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토요일 저녁, 중국 산둥성 칭다오시 황다오구 금사탄 해변. 퇴근 시각이 지난 시각임에도 도로는 여전히 마비 상태였다. 지난달 19일 개막한 ‘칭다오 글로벌 맥주축제’의 폐막일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탓에 마지막으로 축제를 즐기려는 이들이 몰려든 것이다. 한참 뒤에 겨우 들어선 축제장의 규모는 엄청났다. 450만㎡(약 130만평) 부지 내에는 각 브랜드별 맥주 판매점부터 대형 공연장, 놀이공원, 쇼핑센터까지 다양한 공간이 갖춰져 있었다. 독일의 ‘옥토버페스트’, 일본의 ‘삿포로 오도리 비어 가든’과 함께 세계 3대 맥주 축제로 불리는 만큼 올해엔 세계 각지 2200여종의 맥주가 출품됐다고 한다.
메인은 단연 주요 맥주 브랜드들의 3000㎡(약 910평)짜리 초대형 부스가 모여있는 광장이었다. 칭다오맥주와 옌징맥주를 비롯해 듀벨, 칼스버그, 하이네켄, 바르슈타이너 등 국내외 브랜드 9곳이 차린 각 부스 앞은 야외석부터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열대야 속에서 관람객들은 3ℓ짜리 대형 맥주타워를 두세개씩 붙잡고 쉴 새 없이 맥주를 따라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이 먹어치우는 맥주량이 아닌, 중국인 남성들의 ‘노출’이었다. 어림잡아도 족히 절반이 넘는 남성들이 상반신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맥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나이는 상관없었다. 어린 남자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상의를 제대로 갖춰 입은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칭다오맥주 브랜드 중 하나인 ‘칭다오 1903′관으로 들어서자 이들의 노출이 더욱 와닿았다. 부스 내부는 칭다오 맥주의 상징인 초록색과 살색, 두 가지 색상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부분의 남성들이 티셔츠를 벗고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었다.
‘방예(膀爺·웃통 벗는 남성)’라 불리는 중국 남성들의 노출 문화는 대도시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상의를 다 벗는 대신 밑부분을 돌돌 말아 명치까지 올려 배를 다 드러내놓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은데, 서구 언론에서는 이를 여성 비키니 수영복과 비슷하다고 해서 ‘베이징 비키니’라 부르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중국 정부는 남성들의 상반신 노출이 국가 이미지를 해친다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2019년에도 톈진 등 일부 지방정부가 벌금까지 물려가며 방예를 뿌리뽑기 위해 노력했는데, 여전히 대도시 밖에는 그 문화가 남아있는 것이다.
칭다오 맥주축제에서 목격한 남성들의 상반신 노출에 대해 산둥성 출신의 한 중국인은 “외국인들이 보기에 비문명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라면서도 “중국인들의 독특한 문화로 이해해 달라. 상의를 벗는 행위를 통해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노출 수위가 낮고, 이러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은 남성 뿐이라는 점에서 중국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남성들의 과도한 노출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관람객에 비해 화장실은 부족했고, 위생 상태도 엉망이었다. 이날 찾은 부스 옆 화장실은 여성의 경우 단 한 칸에 불과해 오랜 시간 줄을 서야 했다. 게다가 대기 중인 여성들은 바로 옆에서 소변을 보는 남성들의 뒷모습을 고스란히 보고 있어야 했다. 함께 줄을 선 한 여성은 기다리다 지쳐 다른 화장실을 찾으려는 기자에게 “화장실이 많지 않고 그마저도 멀리 떨어져 있어 여기서 줄을 계속 서 있는 게 나을 것”이라고 했다.
낯선 풍경과 불편한 시설 등 때문인지 이날 칭다오 맥주축제에서는 정식 이름에 들어가는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외국인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올해 관람객 데이터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지난해의 경우 한 달 동안 600만명 넘게 축제장을 찾았다고 한다. 입장권은 무료이지만 실명 등록이 필요한 만큼 외국인 관람객은 얼마나 되는지도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날 만난 칭다오맥주축제 관계자는 “외국인 관람객은 따로 집계하지 않고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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