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기차 화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진화(鎭火) 장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소방당국은 전기차 화재 진화 장비로 질식 덮개, 이동식 수조, 상방향 방사 장치 등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장비마다 진화 역량에 한계는 있다. 이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에 구멍을 뚫어 물을 쏟아붓는 방식의 새로운 진화 장비가 등장하고 있다.
◇소방당국 질식 덮개 826개 보유… 열 폭주 시작되면 역할 못해
전기차 진화 장비 중에 질식 덮개는 가장 간단한 형태다. 차량 보호 덮개와 비슷한 형태로 불이 난 전기차를 덮어 공기를 차단하는 것이다. 덮개 보관함까지 포함해 1세트당 200만~300만원 수준이며 전국 각 지역 소방본부에 총 826개가 보급돼 있다.
서울 강남구도 지난달 지역 공영주차장 56곳 가운데 전기차 화재 시 인명·재산 피해가 크게 이어질 수 있는 실내 주차장 20곳에 질식덮개 22개를 설치했다.
하지만 전기차 화재 시 리튬 배터리의 열 폭주가 시작되면 배터리 자체적으로 산소가 발생하기 때문에 질식 덮개는 더 이상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동식 수조 272개 보급… 가격 비싸고 설치에 시간 걸려
불이 난 전기차를 물이 담긴 수조에 넣어 화재 진압을 할 수 있다. 전국 각 지역 소방본부에 이동식 수조 272개가 보급돼 있다. 진화와 냉각 효과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이미 불이 어느 정도 잡힌 전기차를 이동식 수조에 넣어 다시 불이 붙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서 “이동식 수조 보급이 부족하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이동식 수조도 한계는 있다. 전기차 화재 현장에서 수조를 설치하고 물을 채워넣는 데 시간이 걸린다. 또 불이 붙은 전기차를 이동식 수조 속으로 옮기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동식 수조의 가격이 재질에 따라 적게는 800만원, 많게는 2000만원에 이르는 것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상향식 방사 장치 1738대… 배터리 뚫어 물 쏟아붓는 형태로 進化
상향식 방사 장치는 배터리가 있는 전기차 바닥에 분수처럼 아래에서 위로 물을 뿜어주는 장비를 넣어 진화하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현재 소방 당국은 1738대의 상향식 방사 장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민간에서도 전기차 주차장이나 전기차 충전기에 상방향 분사 장치를 도입하고 있다. 롯데백화점·롯데몰·롯데아울렛의 모든 점포에 상방향 방사 장치가 설치돼 있다고 한다.
국립소방연구원의 나용운 연구사는 “상방향 방사 장치 등장 이전에는 멀리서 하부 배터리팩에 물을 직사(直射)해 전기차 화재 진화에 6~7시간이 걸렸다”면서 “상방향 방사 장치 도입 후에는 진화 시간이 1시간 내외로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다만 전기차 배터리를 두꺼운 팩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상향식 방사 장치도 신속한 진화에 한계가 있다. 전기차에 불이 붙고 번지는 원인은 배터리팩에 둘러싸인 배터리 셀인데, 배터리 팩에 막혀 소화수가 배터리 셀에 직접 닿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화재 초기의 골든 타임을 놓치면 배터리 열 폭주 현상이 일어나면서 진화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상방향 방사 장치도 진화에 도움이 되지만, 배터리 팩을 뚫고 소화수를 주수(注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기차 배터리 팩에 구멍을 뚫어 물을 쏟아붓는 형태의 진화 장비가 개발돼 있다. ‘배터리 팩 관통형’ 상방향 방사 장치를 개발한 비즈케어의 이정민 대표는 “배터리 팩에 구멍을 뚫어 발화점에 최대한 가까운 곳에 소화수를 주입하면 화재 진압 효과가 더 크다”며 “소화수가 배터리 팩 사이의 틈까지 들어가 주변 배터리 팩까지 냉각시키면, 연쇄 열 폭주 현상을 막을 수 있어 화재 초기 골든 타임이 지나더라도 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케어의 배터리 팩 관통형 상방향 방사 장치는 지난 2023년 모터를 이용한 관통 장치 개발로 국내 특허 등록을 했고 현재 국제 특허를 출원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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