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의언론=이병태 카이스트 교수]
트럼프는 어떻게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다시 대통령에 접근하고 있는지는 그를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수수께끼 같은 일이 되어 왔다.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과 미국의 품위와 전통적 가치를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미국이 더 이상 아니고 ‘마치 외계인의 세상이 된 것과 같다’며 믿을 수 없는 현실을 표현해 왔다.
‘트럼프 현상’을 이해하려는 분석 중 하나가 힐러리나 바이든은 워싱턴 DC의 엘리트로 중산층 이하의 국민들의 현실에서 괴리되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을 표하는 정서적 연결에 실패해 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집단이 소위 러스트 벨트(The Rust Belt)의 배운 것 없이 일자리가 없는 서민들의 상실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려움이 글로벌화 와중에 발생한 빈부 격차와 제조업 공동화, 그리고 불법 이민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 중산층과 서민의 고통에 대해 추상적 언어로, 정치인의 언어로, 워싱턴의 언어로 말하는 엘리트들에게 그들은 절망해 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거침없는 보통 사람들의 언어(식자들은 막말이라고 경악하지만)로 접근하고, 옳고 그름을 떠나서 무엇인가 실행을 하는 트럼프가 틈새를 공격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오염수’를 다 치워버리겠다는 것이 그의 구호였다.
바이든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생각 이상의 입법적 승리를 거둔 대통령이다.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이라는 내용과 걸맞지 않은 이름의 법률을 통해, 기후변화와 미국의 제조업의 막대한 지원 정책 등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바이든은 이러한 입법들이 러스트 벨트의 절망한 사람들의 삶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연결하여 설명하는 데 철저히 실패했고 그것이 바이든의 낮은 지지율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판데믹 이후 연준의 높은 금리 설정과 양적 축소는 인플레이션 경제를 가져왔다. 이 거시경제 금융 정책들은 미국 서민의 삶에서 양극화를 확대해 가고 있다. 집값, 채권 가격, 예금이나 주식의 수익은 모두 올라갔다. 즉 자산을 갖고 있는 유산 계층의 수입은 높아지고,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창업주와 경영자들의 자산은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다. 이들 기술 기업의 주식을 산 유산층도 소득이 늘고 있다.
하지만 중산층 이하의 많은 국민들은 인플레이션 경제에서 어려움이 분명해지고 있다. 대출 금리는 오르고, 높아진 물가는 임금 인상을 무력화해 왔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가져오는 역(逆)배분의 일반적 현상이지만 바이든은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말하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의 나이와 인지 능력에 대한 우려가 정치적 블랙홀이 되면서 모든 메시지를 집어 삼겨 버렸고, 바이든은 현장감 있는 연설 솜씨가 없는 정치인이라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클린턴이나 오바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해리스가 모든 시선을 받고 있다. 그의 선거운동의 연설을 보면서 트럼프가 정말 이기기 쉽지 않은 적수를 만났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우선 해리스 부통령은 무대를 즐기는 모습이 완연하다. 그리고 늘 미소 띤 얼굴로 연설을 하고, 매우 자유분방하고 힙한 모습을 연출하는 데 하나도 주저하거나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없다.
트럼프는 바이든과 약속한 9월의 TV토론 약속을 철회했다. 20년 나이 차이와 스타일의 차이가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해리스는 토론에 나서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그것도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할 이야기가 있으면 면전에서 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 동영상은 한동안 민주당 지지자들을 열광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나라 보수권에서는 많은 유죄 판결을 받고 재판에 회부되어 있는 이재명 대표가 0.7% 차이로 대권에 접근했던 정치 현실을 인정하기 힘들어한다. 미국의 진보층이 ‘트럼프 현상’을 수용하기 힘들어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트럼프 현상과 마찬가지로 대기업 정규직이나, 사업가나, 공공부문 종사자가 아닌 우리 국민들, 400만이 넘는 취업 포기의 젊은이들, 그로 인해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는 현실에 대해,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는 노인 빈곤에 대한 정책은 물론, 그들의 고통에 어떻게 공감하는지를 표현하는 보수 정치인이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힘당의 당대표 경선이 컨벤션 효과가 없었던 이유도 ‘여의도 언어’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 대통령 부인에 대한 수사와 특검, 채상병 특검 등은 모두 정치인들의 쇼이지 희망을 상실하고 있는 국민의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윤 대통령의 “대파 발언” 또한 국민과 정서적 단절을 상징하는 크나큰 실수였다. 그만큼 한국 보수권에는 소통 능력이 있는 정치인들이 없는 것이다.
상원 의원일 때 해리스는 미국 상원 의원 중에 가장 진보적인 (좌파적인)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최근 정치 집회 장면의 해리스 부통령의 자연스런 스타일과 소통 능력은 부정적 언어와 증오의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트럼프에게 어려운 상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유색인종 여성으로 미국 정치 역사에서 최초의 많은 타이틀을 만들어가며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올랐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관찰을 하면서 ‘한국의 보수권에는 소수의 맹목적 ‘빠’들을 넘어 광범위한 대중에게 준비된 정책과 공감능력을 과시하는 정치인을 언제 볼 수 있으려나‘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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