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검은 눈은 생기가 없어. 마치 죽은 인형의 눈 같아. 들리는 것이라곤 끔찍한 비명뿐이야. 바다가 붉게 변하고 저항하지만 놈들이 몰려왔어. 그리고… 사람을 조각조각 찢어버렸어.”
(He’s got lifeless eyes, black eyes, like a doll’s eyes. Then you hear that terrible high pitch screamin’, The ocean turns red, and spite of all the poundin’ and the hollerin’, They all come in and they rip you to pieces.)
– 영화 ‘죠스(JAWS, 1975)’ 중, 퀸트 선장의 대사-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죠스’에서 묘사된 것과 달리 상어는 포악한 살인기계가 아니다. 매우 부끄럼이 많고 사람을 피하는 성질을 가진 동물이다. 대다수 상어의 공격도 실제 먹이 사냥 활동이 아닌 호기심에 의한 ‘접촉’일 뿐이다. 특히 서핑보드는 상어의 시각에서 물개로 보여 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상어는 엄연한 ‘맹수’다. 귀여운 ‘판다’가 맹수로 분류되는 것처럼 상어를 조심할 필요는 충분하다. 영화 속 묘사가 과장됐다곤 하더라도 함부로 다가가거나 접촉하는 것은 금물이다. 날카로운 이빨과 강력한 턱, 거친 사포형 피부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상어들이 인간 생활 반경에 자주 출몰하기 시작했다. 상어 개체수가 타 국가에 비해 적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올해만 해도 부산, 제주, 속초 등 국내 바다에서 상어 발견 소식이 급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의 원인을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 찬물 사는 악상어, ‘따뜻한’ 부산 앞바다에 등장
부산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4일 영도구 태종대 남동쪽 약 4.8㎞ 해상에서 조업하던 연근해 어선에 상어 한 마리가 잡혔다. 그물에 잡힌 상어는 약 2m 크기의 대형종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은 고의로 포획한 흔적이 없는 점을 확인하고 어민에게 이 상어를 인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민에게 잡힌 상어의 이름은 ‘악상어(Salmon shark)’다. 몸길이 2~2.6m, 무게는 180kg~200kg에 이르는 중대형종이다. 몸은 고구마처럼 보이는 방추형이며 등쪽은 잿빛, 옆구리와 배는 흰색이다. 주로 연어, 오징어, 청어, 참치 등 물고기를 먹이로 삼지만 때때로 물개, 해달 등 해양포유류를 사냥하기도 한다. 때문에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위험종으로 분류된다.
이때 주목할 점은 상어가 잡힌 장소다. 일반적으로 미국 알래스카, 러시아, 캘리포니아 북쪽, 일본 북 홋카이도 등 북태평양 고위도에 서식한다. 쉽게 말해 ‘찬물’에서 사는 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금까지는 동해안 포항 이북 지역에서 주로 발견됐다. 그런데 이번 악상어는 상대적으로 물이 따뜻한 부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것이다. 악상어가 포항 이남 지역에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상어 연구 권위자인 최윤 군산대 해양생물학과 교수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일반적으로 국내 바다에 나타나는 상어들은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데 악상어는 좀 예외적인 종”이라며 “일반적으로는 러시아 캄차카반도 해역이나 일본 북 홋카이도에서 서식하고 우리나라에선 주로 포항 이북 지역까지 내려왔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서는 주로 3월쯤 추운 계절에 발견됐다”며 “여름철 차가운 해류가 머무는 시점에 순간적으로 남쪽까지 내려오는 경우는 있으나 이번 부산에서 잡힌 악상어는 가장 남쪽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 빨라진 냉수대 출현에 갈 길 잃은 악상어
찬물에 사는 악상어가 따뜻한 남쪽으로 온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기후변화’와 연관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대기·수온변화가 해류에도 영향을 미쳤고 이것이 상어들의 이동 경로를 바꿨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름철 동해안의 차가운 바닷물 흐름이 변화하고 있다. 관련 연구는 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팀이 2019년 발표한 ‘동해 냉수대 발생역의 장기 변동 분석’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최근 여름철, 과거에 비해 ‘냉수대’ 발생 시기가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냉수대는 여름철 연안역(육지와 근접한 바다)에 주변해역보다 수온이 섭씨 5도 이상 차가운 바닷물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주 원인은 ‘해풍’이다. 강한 바람에 의해 바다 표면층의 따뜻한 물이 밀려나면 아래에 있던 차가운 바닷물 덩어리가 올라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7~8월 주로 발생한다. 이 기간에 발생하는 남풍 계열 ‘몬순(monsoon, 계절풍)’이 냉수대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연구팀은 냉수대 출현 경향을 살펴보고자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년간 5월에서 8월 사이 국내 바다 수온 자료를 분석했다. 자료는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운용 중인 실시간 수온 관측 시스템(RISA)으로 수집한 평년 위성 수온자료를 사용했다.
분석 결과, 7,8월에 냉수대 발생일이 집중돼 있었다. 강릉, 영덕, 기장 세 지역의 냉수대 발생 일수는 7월이 219일로 가장 많았다. 이어 8월 118일, 6월 42일, 5월 11일 순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강릉, 영덕, 기장 해역 모두 2016~2018년 들어 6월에 냉수대 출현이 평균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악상어가 발견된 태종대 지역과 가까운 기장에서는 2015년까지 6월에 냉수대가 발생한 일이 없었으나 2016년 3번, 2018년 4번 발생했다. 즉, 여름 초기부터 냉수대로 물이 차가워지면서 한류성 어종인 악상어가 포항 이남 지역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이처럼 냉수대 발생 시기가 앞당겨진 것은 기후변화가 주 원인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연구팀은 “동해 냉수대를 일으키는 바람의 방향이 기압 배치 변화와 몬순의 약화로 패턴이 변하고 있다”며 “남풍 계열 바람이 주로 불었던 7월과 8월보다 6월에 냉수대 빈도수가 증가되는 추세를 나타냈다”고 분석했다.
◇ 모질고 독한 놈, ‘더 무서운’ 기후변화에 동해로 몰리다
기후변화는 악상어만 한국 바다에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다. 최근 우리나라 동해안에 온대·열대성 상어들이 발견 개체수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상어종이 발견되는 건수가 크게 증가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집계한 동해안 발견 대형 상어류 신고 건수는 지난해 기준 총 29건이다. 2022년 기준 신고 건수가 1건이었음을 감안하면 대폭 증가했다.
이때 가장 우려되는 위험종은 ‘청상아리(Shortfin mako shark)’다. 신고된 상어들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도 청상아리였다. 전체 위험 상어종 14건 신고 중 청상아리는 7건으로 절반을 차지했다. 올해만 해도 4월 22일과 7월 14일 청상아리가 포획됐다. 각각 강원도 속초 장사항, 고성군 오호항 인근서 잡힌 개체들이다.
악상어과에 속하는 청상아리의 평균 크기는 2.5~3.2m이며 최대 4m까지 자라는 대형 상어다. 먹이는 주로 참다랑어, 청새치 등 대형 어류이며 물개, 돌고래 등을 사냥하기도 한다. 최대 시속 96km로 헤엄칠 수 있어 ‘바다의 치타’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온순한 치타와 달리 성격은 매우 난폭해 위험한 상어종이다. 소설 ‘노인과 바다’에 등장해 주인공의 물고기를 물어뜯는 상어도 바로 청상아리다. 조선시대 성리학자 정약전(丁若銓)은 어류학 저서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청상아리로 추정되는 상어를 ‘모돌사(毛突鯊)’라 표현했다. 이는 ‘모질고 독한 놈’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청상아리는 조상들에게도 악명 높은 상어였던 셈이다.
‘모질고 독한’ 청상아리가 최근 급증한 이유 역시 기후변화가 주요하다. 청상아리는 전 세계의 모든 열대와 온대의 바다에서 서식하는 상어다. 따뜻한 물을 따라 이동하며 먹이활동을 한다. 때문에 최근 이상기온으로 동해안 수온이 상승하면서 한국을 찾은 청상아리 숫자도 크게 늘어난 것이다.
최윤 교수는 “6월 이전에 동해 중부, 삼척, 강릉, 속초 등지에서 청상아리가 나타난 적은 없었는데 최근 4월 22일에 출몰했다”며 “청상아리들이 동해안에서 발견되는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은 수온 상승 영향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기후변화에 청상아리 서식지가 바뀌는 것은 한국 바다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호주대학교(UWA), 영국 남극조사국(BAS) 공동 연구팀에 따르면 현재 호주 동부 해안에 서식하는 청상아리는 향후 더 따뜻한 남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측했다.
연구팀은 “호주 남서부와 남동부의 해역은 전 세계 평균보다 각각 3배와 4배나 더 빠른 속도로 온난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분석 결과 청상아리의 서식지 변화 추이는 북동부 해안을 따라 200km, 북서부 해안을 따라 약 100km 남쪽으로 이동하는 해양 기후대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노바사우스이스턴대학교(NSU) 연구팀 역시 최근 연구 결과에서 “북동부 미국과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서 8마리의 청상아리를 관찰할 결과 대부분 22~27°C의 수온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을 보냈다”며 “이는 청상아리들이 따뜻한 물을 선호하고 차가운 물에선 제한된 시간을 보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 지자체·정부, 상어 대책 마련 분주… 해수욕장서 목격 시 해경 등 신고 필수
상어 출몰 빈도가 늘어나면서 주요 지자체들도 비상이 걸렸다. 속초시는 지난달 12일 3개 해수욕장에 상어 접근 방지 그물망을 설치했다. 최근 발견된 백상아리, 청상아리 등 상어들이 피서객들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속초시에 따르면 안전조치가 완료된 해수욕장은 ‘속초 해수욕장’과 ‘영랑동 등대해수욕장’과 ‘대포동 외옹치해수욕장’이다. 각각 600m, 300m, 200m의 상어차단용 안전그물망을 각각 설치했다. 이와 함께 해수욕장 입구에 ‘상어 피해 예방 안전 수칙 및 행동요령’ 입간판도 설치했다. 속초해양경찰서에선 각 함정 및 파출소에 상어출몰 위험구역 및 연안해역에 대한 예방 활동 강화도 지시했다. 또한 해수욕장 개장 기간 동안 경비정도 배치한다.
아울러 정부 차원의 상어 출몰 급증에 대한 원인 분석 연구 결과도 나올 예정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지난 4월부터 동해안 출현 대형 상어류 분포 현황과 생물·생태학적인 정보를 확보·분석 중이다. 현재 추정되는 원인은 수온 상승이나 상어류에 대한 생태 정보가 매우 부족,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국립수산과학원 측 설명이다.
그렇다면 만에 하나 해수욕장 등지에서 상어를 마주쳤을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전문가들은 가장 먼저 해수욕장 안전 요원, 해경 등에 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다음 서둘러 바다에서 빠져나와야한다.
최윤 교수는 “우리가 보통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는 물의 깊이는 1.2m~1.5m로 얕은데 이곳으로 상어가 접근하면 지느러미가 물 위로 드러나게 된다”며 “이를 발견하면 큰 소리로 사람들과 안전요원들에게 알려 대피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상어들은 영화 속에서처럼 직진해서 오지 않고 사냥감의 위치와 상태를 파악하고자 S자를 그리며 다가온다”며 “대피할 시간은 충분하므로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바다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상어의 코를 치는 등의 대처 방법이 알려져 있으나 이는 1m 이내의 거리에서 100% 상어가 나를 공격할 것이 확실할 때만 해야 한다”며 “상어의 공격 의사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코를 치는 것은 오히려 상어를 자극해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