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문이 안 열려.”
2022년 8월 8일 새벽, 2년 전 서울시 한복판에서 4명의 사람이 물에 빠져 죽었다. 2년이 지났지만, 참사가 발생한 관악구 동작구는 침수위험지구에 포함되지도 못했다. 집값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참사 희생자에 대한 진정한 애도는 재발 방지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반지하 폭우 참사 희생자의 울음은 여전히 원통함으로 남아 한국 사회 곳곳에 스며있다.
지난 7일 저녁 서울시의회 앞에서 반지하 폭우참사 2주기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지난 2년 정부와 서울시의 반지하 참사 재발 방지를 되짚고, 제대로 된 기후재난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참사를 배경 삼는 정치, 실패한 대책
기억에서 가물어졌겠지만, 2년 전 반지하 참사 당시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부 여당 인사들의 행태에 전 국민이 아연실색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현장을 홍보용으로 쓴다며 뭇매를 맞았다.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은 수해 현장에서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는 망언을 내뱉었다. 그는 단수공천을 받고 22대 국회에서도 활동 중이다. 그렇게 참사에 대한 진정한 애도와 재발 방지를 위해 진력하기보다, 참사 현장에서의 홍보사진 한 장이 더욱 중요한 정부 여당의 수준이 드러났다.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 또한 반지하에 거주하고 있는 시민의 주거권과 이주 대책 없이 당장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정부와 서울시의 지원으로 반지하를 벗어난 가구는 서울시 전체 반지하 가구의 약 2%에 불가하다. 한국도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서울 전체 반지하 23만 7619 가구 중 4,982가구만 지상으로 이주했다. 이중 월 20만 원 수준의 서울시 반지하 가구 특정바우처를 이용하여 이주한 가구는 786가구에 불과하다.
윤석열 정부는 참사 직후 모든 역량을 총결집해 “더 이상 반지하의 비극 없도록 근본 대책 마련”하겠다는 국토부 명의 보도자료를 내었지만, 그해 겨울 실질적인 반지하 대책이 될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대폭 삭감했다. 보증금 무이자 융자와 공공임대주택을 우선 공급하겠다는 약속은 온데간데없다. 빠르게 공공이 매입하여 주거 이전의 대안으로 확보할 수 있는 매입임대주택은 실적 부풀리기가 드러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당장 폭우가 쏟아지면 현재 반지하를 벗어나지 못한 국민은 또다시 위험에 빠진다. 건물주 동의를 받지 못했다며, 침수 위험 주택 절반에 미봉책에 불과한 물막이판조차 설치하지 못한 상황이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집값 떨어진다는 등쌀에 못 이겨 여전히 방치된 참사의 재발 방지를 잊지 않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참사를 연결하는 비극의 근원을 바라봐야 한다.
모든 참사는 연결되어 있다
반지하 참사가 일어난 지 정확히 2년이 되는 지난 8일, 열사병으로 쓰러진 기초생활수급자가 받아줄 병원을 찾아 헤매다가 사망했다. 폭염이 닥치면 온열질환으로 쓰러지는 저소득층은 고소득층의 3배에 달한다.
기후재난의 시대, 참사 재발 방지가 미흡한 도시 곳곳에서 비극이 연이어 발생한다. 오송역 지하차도 참사, 연이은 전세사기 피해자의 사망 등 재난이 빈번해지고, 높은 확률로 한국 사회의 약자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집에서 황망히 죽어간다.
7일 반지하 참사 2주기 추모문화제 발언에 나선 김은정 기후정의행진 공동집행위원장은 재난은 우리의 처지와 형편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폭우가 아니라 가랑비가 와도 하수처리 시설이 없는 열악한 주거라면 그것은 재난입니다. 혹한이 아니어도, 폭염이 아니어도 길거리 잠은 그 자체로 재난입니다. 그러니 기후위기로 더 혹독해진 계절들은 형벌과도 같을 수밖에요. 이 불평등한 구조에 속박된 삶, 그것이 바로 재난이며 위기인 것입니다.”
기후재난의 시대, 기온의 직접적 영향을 모두 체감하는 거리의 노숙인들과 낮보다 밤에 더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쪽방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여름철이면 곰팡이로 폐질환에 시달리고, 비가 오면 두려움에 잠 못 드는 반지하 거주민들에게까지, 길 위에서 물에 잠겨 죽는 시민들에게까지. 기후재난의 시대, 모든 참사는 불평등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추모문화제 자유발언에 나선 한 시민은 호소했다.
“소중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 봅시다. 폭우가 쏟아져 내립니다. 방안에 물이 차오릅니다. 1~2분 남짓, 소중한 사람의 방에 물이 차올랐습니다. 방문은 수압으로 열리지 않습니다. 유일한 출구로 보이는 창문으로 달려가서 살려달라고 외칩니다. 이웃들이 달려와 방범창을 뜯으려 하지만, 뜯어낼 수 없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절규합니다. 이 비극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습과 판박이입니다. 시민 여러분, 내일은 나의 슬픔이 될 수 있습니다.”
불평등이 재난이다. 기후재난의 시대, 참사로 희생된 모든 이들을 추모하며, 참사의 재발 방지와 불의한 구조의 개혁을 요구하자. 오는 9월 7일 기후정의행진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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