이 다수 본회의 문턱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와 ‘25만원 지원금법(민생회복지원 특별법)’ 등 여야가 각각 추진하고 있는 쟁점 현안을 위한 논의는 답보 상태다.
여야 지도부는 이를 위해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입을 모았지만, 실무 협상 첫날부터 틀어졌다.
오는 18일 더불어민주당 새 지도부가 선출된 이후 협의체 구성 논의를 재개할 가능성이 크다.
◇구하라법, 간호법 제정안 등 여야 합의 처리 전망
9일 정치권에 따르면, 22대 국회 개원 후 두 달간 정쟁만 이어가던 여야는 ‘민생법안 처리 0건’이라는 여론 뭇매를 맞고 부랴부랴 머리를 맞댔다. 지난 8일 국민의힘 배준영, 민주당 박성준 원내수석 간 회동을 시작으로 현재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민생법안들을 각 당의 당론 법안 중심으로 간추리고, 법안 내용을 비교하며 이견을 좁히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국민의힘 정책위 핵심관계자는 “양당에서 실무적으로 합의 처리 가능한 안건들을 먼저 검토하고 그 결과를 다시 만나 상의하기로 했다”며 “협의 결과에 따라 (합의 처리할 민생법안이) 확대될 수도 있다”고 했다.
현재 여야가 합의 처리에 공감대를 형성한 비쟁점 민생법안은 ‘구하라법(민법 개정안)’, 간호법 제정안 등 2건이다. 구하라법은 부양·양육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가족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21대 국회에서 1년 넘는 심사 끝에 법사위 법안심사소위까지 통과했지만 ‘채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 국면이 이어지면서 폐기됐었다.
21대 국회에서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던 간호법 제정안은 여야가 절충점을 찾으면서 합의 처리 기대감이 높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9일 현재 제출된 여야 간호법 제정안은 4건이다. 간호사 등 간호 인력 관련 사항을 규정한 독자적인 법률을 제정해 간호에 대한 법 보호 체계를 구체화한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안은 ‘지역사회에서의 간호’라는 표현이 담겨 간호사가 단독 개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사단체 반발이 강했다. 그런데, 22대에서는 이 부분이 삭제돼 더 수월하게 여야 간 접점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이 당론 발의한 간호법안은 ‘진료지원 간호사(PA·Physician assistant)’ 합법화가 핵심이다. 의대증원 이후 의사들의 빈자리를 채워온 간호사들이 강하게 요구했고 정부도 추진해 왔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라디오에서 “PA 간호사 제도 도입은 민주당에서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한 번 협의 처리를 해볼 만하겠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이 외에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예방하기 위해 기술자료 유용행위의 금지 등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법 ▲산업단지 유휴 공간을 신재생에너지 공급을 위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산업 직접 활성화 및 공장 설립법▲범죄 피해자 사망 시 유족에게 구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범죄 피해자 보호법 개정안▲맞벌이 부부 육아휴직 기간을 연장하는 남녀고용평등법 ▲돌봄인력 안심 보증을 강화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아이돌봄지원법 ▲원자력발전 연료로 사용된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 등을 짓기 위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 등도 여야 당론 법안 중 비교적 이견이 적은 것들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반도체 특별법’(반도체산업 경쟁력 특별강화법)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지 주목된다.
22대 국회에 제출된 반도체특별법 5건은 공통적으로 반도체 산업 생태계 강화를 위한 전담 기구를 설치해 5년 단위로 관련 계획을 수립·시행토록 하는 근거를 담았다. 국민의힘 안은 전력 및 용수 공급 등 인프라 구축을 국가가 지원하고, 국가반도체 산업에 대해 조세 감면과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태년 민주당 의원안도 전폭적인 지원안이 담겨 여야 합의안을 수월하게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 의원 안에는 정부 기금과 특별회계로 반도체 산업에 100조원 규모 정책금융을 지원하고, 반도체 기술에 대한 종합투자세액 공제율과 R&D(연구개발) 세액공제율을 현행보다 10%포인트 인상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여야정 협의체, 野 ‘先 영수회담 개최’ 요구에 평행선
여야가 비쟁점 민생 법안 처리에 머리를 맞댔지만 대치 국면은 이어질 전망이다. 세제개편안과 연금개혁 등 쟁점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여야정 협의체 구성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민주당은 여야정 협의체에 국정운영의 책임과 권한을 가진 윤석열 대통령이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수회담을 개최하는 형식으로 윤 대통령이 국정기조 전환과 민생회복에 대한 안을 내놓으면 이후 여야정 협의체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하자는 것이다.
박찬대 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위기 극복을 위한 초당적인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라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진정성과 실천의지다. 야당들이 압도적으로 찬성 의결한 법안들에 거부권을 남발하면서 대화하고 협력하자고 하면 그 진정성을 믿을 수 있겠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협치의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25만원 지원금법을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영수회담과 여야정 협의체 구성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시급한 쟁점 현안인 연금개혁과 세제 개편안 등을 논의하자는 게 협의체 구성의 취지인 만큼 여야가 서둘러 머리를 맞대 절충안을 찾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여야가 먼저 협치에 대한 신뢰를 쌓은 후 대통령을 만나 현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
곽규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민주당은 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국민의힘의 제안에 대통령의 국정 기조 전환을 요구하며 ‘선 영수회담, 후 여야정 협의체’ 조건을 내걸었다”며 “정부·여당이 수용하기 힘든 쟁점법안과 탄핵안들은 밀어붙여 놓고선 이제와 대통령부터 만나자는 하는 것은 ‘일방통행 생떼’에 불과하다”고 했다.
특히 민주당이 더 센 ‘채상병 특검법(순직해병 수사방해 및 사건은폐 등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을 발의하면서 정국은 다시 얼어붙었다. 민주당은 지난 8일 세 번째 발의한 ‘채상병 특검법’에서 수사 대상에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이름을 올렸다.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 등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구명을 요청했다는 불법 로비 의혹을 추가하면서다.
협의체 구성을 놓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여야는 오는 8·18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새 지도부가 선출된 후 영수회담 개최와 함께 협의체 논의를 다시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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