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통신조회는 진보언론, 대안매체, 시민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파나 매체를 떠나서 근본적으로 언론이 수행해야 할 알 권리와 취재 보도 자유의 근간을 공격한 범죄다. 단순하게 ‘나 아니다’, ‘우리 매체 아니다’라고 보지 말고, 이 문제의 둑이 터졌을 때 전방위적으로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 (전대식 전국언론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긴급 기자설명회 ‘검찰의 언론인 사찰 규탄 및 통신이용자정보 무단 수집 근절 방안’(전국언론노조·정보인권연구소·진보네트워크센터·참여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주최)에 참석한 전대식 수석부위원장이 언론에 검찰의 통신조회 관련 적극적인 보도를 당부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를 수사하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1부가 언론인, 정치인 등 수천 명의 통신이용자정보를 무분별하게 조회한 사실이 사후 문자 통지를 통해 뒤늦게 드러났다. 검찰은 올해 1월경 해당 통신이용자정보를 이동통신사로부터 제공받은 사실을 약 7개월이 지난 2일 문자로 통지했다. 통신조회 규모가 3000여 명에 달할 거란 주장도 나오고 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도 이번 사안을 정파적 관점이 아닌 인권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대표는 “언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과거, 현재 발언을 비교하며 서로 내로남불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며 “그렇게만 보면 이 사안은 그냥 정파적 주장이 된다. ‘검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는 정당한데 정치적 세력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구나’라고 보게 된다”고 우려했다.
오 대표는 “정치세력에서 자신들이 불리할 때 ‘정치 사찰’이라고 주장했다는 것 자체가 현 제도가 얼마든지 정치 사찰로 활용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검찰 등 수사기관의 통신이용자정보 수집 관련 제도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오 대표는 “검찰 등 수사기관이 수집한 자료는 단순한 인적 사항에 그치는 게 아니라 통신 대상자 사이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며 “여러 사람에 대한 통신자료가 분석되면 사람들 간의 사회적 네트워크, 소셜 그래프가 만들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통신이용자정보엔 통신가입자의 성명과 주민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 정보가 포함돼있는데, 특히 주민등록번호는 서로 다른 개인정보를 연결할 수 있는 민감한 정보다. 오 대표는 “주민등록번호를 통해선 다양한 데이터를 엮어낼 수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통신자료 제도 관련 위헌 결정 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가 강력한 연결자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개인의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언론인이나 정치인의 경우 통신자료를 통해 취재원, 제보자, 내부고발자 등 엄격한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의 신원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국제 인권기구들도 통신이용자정보의 민감성과 엄격한 보호의 필요성에 대해 지적해왔다. 오 대표에 따르면, 2015년 유엔 자유권위원회에선 한국 수사기관이 단순히 수사목적이란 이유로 영장 없이 통신자료를 요구하는 것을 우려하며 한국 정부에 ‘이용자 정보는 영장이 있을 때만 제공할 것’을 권고했다. 2019년 한국을 방문한 유엔 프라이버시 특별보고관 또한 한국이 다른 국가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통신자료 열람 요청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과도한 요청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통신자료 요청 시 사법부의 감독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도 권고했다.
오 대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공개하는 통신이용자정보 수집 현황에 따르면, 매년 대한민국 인구의 10%, 즉 500만 건 내외의 통신자료가 정보 수사기관에 제공되고 있다”며 “통신수단별로 보면 이동 전화에 통신자료 요청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이동 전화의 경우 각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동전화를 통해 개인 정보가 수집됨으로써 이용자 프로파일링이 훨씬 광범위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은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변호사는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통신이용자정보 제공요청을 통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수사기관의 자의적 행사를 막기 위해 영장 또는 허가와 같은 법원의 사전적 통제가 도입돼야 한다며 통신이용자정보 수집에 대한 정기적인 감독과 투명한 공개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위법하거나 부당한 통신이용자정보 수집에 대해서도 구제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현행 사후통지제도 관련 통지유예할 수 있는 사유를 엄격하게 한정하고, 최소 유예기간 7개월을 더 단축하며 통지유예가 장기간 계속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 수사 자체가 법률적 근거 없어”
검찰 명예훼손 수사 자체의 위법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유승익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은 서울중앙지검의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의 수사 자체가 법률적 근거가 없다며 “검찰은 대검찰청의 비공개 예규를 통해 근거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비공개 예규에 근거해 강제적 처분권을 포함하고 있는 수사를 하는 게 과연 적법한가”라고 물었다. 아울러 “명예훼손죄 관련 대규모 수사팀을 꾸리고 대규모 통신조회를 하는 건 굉장히 이례적이며 무분별하고 무작위적”이라며 “형사법의 대원칙인 ‘수사 비례성’ 원칙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유승익 부소장은 이어 “검찰이 대규모 정보를 조회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사법적 통제도 받고있지 않다. 어떻게 관리되고 폐기되는지에 대한 자체 지침도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다”며 특히 그 대상이 주요 정치인, 언론인이라고 한다면 이렇듯 대규모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는 행위 자체가 ‘사찰’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검찰은) 통지 유예 규정 자체를 악용하고 있다”며 “취재원 비밀권이라는 헌법상 기본권 전체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뉴스타파는 현재 검찰의 무더기 통신조회 관련 제보를 받는 창구를 마련해 운영 중이다. 전대식 수석부위원장은 “뉴스타파 담당자와 통화해보니 현재 시점 100여 건 정도 제보가 들어와 있다”며 “황당한 경우가 많다. 참고인들의 지인과 친척들까지도 들어가 있고, 언론노조가 아닌 다른 산별 노조 간부들도 통신 조회 대상이 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언론노조는 언론인 사찰과 연루된 사안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야당과 공조해 국정조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과연 3000명 이상 추정되는 사람들을 통신조회한 것이 명예훼손 수사에 필요했던 수사 방식인가, 공무원들이 해선 안 될 직권남용 혐의는 없는가 따져봐야한다”고 했다. 아울러 “보도된 부분들에서 사실인 부분과 아닌 부분들, 고의와 과실을 입증하면 되는 수사를 통화했다는 이유만 가지고 통신자료정보를 조회한 것은 명예훼손을 빙자한 관련자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만들기, 저인망식 수사이자 범죄”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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