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이날까지 재송부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하면서 임명 강행 의지를 밝혔다. 윤 대통령이 31일 이 후보와 이상인 부위원장 후임으로 거론되는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임명하면, 방통위는 ‘2인 의결 체제’가 된다. 이진숙 방통위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곧 임기가 만료되는 MBC(8월12일)와 KBS(8월31일)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다. 특히 여권 추천 이사가 다수를 점하지 못한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교체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이진숙 체제 방통위가 공영방송 이사진을 교체하기 위한 밑 작업은 김홍일 위원장 체제의 방통위가 모두 끝내놨다. 앞서 지난달 28일 기습 회의를 열고 김홍일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은 ‘방문진, KBS, EBS 이사 선임 계획안’을 상정해 의결했다. 통상 방통위 회의는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데, 이날 회의는 목요일인 지난달 27일 오후 9시경 기자들에게 문자로 통보된 뒤 다음 날 개최됐다. 이후 김홍일 위원장은 야권의 탄핵 예고에 자진 사퇴했고, 이상인 부위원장 1인 체제에서 공영방송 이사 공모를 진행한 뒤 지난 11일 방통위는 방문진 이사에 32명이, KBS 이사에 53명이 지원했다고 밝혔다.
방문진과 KBS 이사회는 관행적으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여야가 각각 6:3, 7:4 구도로 추천권을 가져갔는데, 이번엔 여권이 관행보다 더 많은 이사를 추천할 가능성도 나온다. 방송법이나 방문진법에는 이사회 여야 구성 비율에 관한 내용은 명시돼 있지 않다. 관행적으로 여야가 이 비율을 지켜왔기 때문에 어기는 것도 불법은 아니다.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여야 6대3으로 한다는 건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관행으로 그렇게 해왔다. 그런 관행은 방통위나 방문진이나 모두 여론의 다양성을 구성원을 통해 보장하게 하도록 한 방송법, 방통위법의 입법 취지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런 입법 취지를 저해하는 방식으로 인선이 이뤄진다고 하면 굉장히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선아 야권 추천 이사 역시 “공영방송 이사선임절차가 위법하여 무효인 이상 야권을 0명으로 하든, 3명으로 하든 중요하지 않다. 이미 위법한 2인 체제에서의 중요 방송통신정책의 결정 자체가 모두 하자 있는 행정행위”라고 강조했다.
윤능호 방문진 야권 추천 이사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방통위는 합의제 기구인데 대통령실에서 임명한 사람들 2명이 이사들을 임명하는 건 그냥 맘에 안 드는 MBC를 손보겠다는 거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며 “나중에 원인 제공을 한 대통령실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 이건 절대 합법적이지 않고,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선아 이사는 “이사 공모 절차는 이상인 부위원장 혼자 했다. 절차상 하자를 짚을 수 있는 것이 너무 많다”며 “이진숙 후보 임명 후 8월 12일 사이에 이사를 선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이라도 멈추기를 바란다. 만약 강행한다면 그 과정의 절차적·내용적 위법성을 구체적으로 따져 법적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치권과 방송업계 관계자 등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방문진에 지원한 32명 이사 중 △김성근 전 방문진 이사 △백종문 전 MBC 부사장 △차기환 전 방문진 이사 △허익범 법무법인 KCL 대표변호사 △손정미 TV조선 시청자위원회 위원(전 조선일보 차장) △윤길용 전 울산MBC 사장 △이우용 전 MBC라디오본부장 △엄기영 전 MBC 사장 등이 거론된다.
차기환 이사는 세월호 참사 및 5·18 유가족 폄훼 논란이 불거진 인사다. 백종문 전 부사장은 2012년 MBC 파업 당시 최승호 PD, 박성제 기자를 이유 없이 해고했다는 발언이 녹취록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윤길용 전 사장은 시사교양국장 시절 PD수첩을 탄압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이우용 전 본부장은 MBC 라디오 진행자이던 김미화씨 하차를 주도해 논란이 됐다. 허익범 변호사는 드루킹 수사를 지휘한 특별검사 출신이다.
방문진 이사회가 교체되면 MBC 새 사장 선임을 통한 경영진 교체에 그치지 않고 MBC 민영화를 위한 밑그림을 그리게 될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윤능호 이사는 “일련의 MBC를 둘러싼 이 상황들이 오래전부터 MBC에 재갈을 물리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손을 보겠다, 민영화의 전 단계 정도까지는 가겠다는 확실한 로드맵을 갖고 있지 않나 강한 의심이 든다”고 우려했다.
윤능호 이사는 “지금 MBC가 2분기까지 흑자다. KBS와 SBS는 적자인 상황에서 그나마 (지상파 중) 흑자를 내고 있고, 경영을 잘 유지해 왔다”면서도 “민영화 관련해 MBC 매각 운을 띄우는 것 자체만으로도 방향이 그쪽으로 쏠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자신들에게 불편하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하는 행위는 반드시 본인들이 돌려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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