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확산하면서 글로벌 자본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국내 자본시장도 풍파에 휩싸였다. 지난 5일 전일 대비 8.77% 하락했던 코스피 지수는 6일엔 3.3% 반등했다. 일본 증시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7일은 상승세를 이어갈지, 다시 하락 전환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간이다.
관건은 미국 경제 상황이 본격적인 경기 침체를 논할 만큼 나쁘냐는 것이다. 6일 조선비즈가 취재한 정부와 한국은행을 비롯해 학계·시장의 거시경제 전문가들은 시장을 압박하는 ‘미국발 R의 공포’가 실제보다 과장됐다고 보는 경우가 많았다. 외신에서는 바캉스 시즌 증권 거래소의 베테랑이 휴가를 가 발생하는 ‘여름의 광란’(summer madness)이라는 해석(이코노미스트지)도 나오기도 했다.
◇ 美 7월 실업률 4.3%가 촉발한 ‘R의 공포’
실제 미국의 경기 상황이 침체를 우려할 만큼 나쁜 것일까.
R의 공포가 빠르게 확산한 계기는 미국 노동부의 7월 고용동향 발표였다. 미 노동부가 지난 4일(현지시각)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미국의 7월 실업률은 4.3%로 전월 대비 0.2%포인트(p) 올랐다. 2021년 10월 4.6%를 기록한 이후 2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7월 비농업 일자리는 전월 대비 11만 4000명 늘었지만, 시장 예상치(17만6000명)에는 미치지 못했다.
미국은 민간소비가 국가경제의 70%를 차지한다. 민간소비의 60%는 임금이 지탱한다. 고용시장이 냉랭해진다는 것은 소비도 둔화된다는 의미이다. 소비가 위축되면 피드백 작용에 의해 고용시장이 더욱 나빠진다. 고용 악화가 초래하는 경기침체의 양상이 이렇다.
특히 미국의 실업률은 올해 3월 3.8%를 기록한 이후 4월(3.9%), 5월(4.0%), 6월(4.1%), 7월(4.3%)까지 계속 오르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실업률 지표만 보면 경기 침체 지표로 종종 활용되는 ‘샴의 법칙’(Sahm rule)과도 맞아 떨어진다. 샴의 법칙은 최근 3개월 평균 실업률이 1년래 최저치보다 0.5%p 이상 높으면, 경기 침체 시그널로 봐야 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샴의 법칙은 고용 감소 속도가 경제활동참가율 하락을 앞지르면서 실업률이 높아질 때에 해당한다. 때문에 경제활동참가율 상승 속도가 고용 증가 속도를 앞지르면서 나타나는 지금의 실업률 상승 상황과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고용 둔화 영향으로 미국의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지금의 공포는 너무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미국의 경기가 서서히 둔화 흐름으로 간다고 볼 수는 있지만 경착륙을 시사하는 지표는 거의 없다”며 “실업률 4.3%도 그렇게 높은 수준까진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 실장은 “미국의 2분기 성장률이 연율 기준 2.8%를 기록하는 등 실물 지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라며 “미국 경제가 경착륙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7월 고용동향의 지표에 자연재해 등 특수적 상황이 많이 반영됐다는 점을 감안해서 봐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허진욱 삼성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7월 고용 조사 기간 중(12일이 속한 주) 텍사스를 통해 상륙한 허리케인 베릴에의 일시적 영향이 상당히 컸다”며 “7월에 기상 악화로 출근하지 못한 근로자가 46.1만명으로 7월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일시적 해고(temporary layoff)에 따른 실업자가 7월 전체 실업자 증가의 70%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 韓 영향은 제한적… “경제 흐름·자금시장 안정적”
정부와 한국은행은 미국에서 시작된 ‘R의 공포’가 국내로 번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날 국내 증시가 한때 8% 넘게 하락하면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긴 했지만, 6일 다시 급등하면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도 이런 시각에 힘을 싣는다.
특히 국내 경제 상황이 전반적으로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는 데다 외환·자금시장은 양호한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 상반기 국내총생산(GDP)은 1년 전보다 2.8% 성장하면서 2022년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2분기 연속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일 때 경기침체로 정의한다. 이를 감안하면 아직 국내 상황은 경기 침체와는 거리가 멀다.
자금시장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회사채 3년물(AA-, 무보증) 금리는 5일 기준 3.271%로 마감하면서 전일대비 12.3bp(1bp=0.01%포인트) 내렸고, 기업어음(CP, 91일물) 금리도 전일대비 4bp 내린 3.77%에 마감했다. 회사채와 CP금리가 낮으면 기업들이 적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제위기가 오면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실물시장까지도 영향을 받는데, 지금은 주식시장만 변동성이 커졌다”면서 “원·달러 환율도 다른 통화와 비교하면 변동성이 크지 않았고, 자금시장은 회사채 금리 등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 자금조달이 대체로 양호하다고 보여진다”고 했다.
다만 단기적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은 있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엔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일본 엔화를 빌려 전세계의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하는 것) 청산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엔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면 투자자들이 미국의 주식이나 채권을 팔고 투자금을 회수하므로, 미국 증권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미국에서 경기 성장 모멘텀이 약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 경제에 긴밀히 연결돼있어서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도 “다만 단기적으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는 게 기조적인 경기 흐름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 8월 금통위로 쏠린 눈… 시장선 ‘조기 인하’ vs ‘10월 인하’ 분분
시장에선 경기 불안이 금리 인하로 이어질지 주목하다. 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는 오는 22일 열릴 예정이다.
이번 회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9월 금리 인하 기대감이 높아진 상태에서 열리는 만큼 금리 인하와 관련된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최근 불거진 미국 경기 침체 논란도 한은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도 8월 인하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고 있다. 미국 경기가 침체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간의 확장국면을 마치고 둔화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에서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채권전략팀장은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인 만큼 정책 대응에 늦었을 때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면서 “8월에 금리를 인하한 뒤 시차를 두고 효과를 지켜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애초 8월 금리인하가 가능하다고 봤는데 대외발(發) 경기 불확실성 요인이 부각되면서 기존 의견을 견지한다”면서 “미국 경제가 침체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는 않지만, 지금은 침체 우려에 대비해 통화당국이 대응해야하는 변곡점이라고 본다”고 했다.
그러나 시장 흐름을 좀 더 지켜보고 10월에 금리를 인하해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물가 안정세를 더 봐야 하고, 가계부채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난 7월 금통위에서 가계부채로 인한 금융불균형 리스크를 경계한 바 있다”면서 “스트레스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가 시행되는 9월까지 시장 상황이 나아진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10월에서야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황승태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에서 9월 금리를 낮추면 금통위에서는 그 이후에 통화정책을 전환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지금 당장 금리를 낮춰야할 정도로 현재 경기지표들이 향후 경기를 확정적으로 예측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도 “인하 시점은 10월로 예상한다”면서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도 과장된 것으로 보이고, 국내 실물지표도 갑자기 망가질 것 같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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