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0일, 프랑스 파리 고등법원은 우버의 승차호출 앱을 통해 일감을 얻는 기사들과 우버 사이에 고용관계가 인정된다는 판결을 내리게 된다. 우버가 기사들에 대한 고용 책임과 사용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역사적인 결정이었다.
우버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앱과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투명하게 설명해주지도 않고, 기사들은 적정수입을 벌어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채로 시장점유율을 엄청나게 높이며 독점기업으로 성장해왔다. 자유·평등·박애, 그리고 혁명의 전통이 배어 있는 프랑스 시민들과 기사들의 불만은 고조되고 있었다.
급할 때만 선택적으로 공개되는 데이터
판결이 나온지 보름 남짓 지난 1월 27일, 우버는 프랑스 승차호출업체 사상 최초로 기사들의 수입에 대한 일부 데이터를 공개하고 나섰다. 투명성을 제고함으로써 돌아선 여론을 돌려세우고 이를 통해 대법원에서는 고등법원 판결이 뒤집어지기를 기대한 것이다.
당시 우버 프랑스에 따르면, 중위값의 노동시간에 해당하는 우버 기사들의 시간당 소득은 24.81유로, 여기에서 플랫폼 수수료 25%를 떼고 다시 서비스 비용, 부가세, 사회보장분담금 등을 제하고 나면 시간당 9.15유로(한화 약 1.2만원)가 된다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 시간당 최저임금은 7.72유로였다. (수치 출처 : 온명근, <프랑스 차량공유 시장의 전개 및 쟁점>, ‘국제노동브리프’, 2019년 7월호, 한국노동연구원)
우버가 이런 데이터를 공개한 것은 아마도 “승차호출 앱 기사들은 법정 최저임금 이상의 소득을 얻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 함이었을 것이다. 즉,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권리를 누리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한국에서도 똑같이 벌어지는 패턴
지난 6월 4일, 한국 배달시장의 최강자인 배달의민족(우아한청년들)이 보도자료 하나를 배포했다. 배민라이더의 소득이 지난해보다 월 40만원 가량 증가했다는 것이 핵심인데, 내용 중에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배민커넥트에서 주 40시간 이상 운행하는 라이더들의 월 평균소득(올해 1~4월)이 393만 원으로 향상했다 … 이는 지난해 동기간 353만 원 대비 약 40만 원(11.3%) 증가한 것으로, 운행 시간은 배달 수행과 무관한 유휴, 대기 시간까지 포함한 기준이다.”
월 수익이 늘었다는 반가운 얘기에 대한 분석은 좀 미뤄두자.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배민 측이 라이더들의 노동시간을 아주 자세히 측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짧은 문장이지만 담고 있는 정보는 정말 알찬데 이를 두 가지로 요약해보자.
첫째, 이번에 공개한 데이터가 ‘주 40시간 이상’ 운행한 라이더들이라는 점에서 주당 노동시간 총량을 매우 정확하게 계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주 20시간 미만, 주 30시간 미만, 주 50시간 이상 등 노동시간 구간을 정해서 통계를 낼 수도 있고, 전체 노동시간 평균치도 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둘째, 놀랍게도 여기서 얘기하는 ‘노동시간’이란 순수하게 배달에만 투입한 운행시간만이 아니라 유휴 및 대기시간까지 포함한 것이라고 밝혔다. 즉, 운행시간·유휴시간·대기시간 등 노동시간을 매우 세분화하여 산출·저장 및 계산에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있다.
노동시간 측정 어렵다는 말 모두 거짓
그뿐이 아니다. 배민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 주 40시간 이상 운행하는 라이더와 별도로 월 수익 기준 상위 10% 라이더들의 평균 수익도 계산해서 같은 보도자료에 적시하였다.
“같은 기간 월 수익을 기준으로 상위 10%의 배민 라이더들은 월 평균 404만 원의 수입을 얻어 지난해 동기간 377만 원 대비 27만 원 더 높은 수입을 올렸다. 이들의 주간 운행시간은 47.79시간에서 46.42시간으로 거꾸로 1시간 이상 줄었다. 유휴시간을 포함한 배달수행시간이 단축되며 라이더의 소득 효율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번에는 노동시간이 아니라 월 수익을 기준으로 라이더들의 수입 관련 데이터도 매우 세분화하여 측정·저장 및 계산에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라이더들의 배달 노동이 만들어낸 수많은 데이터를 거의 모든 차원에서 수집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배달 라이더들에게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관련 법제를 작동시키자고 요구하면 돌아오는 가장 흔한 핑계는 ‘라이더 노동시간 측정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버 프랑스 사례와 한국 배민 사례를 보면, 노동시간 계산은 기본이고 오히려 전통적인 노동자보다 더 세분화되어 측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배민은 뭐가 다급했던 걸까
우버 프랑스 사례에서 본 것처럼 플랫폼기업이 이런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은 뭔가 다급한 목적이 있을 때 뿐이다. 프랑스의 경우 파리고등법원이 ‘고용관계’를 인정한 판결, 즉 승차호출 기사들이 우버가 고용한 노동자라는 판결이 미칠 파장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한국의 배민은 뭐가 급했기에 이런 데이터를 공개한 걸까?
보도자료가 발표된 6월 4일 시점에 답이 있다. 이 날은 5월 21일 첫 회의가 시작된 이후 최저임금위원회 제2차 전원회의가 예정된 날이었다. 사상 최초의 플랫폼노동자 출신 최저임금위원으로 선정된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전 위원장은 오래 전부터 최임위에서 배달 라이더를 비롯한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최저임금 권리 보장을 주장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이미 1차 회의(5월 21일)에서 플랫폼·특수고용 최저임금 확대적용과 관련한 얘기가 쟁점으로 제기되었고, 공익위원들 역시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기에 6월 4일로 예정된 2차 전원회의에서 토론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곳곳에서 증언대회와 기자회견이 이어지며 5월말 6월초 언론들은 플랫폼노동에 최저임금 확대적용이라는 이슈를 중점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점 한복판에 배민의 보도자료가 나왔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어떻게든 배달 라이더 부문으로 최저임금 제도가 확대적용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심정 아니었을까. 우버 프랑스가 파리고등법원 판결 직후에 가졌을 그 심리상태와 비슷한 것 말이다.
다른 과녁 명중시킨 빗나간 화살
그럼 우버 프랑스의 바램은 그대로 실현되었을까? 여기서부터가 반전이다. 1년 뒤(2020년) 프랑스 대법원은 파리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지 않았다. 우버와 승차호출 기사 사이에 고용관계가 있다는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으며, 이에 따라 우버는 고용관계에 따른 연장근무수당, 사회보장기여금 등을 부담할 의무를 떠안게 된다.
사실 우버 기사들이 법정 최저임금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은 우버의 바람, 즉 노동자성을 인정하면 안 된다는 주장과 아귀가 맞지 않는다. 이미 최저임금 이상을 벌고 있다면 노동자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우버에 큰 부담이 안 된다는 역설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올해 배민의 시도 역시 성공하기 어렵다. 이미 주 40시간 이상 일하는 라이더의 경우 월 수입 393만 원, 여기에서 올해 6월까지 퀵서비스에 적용되던 국세청 경비율 28%를 제하더라도 283만 원 가까이 되어 법정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이다. 7월부터는 경비율이 18%로 더 낮아지기 때문에 소득은 더 올라갈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제도를 배민 라이더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혹시 배민이 원했던 것은 최저임금 적용에 대한 흔한 오해 – “최저임금보다 훨씬 잘 버는 라이더도 최저임금만 받게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퍼뜨릴 목적이었을까? 그렇다면 배달 라이더 수준을 너무 얕잡아본 거다.
최저임금 제도는 그 따위 하향평준화와는 전혀 인연이 없다. 최저임금보다 훨씬 많이 버는 노동자라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경제위기 등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일정 수준 밑으로 수입이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게 최저임금 제도니까 말이다.
평균 수입 393만 원 vs 상위 10% 수입 404만 원?
배민의 보도자료에 나온 데이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이상한 대목이 있다. 아니, 주 40시간 이상 라이더의 평균 수입이 393만 원인데, 상위 10%의 평균 수입이 404만 원으로 불과 11만 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주 40시간 이상 라이더들의 수입에 큰 편차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즉, 아주 많이 버는 라이더도, 너무 적게 버는 라이더도 없다는 뜻. 팬데믹 기간 월 600~700만 원 버는 라이더들 얘기가 소문처럼 번졌는데, 그 진위 여부를 떠나서 적어도 지금 저렇게 버는 라이더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얘기가 되겠다.
문제는 이런 얘기들이 모두 ‘추정’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왜냐면 배민이 공개한 자료는 회사에 유리한 수치들만 엄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전체 데이터를 노동시간, 수입 수준, 운행거리 등의 핵심 항목에 대해 적정한 구간을 나누어 표로 제시하는 정도가 되어야 ‘투명한 공개’라고 말할 수 있지 아닐끼?
마찬가지로 우버 프랑스 역시 노동시간의 중위값을 갖는 라이더의 수입 수준만 공개했다. 도대체 전체 우버 기사의 평균소득은 얼마인지, 그들의 평균적인 노동시간과 하루 평균 주행거리는 얼마나 되는지는 절대로 공개하지 않는다.
우리 집 금송아지 100마리와 맞바꾸자
바로 이 지점에서 플랫폼기업은 결정적으로 데이터를 은폐한다. 데이터를 공개하느니 차라리 파산을 선택하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플랫폼이 돈을 벌어온 건 무슨 혁신적 기술이 있어서가 아니라 합법·불법으로 끌어모은 이 엄청난 빅 데이터가 핵심 수단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정도의 가치 있는 정보는 공공 데이터로서 ‘로 데이터(raw data)’를 공개하는 것이 옳다. 라이더들의 적정 수입, 배달건수, 운행거리 등은 공공이 사용하는 주요 도로의 교통상황을 좌우하고, 더 나아가 라이더들의 안전만이 아니라 시민 보행자들의 안전과 밀접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데이터들은 오로지 플랫폼기업의 이윤을 위해서만 활용된다. 대중에게 데이터 전체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자기들 입맛대로 분석한 결과만을 내놓고 믿으란다. “라이더들 수입 아주 괜찮습니다.” “배민의 알뜰배달 정책이 100% 옳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니, 이거야말로 초딩들도 안 믿는 얘기 아닌가. 우리 집에 금송아지 100마리가 있으니 그 데이터와 맞바꾸자 하면 바꿔줄 건가? 그나마 우버를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API 공개를 통해 앱과 데이터에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경로라도 열어주는데, 한국의 배민과 카카오 등 거대 플랫폼은 API 공개 따위 안중에도 없다.
데이터 3법은 뭐하고 있을까?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0년 1월, 국회는 여야 합의로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 등 소위 ‘데이터 3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빅 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제2의 원유(原油)’라는 논리를 들이밀며, 수많은 개인정보를 거의 무제한으로 기업들이 수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
문제는 개인정보를 가명 또는 익명화한다면 ‘당사자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물론 기업이 상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활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공공적 목적이나 순수한 연구의 목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법 규정은 마련되어 있으나, 지금까지 기업이 무차별적으로 모은 데이터를 공공적 목적이나 연구의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다.
문제는 시민의 안전과 노동자의 적정임금, 공공성 확대를 위해서는 저 데이터가 절실히 필요한데, 기업들은 언제나 ‘영업기밀’ ‘저작권’ ‘지적 재산권’ 운운하며 절대로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 다시말해 ‘데이터 3법’은 힘없는 개인의 데이터(개인정보) 권리를 희생시켜 거대 기업의 데이터 독점권을 보장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뉴욕시 승차공유 앱 기사들, 그리고 라이더들은 플랫폼기업이 보유한 데이터 일체를 뉴욕시 택시리무진위원회에 제출하도록 만들었고, 이들 데이터를 공공의 목적으로 가공하여 앱 택시 기사와 라이더들을 위한 최저임금 제도를 빚어내지 않았던가.
세계 곳곳에서 이와 유사한 저항들이 이어지고 있기에 한국 노동자·시민들도 이를 배워간다면 얼마든지 현실을 바꿔낼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그 시점이 올 때까지 <인사이드경제>는 열심히 배움의 소재들을 해외에서 퍼날라 전하는 일을 맡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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