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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행복의 나라’ 유재명의 색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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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의 나라’로 돌아온 유재명. / NEW
영화 ‘행복의 나라’로 돌아온 유재명. / NEW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유재명이 영화 ‘행복의 나라’(감독 추창민)로 관객 앞에 선다. 권력을 위해 재판을 움직이는 전상두 역을 맡아 독보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준 그는 “개인보다는 계속 존재해 온 독재 세력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며 캐릭터 구축 과정을 전했다. 

오는 14일 개봉하는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이선균 분)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조정석 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통해 역사에서 사라진 15일간의 숨겨진 이야기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흥미롭게 재탄생시키며 1,232만 관객을 동원, ‘천만 감독’ 반열에 오른 추창민 감독이 ‘7년의 밤’(2018)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극 중 유재명은 밀실에서 재판을 도청하며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합수부장 전상두를 연기했다. 전상두는 자신의 야욕을 위해 부정 재판을 주도하며 군부 집권을 이어가기 위해 군사반란을 일으킨 주동자로, 막강한 권력을 쥔 인물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티프 했다. 

유재명은 실제 머리카락을 뽑는 등 외적 변신은 물론, 치열한 고민과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자신만의 인물을 완성해 냈다. 이미 수많은 작품에서 다룬 인물이지만 유재명이 빚어낸 전상두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유재명은 ‘행복의 나라’를 택한 이유부터 결코 쉽지 않았던 캐릭터 구축 과정, 촬영 비하인드 등 작품에 관한 다양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전했다.

-영화를 본 소감은. 

“오랜만에 영화로 관객을 만나는데 많이 설렜고 떨렸다. 한참 전에 내부 시사를 통해 편집이 덜 된 상태에서 본 적은 있다. 큰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은 생각이 오갔다. 뜻깊은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나온 영화를 보는 게 쉬운 게 아닌데 보는 내내 아, 우리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처음 제안받았을 때 어땠나. 작품을 택한 이유는. 

“사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전상두라는 인물이 안갯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인물을 빌드업하거나 표현하기에 파악하기 힘든 느낌들이 있었다. 워낙 강력한 이미지의 캐릭터이기도 해서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 인물이 떠오르더라. 잔상이 계속 떠올라서 아직 (캐스팅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한 번 시나리오를 다시 보겠다고 해서 한 번 더 보고 그렇게 하게 됐다.”

자신만의 색깔로 캐릭터를 완성한 유재명 스틸. / NEW
자신만의 색깔로 캐릭터를 완성한 유재명 스틸. / NEW

-‘남산의 부장들’ 서현우, ‘서울의 봄’ 황정민은 물론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배우들이 같은 배역을 연기했다.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고민이나 부담은 없었나.

“그 시대를 다룬 영화가 연작처럼 나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고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 시대가 예민하고 정치적인 문제를 영화로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있구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물론 자연스럽게 비교가 될 텐데 비교보다는 각 작품의 매력이나 장점에 포커스를 맞춰줬으면 좋겠다.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 인물의 이미지, 말투 등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나 역시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영화에서 전상두가 어떤 포지션이며 어떤 연기를 해야 하는지가 제일 중요했다. ‘서울의 봄’ 황정민 선배가 연기한 뜨겁고 열정적이고 카리스마 넘치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무언가 이용하는 모습을 표현했다면 ‘행복의 나라’ 전상두는 조용히 밀실에서 술수와 편법을 쓰는, 광대를 가지고 노는 듯한 뉘앙스로 자신만의 야욕을 드러내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찍을 때 ‘서울의 봄’을 몰랐다. 만약 알고 했다면 헷갈렸을 거다. 몰랐기 때문에 잘 집중할 수 있었다.”

-비주얼도 강렬했다. 외적 표현을 위한 준비 과정도 궁금하다. 

“분장팀과 콘셉트를 정리하면서 테스트 삼아서 이마 라인을 면도하고 정리했다. 나는 내가 실존 모티프가 된 인물과 닮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사람들이 너무 닮았다고 해서 놀랐다.(웃음) 내부 시사할 때도 깜짝 놀랐거든. 내 얼굴이 그 사람이 있다고. 하하. 여러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분들의 도움으로 잘 만들어진 것 같다.”

-분장이 아닌 직접 머리를 밀었다고. 

“아무래도 연극을 많이 하다 보니까 그런 것에 대한 부담감이 없는 것 같다. 이미지를 바꾸는 것에 대해 부담감이 없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테스트 삼아 해보지 뭐 했다. 몇 번에 걸쳐서 잘 만들어진 것 같고 머리를 밀고 나서 모자 쓰고 다니면 되니까 부담감은 없었다.” 

유재명이 캐릭터 구축 과정을 떠올렸다. / NEW
유재명이 캐릭터 구축 과정을 떠올렸다. / NEW

-캐릭터 그 자체로서 전상두를 표현하는 핵심 키워드가 있다면. 

“전상두는 악마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노 웨이 아웃’ 김국호는 분명한 죄를 저질러서 출소한 인물이고 인간 본성의 악마성을 가진 인물이지만 전상두는 신군부라고 표현되는 권력, 한국 근현대사에서 계속 존재해 온 독재 세력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키워드라고 한다면 전상두라는 인물보다는 그 세력의 상징. 그래서 개인, 연기하는 유재명이나 전상두가 드러나는 것보다 그 세력이 표현될 수 있길 바랐다. 유심히 보면 알겠지만 나를 잡는 카메라 각도가 조금 다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고 크게 나온다. 빛과 어둠, 그늘을 이용해 엄청나게 크고 검은 세력을 잘 잡아준 것 같다.”

-인물의 서사가 드러나는 장면이나 대사가 상대적으로 많진 않았다. 그래서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다 중요했다. 연기적으로는 어떤 고민을 했나.

“대사도 많고 신도 많고 자신의 야욕을 빌드업하는 과정이 더 많았다면 더 강력한 인물로 표현하려고 애썼을 것 같다. 내 연기가 폭발하길 원했을 거다. 만약 그런 시나리오였다면 또 다른 평가를 받았겠지. 왜 저렇게 욕심을 부려? 하고.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박태주 등 인물들의 연기를 바라보면서 저들 사이 어떻게 리듬을 띄우고 연결하는지, 어떻게 권력으로 그들을 누르는지 보였던 것 같다. 눈빛이나 고개 각도 같은 섬세함, 느껴지는 뉘앙스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크게 소리치는 신도 없고 웃는 신도 없고 잠시 멈춰있는 듯한 스틸 같은 느낌이었다. 추창민 감독님과도 그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다행히 잘 표현되지 않았나 싶다.”

-‘멈춰있는 스틸’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연기적으로 꽤 큰 도전이 됐겠다. 

“그래서 신나게 질러도 봤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다. 더 에너제틱하고 강력하게 한 테이크도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감독님이 지금의 것들을 선택한 거다. 정인후와 박태주의 서사 사이사이에 가만히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게 리듬을 뽑아낸 것 같다.” 

-추창민 감독이 주문한 것은 무엇인가. 

“촬영 3일 전쯤 추창민 감독님과 면담을 한 적이 있다. 배우들은 촬영 직전에 불안감에 휩싸이거든. 준비한 것을 잘할 수 있을까, 준비한 것이 맞을까 부담감이 기본적으로 따라온다. 추창민 감독님에게 ‘나를 좀 만들어달라’고 했다. 감독님이 본인에게 직접 자기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게 낯선 경험이라면서 같이 만들어보자고 답을 줬다. 그때부터 엄청나게 많은 버전으로 매 테이크에 임했다. 다르게 표현하고 싶은 게 있는지 이렇게 해보겠다고 하면서 또 해보고 그렇게 같이 만들어갔다. 어떤 신은 10개 버전으로 했다. 감독님이 굉장히 좋은 의미로 집요하고 뚝심이 있다. 그런데도 열려있다. 많이 열어줬기 때문에 ‘행복의 나라’가 좋은 밸런스를 가진 영화로 나오지 않았나 싶다.”

유재명이 고 이선균을 떠올렸다. / NEW
유재명이 고 이선균을 떠올렸다. / NEW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장면은 무엇이었나. 

“거의 모든 신들이 기본적으로 많은 버전, 많은 시도를 했다. 불안해서 그런 게 아니라 더 보여줄 게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스태프들이 힘들어할 정도였다. 가장 공을 들인 장면은 첫 촬영이다. 분장하고 처음으로 촬영한 신. 그 신을 하고 나서 약간의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동료 배우와 스태프의 눈빛으로 신뢰감을 느꼈을 때 이제 한 발 뗐구나 싶었다.” 

-이선균의 유작이기도 하다. 어떤 심정인가. 

“이번 영화가 공개되면 ‘배우’ 이선균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마음은 충분히 전달한 것 같고 이제는 그런 이야기가 절제되고 배우 이선균이 어떤 배우였는지, 그가 남긴 작품이 유작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지만 그런 타이틀보다는 이선균의 연기 자체, 그 연기가 가진 결을 소개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 영화는 다시 찾아볼 수 있지만 사람은 다시 찾아볼 수 없다는 말처럼 이 영화를 통해 이선균이라는 배우를 찾아볼 수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그게 가장 솔직한 마음이다.

(이선균이) 굉장히 힘든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박태주는 전상두 못지않게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인물이었다. 눈빛과 태도와 뉘앙스 몇 가지만 가지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보여줘야 했다. 가족과 자신의 목숨, 조국과 자신의 신념 사이에서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진 인물이었다. 같은 연기자 입장에서 정말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꾹 다문 입, 그의 눈빛을 보면서 고생을 참 많이 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사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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