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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미국 로스엔젤레스 아카데미영화박물관 한국영화 상영 시리즈 <윤여정: Youn Yuh-jung> 특별 회고전 오프닝에 참석했다. 건축의 거장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아카데미영화박물관은 영화제작의 예술과 과학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 최대기관이다. 매끄러운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이 구형 건물과 대조적으로 박물관의 전시는 매우 오래된 할리우드 느낌이 나는 아르데코 공간을 연출하기도 한다. 마치 다른 마법의 세상에 온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개관 직후 이 박물관은 미국 문화예술과 영화계에서 중요한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톰 행크스, 레이디 가가, 스티븐 스필버그 등 스타들이 지지한 가운데 많은 기대 속에 2021년 문을 열었다. 원래 2017년 개관 예정이었던 박물관은 팬데믹의 영향으로 개관이 연기됐지만 톱스타들과 문화예술 주요인사들이 참석한 오프닝 갈라 행사로 할리우드가 열광했고 박물관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됐다.
이 특별전은 ‘미나리’를 비롯해 세계속 여성의 위치를 사유해볼 수 있는 그녀의 출연작들로 구성됐다.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이 한국어를 주요언어로 쓴 디아스포라 영화다. 영국의 유력지 더 가디언은 “거침없이 열정적이며 솔직한 윤여정은 새로운 유형의 독립적 한국 여성상을 구현해냈다” 라고 평했다.
미국 할리우드의 심장부에서 왜 윤여정 그녀를 주목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필자는 한국인 최초 아카데미 어워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을 만나 그녀에게 ‘디아스포라’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영화 속 그녀의 역할은 한국에서 미나리 씨앗을 미국 오지로 가져오는 할머니다. 자신의 몸을 던져 더러운 물을 정화해내는 미나리처럼 포용적 모성의 상징이며 동시에 삶의 무게를 장난기 가득한 웃음의 미학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가졌다. 본인 스스로 북한 개성출신 실향민이며 오랫동안 한국사회의 보편적 미개념에 부합되지않는 비호감 배우, 순종적이지 않은 이미지등에서 개성파 배우로 인식돼 왔다. 그녀가 맡은 배역의 대부분은 성적이고 전복적 역할을 이뤄내는 약자의 입장이었다. ‘타자’로서의 여성성을 대표하는 윤여정의 몸은 현대적 개념의 디아스포라를 상징하는 듯하다.
세계적 대배우로 인정받기까지 그녀의 삶은 고난으로 가득했다.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등 이른 나이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좌절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결혼후 미국 플로리다로 건너가 13년동안 생활고에 시달리며 어려운 삶을 견뎌냈다. 이혼 후 고국으로 돌아와 싱글맘으로서의 양육과 생계를 해나가기 위해 단역이나 남들이 기피하는 역할들을 마다하지않았고 불굴의 의지로 버텨냈다. 아무곳에서나 자라나며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풀, 특유의 향과 줄기의 강한 탄성으로 주요리를 묶고 장식하는 조연의 역할, 그녀의 모든 역사는 마치 이 미나리처럼 보인다.
오늘날의 세계는 다양성, 초국적성, 하이브리드화된 네트워크의 세상이다. 아카데미 회고전을 개최하는 이유는 팬데믹 이후 새롭게 부각된 인권과 디아스포라라는 현대적 이슈에 있다고 본다. 디아스포라란 근본적으로 소수민족의 뿌리 없는 삶과 뿌리 내리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 개념이다. 이민자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고국을 떠나면, 미나리처럼 한국에서 가져온 씨앗이 미국땅에 뿌리를 내리고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하이브리드 미나리가 된다.
글로벌 관점에서 디아스포라가 주목받는 이유는 오늘날 세계가 기후변화, 글로벌 경제 위기로 인한 사회경제적 양극화, 인종 및 계급 갈등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단절된 채 살아가는 부조리의 세계라는 점 때문이다. 자신의 터전을 떠나야했던 이민자들의 경험은 현대사회의 모든 세계 시민들과 다르지 않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디아스포라적 삶을 살고 있다고 본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종만이 하나의 종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언어라고 설명한다. 영화라는 장르는 시각적 언어와 함께 문학적 언어를 사용하여 가상 현실이라는 가상의 개념에 대한 그럴듯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어 영화 미나리는 미나리 씨앗을 잠재력으로서 상상을 한다. 모성을 상징하는 할머니를 통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디아스포라의 잠재력으로서의 미디어다.
‘한’의 정서는 전 세계 소수민족의 보편적 정서로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한국의 역사적 개념인 ‘한’은 우리의 DNA에 담겨 국경을 넘어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형성하고 있다. ‘가상현실’을 ‘한’으로 구현하고, 고대 그리스 희극 작품처럼 기쁨과 흥겨움으로 승화시키는 ‘한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한류의 성공은 미나리로 상징되는 생명력 DNA와 개인주의가 아닌 단결성, 연결성을 통해 공감을 나누는 데에 있다.
한국 영화 회고전이란 현상이 일어나는 건 시작에 불과하다. 한국 디아스포라 영화 ‘미나리’, 식민지 경험의 치유 ‘파친코’, 계급과 구조의 전복 ‘기생충’, 자본주의 경쟁 ‘오징어 게임’ 등이 한류의 성공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한류의 힘은 잠재적 가능태라고 본다. 역사적, 사회적 관점에서 시대 상황을 수렴한, 재현과 재해석을 통해 전통을 넘어서는 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다양성, 네트워크, 하이브리드로 정의된다. 지역성과 지정학적으로 깊이 얽혀 있으며 중앙집권보다는 분권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유색인종의 힘이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우리의 한류 DNA는 다양한 맥락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더 큰 힘을 발휘해 나가고 있다.
한국 영화와 함께 K팝은 방탄소년단의 예처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팬들과 겸허하게 일상을 교감하며 활기찬 희망의 길을 보여줬다. 자유에 대한 의지, 변화를 향한 전 세계 젊은이들의 열망을 담은 K-컬처는 전 세계 관객들을 자발적으로 참여시키고 연결시키는 희망과 설렘을 만들어냈다.
이제 우리는 한류에 대한 깊은 철학이 필요하다. 한류는 백남준 작가처럼 여러 세계사이의 중간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 “높은 문화예술”과 “낮은 문화예술”의 가교로서 한류의 역할은 사회적 문화외교적 측면에서도 힘을 가지며, 진정성과 생명력의 DNA로 글로벌 시각의 문화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이제는 기술, 예술, 문화의 토대를 더욱 강화해야 할 때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원, 한류를 통한 글로벌 교류의 문을 활짝 열어 세계 무대에서 우리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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