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급격한 침체기를 겪은 가운데 이에 한국 금융사들이 막대한 자금을 쏟아 투자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침체로 금융사들은 원금의 절반도 건지지 못해 막대한 손실까지 봤다.
30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이지스자산운용은 뉴욕 타임스스퀘어 한복판에 있는 브로드웨이 1551번지 건물과 관련해 후순위 대출을 해줬다가 최근 관련 대출자산을 헐값에 처분했다. 이지스운용 측은 블룸버그에 해당 건물의 투자와 관련해 회수한 자금이 원금의 30%에 못 미친다고 밝혔다.
◇’핫한 대체 투자처’ 해외 부동산, 2010년대 중반 급증
메리츠대체투자운용은 로스앤젤레스 중심부의 고층 건물 가스컴퍼니타워와 관련해 변제 순서가 선순위 대출보다 낮은 메자닌 대출자로 참여했다가 건물주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진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현대투자운용도 뉴욕 맨해튼의 고층 사무실 건물인 ‘245 파크애비뉴’ 빌딩의 인수 과정에 메자닌 대출자로 참여했다가 올해 초 해당 대출자산을 원금의 절반 가격에 처분했다. 맨해튼 미드타운 핵심 오피스지구에 위치한 이 건물은 미국의 대형 부동산 투자회사 SL 그린 리얼티와 보네이도 리얼티 트러스트가 매입을 주도했는데, 현대투자운용이 낮은 변제 순위로 대출에 참여했다가 ‘원금 반토막’ 손실을 본 것이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는 ‘대체 투자’라는 명목으로 증권사,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비은행금융회사를 중심으로 2016년 이후 빠르게 증가했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 호황으로 자산 가격이 이미 크게 오른 시점이었다. 한국의 금융사들이 미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호황장에 올라 타겠다며 한꺼번에 몰려들었고, 유사한 중·후순위 대출 기회를 놓고 서로 경쟁을 벌여왔다는 설명이다.
경쟁 격화로 일부 사업에서는 한국 금융회사가 시장에서 통용되는 금리 대비 2%포인트 낮은 금리로 대출해준 사례도 있었다고 블룸버그는 소개했다. 황금알을 기대하고 앞다퉈 뛰어든 미국 부동산 대체 투자는 이제 칼날이 돼서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시장 회복 아직인데 만기는 다가오고…손실 커질 가능성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금융권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잔액은 작년 말 기준 57조6000억원으로, 이 가운데 북미가 34조80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금융사가 투자한 단일 사업장(부동산) 35조1000억원 중 2조4100억원(6.85%) 규모에서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기한이익상실은 이자·원금 미지급 등 사유로 인해 채권자가 대출을 만기 전에 회수할 수 있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문제는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회복될 기미가 여전히 보이지 않은 채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이 늘어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 이후에도 재택근무가 일반화되면서 사무실 수요가 이전보다 급감한 데다가 고금리 장기화로 이자 부담이 많이 늘어난 게 침체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 침체가 지속되면서 지난 2분기 기준 미국의 부동산 자산 압류 규모는 205억5000만 달러(약 28조4000억원)로 9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상승한 상태다. 블룸버그는 한국 투자자들이 보유한 대출 자산들의 상황이 향후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미 금융권 관계자들을 인용해 전했다.
시장정보업체 트렙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7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상업용 부동산 관련 대출 규모는 총 2조2000억 달러(약 3000조원)에 달한다. 투자회사 아레나 인베스터의 댄 즈원 최고경영자(CEO)는 “은행들은 문제가 적은 자산들을 먼저 매각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자산을 매각하기 전까지는 손실이 어느 정도일지 구체화하기 어렵다”며 “즉, 우리는 현재 부동산과 관련해 업계가 느끼는 고통의 초입 단계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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