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손’ 코드를 둘러싼 논란이 사회적으로 불거진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 화두는 온라인 커뮤니티발(發) ‘젠더 갈등’에서 촉발됐지만, 단순히 온라인에 국한되진 않는다. 노동조합 등 전통적인 대중조직과 사회운동 질서에도 틈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착취에 맞선 집단적 저항의 경로를 상실한 한국 사회가 내부의 모순을 감정적으로 분출하는 내전의 코드가 됐기 때문에, 사회운동은 보다 주도적으로 이런 코드들을 숙고하고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
최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발표한 지부 소식지에 집게손 코드를 무비판적으로 삽입하고, 심지어 여기에 각종 혐오의 언어들이 뒤섞인 글이 실려 논란이 불거졌다. 이 소식지는 곧바로 극우성향 인터넷 언론에 의해 보도됐고, 소셜미디어상에서는 뜨거운 이슈가 됐다. 문제의식을 갖춘 금속노조 활동가들이 조직 내에서 노력해 곧바로 금속노조 여성위원회의 사과문이 게시됐고, 논란 발생 4일만에 현대중공업지부장 사과문이 게시됐다. 늦게나마 다행이지만, 우리는 이것이 대중조직과 운동 내부로 틈입했다는 사실을 별 일 아닌 일로 치부해선 안 된다. 논란이 됐던 글의 수위나 과정을 돌아볼 때, 단순히 해프닝으로 간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는 누군가의 음모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현상의 결과이다. 굴절된 불만이 대중조직에 투영된 후 그것이 정당한 운동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면, 모순은 더 나쁜 방식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온라인 이슈에 대한 리터러시
이 논란이 가장 처음으로 크게 불거진 것은 3년 전인 2021년 5월, GS25의 캠페인 포스터 속 집게손가락 이미지를 둘러싸고,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 내에서 이것이 “‘남성혐오’ 이미지”라고 주장하면서부터다. 이 황당한 논란은 몇 차례에 걸친 포스터 변경 조치로 이어졌고, 급기야 GS리테일에서 관련 업무를 맡았던 노동자들의 해고, 강등, 인사조치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기 KT&G는 ‘냄새저감 연초 7종’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알리는 홍보물 이미지에 집게손가락 이미지가 있다며 논란이 불거졌고, 오리온 초코송이의 무신사 콜라보 한정판 포장물 속 이미지와 관련해서도 유사한 논란이 발생했다.
그밖에도 일일히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례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사례에 대해 의도성이 있었다고 간주하기란 매우 어렵다.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에서 신체의 모양은 가급적 단순화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럴 경우 표현할 수 있는 손의 모양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실은 이것이 의도적이냐 그렇지 않냐에 대해 판단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이 포즈가 ‘코드’화된 것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의 쟁투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이와 유사한 논란이 지난해 말 다시 불거졌고, 급기야 이것이 정치나 사회운동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2023년 11월 25일, 게임 일러스트를 제작하는 하청 기업 스튜디오 뿌리 소속 애니메이터의 작업물이 “남성혐오”를 가리킨다는 논란이 일부 남성 게임 유저들에 의해 제기됐다. 그러자 넥슨은 해당 영상을 비공개 처리하고 사과문을 게시하는 등 즉각적인 수용의 태도로 대응했다. 이 사건은 해당 작업을 수행한 하청사의 계약해지나 노동자의 부당해고와 연동된 것이었기 때문에 논란은 크게 부각됐다.
그런데 4일 후인 11월 29일, 당시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류호정이 S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다같이 만드는 창작물 안에 그렇게 조롱의 의미가 달린 그림을 넣으면 안 된다”며 “특히나 남성 소비자가 많은 서비스에 남성을 조롱하는 의미를 담은 표현을 하면 당연히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
이튿날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해당 일러스트 콘티를 그린 직원은 그 여성 노동자 혹은 스튜디오 뿌리 소속이 아닌 다른 업체의 40대 남성이었다. 더구나 이 작업의 총괄 감독 역시 스튜디오 뿌리 소속의, 에미상 수상 전력이 있는 50대 남성 애니메이터였다.
게임 일러스트를 하청 작업하는 소형 스튜디오들은 “원청사 의도에 반하는 그림 자체를 넣을 수 없는 구조” 속에 있다. 더구나 해당 여성 노동자는 스튜디오 뿌리 직원이 아니라 프리랜서 신분이었다. 12월 4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김상진 애니메이터는 “작업 과정을 이해하면 이번 논란이 얼마나 황당한지 다들 이해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2023년 9월 넥슨 측이 스튜디오 뿌리 측에 작업을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통상 원청사는 캐릭터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지문을 대본 형식으로 기재해 하청업체에 보낸다. 이번 작업에서도 넥슨은 각 쇼트마다 예시 일러스트를 첨부했다. 마감 기한이 촉박했던 스튜디오 뿌리는 40대 남성 노동자에게 콘티 작업을 주문했고, 그는 넥슨이 제작한 참고 이미지를 바탕으로 콘티 초안을 만들었다. 이를 김상진 총괄 감독이 검수하고, 캐릭터 움직임 전체를 하나하나 구상한 것이다.
바로 이 콘티에서 40대 남성 노동자와 김상진 감독은 게임 캐릭터가 손으로 반쪽짜리 하트를 만드는 그림을 그리고, ‘그 장면’도 구현한 것이다. 하청 애니메이터 노동자들이 하는 역할은 이렇게 그려진 콘티를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 유저들의 주장처럼 해당 여성 노동자가 비밀스럽게 ‘메갈리아’ 로고와 ‘작은 남성 성기를 상징하는 그림’을 넣으려면 콘티를 임의대로 수정한 뒤 총괄 감독의 검수를 네 차례 피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사실들을 놓고 볼 때 넥슨의 작업 의뢰와 스튜디오뿌리의 하청 수주 과정에서 제작된 해당 이미지는 남초 커뮤니티의 일부 유저들이 주장하듯, ‘작은 성기’를 풍자하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다수 언론들은 이 사태에 대한 상세한 조사가 이뤄지기 전부터 ‘남성비하 사건’으로 규정한 듯한 기사를 쏟아냈고, 논란은 부정적 방식으로 재생산됐다.
넥슨 측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해당 계약을 해지했으며, 이 여성 노동자는 부당하게 일자리를 잃었다. 국회의원이었던 류호정은 이런 전말이 밝혀지기도 전에 방송에서 무책임하게 발언했고, 온라인 상에서 이뤄지는 사이버 백래쉬를 암묵적으로 동조했다. 이것이 비단 류호정의 문제였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유튜브 시대의 사회적 논란은 ‘릴’의 형태로 빠르게 소비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 지나간 뉴스는 돌아보지 않는다. 어쩌면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에서 소식지에 담길 메시지를 기획하고 집필하는 현장 활동가들 역시 이런 식의 뉴스 소비 습관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다. 젠더 갈등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제기되는 온갖 이슈들, 특히 백래시라는 과녁을 향해 양산되는 온라인상의 주장들을 주체적으로 읽고 검증할 ‘리터러시(문해력)’가 겸비*되지 않았다.
백래시는 무엇인가
백래시(backlash)는 반동(反動)이라는 뜻을 갖는다. 동명의 저서를 쓴 수전 팔루디(Susan Faludi)는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은 여성들이 ‘완전한 평등’이라는 결승선에 도착하기 전에 멈춰세우려는 선제공격”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한데 이것만으로는 성평등이 남녀 간의 대결에 의해 이뤄야 할 종착지라고 오해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보다 정확하게 ‘여성 노동자들이 완전한 평등이라는 결승선에 다다르려는 것을 멈춰세우려는 선제공격’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백래시는 평범한 노동자들의 일터와 일상에 훨씬 더 가혹하게 몰려오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지배계급은 체제에 대한 불만과 저항을 파괴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가부장제나 성차별을 활용해왔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해소하고 성평등 사회를 만드는 것은 평범한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과제다. 벨 훅스(Bell Hooks)가 말했듯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이론이자 실천이다. 남성들은 성역할 고정관념이나 남성성에 대한 정신적인 압박에서 해방됨으로써 ‘강해져야 한다’는 식의 스트레스로부터 비로소 벗어날 수 있고,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사회적 스트레스를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 이는 남성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에 훨씬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임금 격차 축소가 이뤄지고,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이 보장될수록 모두의 노동권도 증진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 간의 격차를 늘리고 경쟁을 강화함으로써 더 저렴한 인건비로 더 많은 이윤을 거둬들이려고 노력하는데, 임금 격차 축소는 이런 기제를 조금이라도 더 무너뜨릴 수 있다. 나아가 남성들이 집에서 더 많은 가사노동을 분담해야 돌봄노동의 시장화나 여성에게 편중된 가사노동을 나눌 수 있고, 이는 우리의 일상적인 관계를 더 낫게 만든다. 즉 백래시에 맞서 더 많은 평등을 일구는 것은 모두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미러링 전술을 넘어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2015년 8월 ~ 2017년 5월) 이래 전개되는 ‘미러링 전술’은 현실을 반대로 뒤집어 보여줌으로써 현실의 부조리함을 꼬집는 풍자 방식이다. 인터넷 상에서 페미니즘이 새롭게 부상했을 때, 자기조직화된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미러링’이라는 전술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여성들이 처해 있는 심각한 수준의 폭력을 상기한다. 이 폭력의 색채는 너무나 광범위하고 짙어 쉽게 생각하기 어렵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이 폭력은 기실 별 문제가 아닌 것처럼 당연시되어 왔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여성 10명 가운데 4명은 평생 한번 이상 성폭력 피해를 경험하고 있으며, 성폭력 피해 상담을 받은 사람의 90퍼센트는 여성이다. 디지털 성폭력 범죄율은 점차 증가하고 있고, 강간·강제추행은 전체 성폭력 범죄의 절반을 차지한다. 2013년 기준 흉악 강력범죄 피해자 중 84.7%(검찰청 범죄분석 자료), 85.8%(경찰범죄통계)는 여성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2014년 흉악 강력범죄 피해자 3만4126명 가운데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87.5%(2만9863명)를 차지한다. 이러한 현실은 성별 격차나 조직민주주의, 가부장제적 문화 등과 무관하지 않다.
메갈리아가 등장했을 때 진보진영 일부에서는 메갈리아 유저들의 ‘미러링 전술’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게 있었다. 이들의 미러링 전술 비판의 핵심은 이것이 궁극적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을 해결하기는커녕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폭력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이 얼마나 와닿을까? 상기한 압도적 폭력의 현실을 누락하고, 이 폭력에 대한 고역스러운 대처법이었던 ‘미러링’만 지적하는 것은 전제가 되는 진실을 의도적으로 망각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다. 그러니 미러링 전술의 한계를 진정으로 넘어서려면, 이 압도적이고 만연한 폭력을 고발하고 이에 맞선 행동에 함께 하는 가운데 다른 방식의 실천을 보여주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미러링 비판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온라인 페미니즘에서 미러링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의 대상을 남성으로 바꿔놓음으로써 현실을 폭로한다. 이는 폭력적 현실을 강력하게 폭로할 수 있으며, 혐오 발언에 맞서 대항할 무기를 제공한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의 미러링 전술은 이따금 성소수자나 이주민 등을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는 발화를 할 때, 그리고 엄밀하지 못한 근거를 활용할 때 역공당하기도 한다. 모든 사태를 도식화할 위험이 있고, 현상에만 주목해 사회구조적인 비판을 부차화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그럼에도 대중조직이나 사회운동단체가 미러링 전술의 한계를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온라인 페미니즘을 싸잡아 묘사하거나 ‘수꼴페미’ 등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 너머의 사회구조적인 모순과 여성에 대해 만연한 폭력을 가리는 효과를 낳는다. 따라서 성폭력에 맞선 사회운동의 실천은 미러링의 불가피성을 이해하고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과제 역시 안고 있다. 이를테면 노동조합은 미러링이 전개된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고,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미러링 전술을 넘어선 어떤 일상적·조직적 실천이 필요할지에 대해 조합원들과 함께 진지하게 토론하고 결의하는 활동을 일상화해야 한다.
계급투쟁과 적대
오늘날 한국사회 현실의 다양한 사회적 대립은 더 이상 ‘두 계급 간의 적대’로 요약되지 않는다. 억압받는 사람들은 지배계급에 맞서 싸울 경로와 방법을 상실했기 때문에, 다른 경로와 다른 적대를 향해 돌진한다. 가령 남성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나 노동권을 통제하고 착취하는 진짜 주체인 자본가가 아닌 여성 노동자를 향해 분노의 화살을 돌리고, 때때로 그 역도 드러난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이에 대한 즉자적 분노를 조선족을 비롯한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혐오로 드러낸다. 문제는 그러는 사이 더욱 심한 착취와 억압이 구조화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문화전쟁이 복잡하게 전개된다고 하더라도, 경제적 가치 분배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러한 갈등은 자본주의 초기 단계의 공장을 훨씬 넘어서는 생산 활동에 대한 직·간접적인 착취를 통해 일반화되고 있을 뿐이다. 계급투쟁은 더 복잡해지고 확장되었으며, 젠더·인종·문화·종교 등과 관련된 다양한 갈등들이 계급투쟁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주로 온라인 세계에서 촉발되는 문화 전쟁의 이면에는 구조화된 착취와 모순이 숨겨져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온라인 바깥의 세계와 이질적으로 구성된 자신의 역사와 맥락이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여러 논쟁이나 사건, 문화적 현상 등에 대해 이해하고자 할 때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와 이데올로기는 매우 중요한 ‘장소’인데,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의 단절을 넘어 담론적 실천을 펼치고자 한다면, 맥락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10여 년 사이 노동조합 조직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지만, 반대로 내적 조직력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조합원 교육은 과거보다 훨씬 취약해졌고, 조합 내의 간극도 매우 넓어졌다. 관성화된 노동조합 집회에서 연단의 발언을 듣는 조합원보다 평소 자신이 즐겨듣는 팟캐스트를 청취하는 조합원들이 더 많다는 불행한 사실만 떠올려 봐도 이를 잘 감지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에게 새롭게 대두된 난제가 있다면, 상기한 바와 같은 온라인 내의 논란과 이슈들을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공동체들 스스로 읽고 해석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조직에 있어서 ‘소통’과 ‘교육’, 어떤 사안에 대한 인식의 간극을 좁히는 문제는 그 조직이 유기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집게손 포즈’ 등 온라인에서의 사회적 코드와 밈(meme)이 사람들의 사고회로를 지배하는 사회적 언어가 됐다면,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한 대중조직이라 할지라도 그 코드들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진지하게 토론하고 공유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역사·정치·문화·젠더 논리들을 자본 증식과 자본주의 발전의 논리에서 가장 유력한 경향들과 손잡게 하는데 성공해왔다. 과거 사회운동이 자신의 편에 있다고 여겼던 모든 요소들에 시장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이데올로기가 뒤섞여 있음을 떠올려 보자. 사회운동은 (사회운동에 틈입한) 신자유주의의 경제적·정치적·문화적 전략을 심층적인 분산과 다변화의 ‘논리’에 비춰 재사유해야 한다. 이를 단순하게 치부하거나, 멀리 제껴두는 것은 현실의 모순에 대한 적확하고 주체적인 대응을 지연시킬 뿐이다.
참고자료
-스튜어트 홀 <대처리즘의 문화정치> 임영호 역, 한나래 2007.
-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이경아 역, 문학동네 2017. 3. 27.
-수전 팔루디 <백래시 - 누가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가?> 황성원 역, 2017. 12. 15.
-웬디 브라운 ‘좌파 멜랑콜리에 저항하기’ 강길모 역 <문화/과학> 제101호, 2020. 3.
-노도현 ‘청년 남성 절반은 “남자가 차별받는다”고 생각한다’ <경향신문> 여성서사 아카이브, 2021. 3. 18.
-최민영, ‘”여성운동의 성과가 있는 곳엔 반드시 백래시가 있다”‘, <경향신문> 여성서사 아카이브, 2022. 7. 21.
-장유진 ‘집게손가락은 왜 남혐의 상징이 됐나 [이슈크래커]’ <이투데이> 2023. 11. 28.
-류효림 ‘집게손가락 논란…지금 MZ세대는 갑론을박’ <노컷뉴스> 2023. 12. 5.
-박상혁 ‘넥슨, 집게손가락은 남성 비하 억지 주장에 또 무릎 꿇었다’ <프레시안> 2024. 6. 21.
-김예랑 ‘”집게손가락에 벌벌 떤다”…잘 나가던 기업들 ‘날벼락’ [이슈+’ <한경닷컴> 2024. 7. 2.
-박상혁 ‘”집게손가락은 남성혐오? 문제는 여성혐오에 있다”‘ <프레시안> 2024. 7. 3.
-오세진 ‘집게손 논란, 누구의 잘못인가’ <한겨레> 2024.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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