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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연구자들의 연구안전망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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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공공성이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의 문제가 구조적이고 총체적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주요 방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사학재단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방안, 전임교수를 증가하고 비전임교원을 축소하는 인적 재생산의 선순환구조, 대학운영 비리를 방지하는 예결산의 투명성과 외부감사제도 도입, 대학평의회의 민주적 운영, 부실·비리대학의 국공립화, 대학 평준화와 서열화 폐기를 위한 통합네트워크, 대학 등록금 무상화, 재단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한 지역 사회의 민주적 통제와 감시, 총장 소환제 등 정말 많다. 이러한 방안들이 종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걸림돌이 많다.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현재의 대학을 전복시키는 민주주의 힘이다. 그것은 대학 구성원들이 새로운 대학 체제 건설을 위한 대안을 만들고 구현하려는 의지이다. 학벌이나 경쟁보다는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고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확립하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특히 대학 주체의 확대는 매우 중요한 선결조건이다. 하지만 현재의 대학 주체들 중에서 자신들의 일상이 매우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다. 그래서 주체 형성조차 어렵다.

연구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

대학 교육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는 비정규 교수들 문제의 핵심은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이다. 이는 신분보장과 소득보장을 통해 불안정 노동으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곧 비정규 교수들의 안정적인 연구환경 조성의 핵심이다. 이른바 ‘연구안전망’ 구축이다. 연구안전망은 “불안정한 연구환경에 처해있는 비정규 연구자들의 안정적 연구환경을 위한 최소한의 법·제도적, 실질적인 장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안전망은 모든 불안정한 연구환경에 대한 ‘포괄성’과 비정규 연구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성’을 실현하고 ‘최소한의 안정적 연구환경’을 보장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연구안전망은 1차적으로 법적·제도적 차원의 장치가 필요하다. 현재의 ‘강사법’으로는 불안정한 연구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대안들이 심도있게 논의되어야 한다. 비정규 연구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부가 교육·연구 여건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2차 안전망은 공공부조에 해당되는 사업을 구축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공부조는 1차 안전망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된 모든 비정규 연구자들을 위한 공적 지원사업을 의미한다. 3차 안전망은 긴급구호로서 (가칭)’연구자 은행’, ‘연구자 보험’, ‘연구자 기본소득’ 등을 구축해서 연구기금이나 생활자금 등을 지원하는 상호부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법·제도적 장치 마련이 핵심인데, 세 가지 대안이 있다. 첫째, 국가교수제가 있다. 국가교수제는 정부가 모든 비정규 연구자들을 직접 책임지는 제도라서 연구안전망의 개념과 가장 근접한다. 시도할만한 가치가 있다. 둘째, 인문사회과학원 설립이다. 현재의 대학에서는 연구자 양성과 학문의 재생산을 기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정부가 직접 연구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현재의 한국연구재단을 혁신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연구재단 혁신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한국연구재단 혁신 방안

한국연구재단은 정책을 만드는 기구가 아니라 집행하는 기구이다. 이는 교육부의 정책적 변화와 실천 의지가 관건이라는 의미이다.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분야 학술지원사업은 비정규직 연구자들에게는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에 매우 소중하다. 지원사업의 주된 목적은 당연히 인력 양성과 학술진흥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시간과 예산 낭비만 가져올 뿐이다. 그동안 한국연구재단에서는 학계의 비판이 거셀 때만 형식적으로 소규모의 변화만 가져왔으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데 주저했거나 무관심했다. 수많은 연구자들의 비판적 의견에 아랑곳 하지 않고 사업을 유지해 온 것이다.

연구재단의 혁신 과제는 크게 조직 혁신과 지원사업 혁신으로 나뉜다. 조직혁신은 현재의 통합 구조를 이원화해서 인문사회분야와 이공계분야를 분리하여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이공계 부문은 일부 기초학문을 제외하고는 강의를 담당하는 비정규 교수들의 숫자가 적으며, 학문의 성격도 다르다. 이들의 대부분은 연구실에서나 실험실에서의 생활이 일상이며, ‘비정규 교수’라는 표현과 개념도 낯설어한다. 이들은 연구원, 연구교수, 과학기술자 등의 신분으로 소득을 창출하고 있어서 인문사회과학 계열의 비정규 연구자와는 별도의 연구안전망이 필요하다. 이 제안은 학술진흥재단 시기부터 연구재단 설립을 반대한 교수학술단체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것이다.

▲배성인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성공회대분회장 ⓒ배성인

지원사업 혁신의 핵심은 예산이다. 연구재단의 인문사회 연구개발 예산은 2021년 현재 고작 2,500여억 원으로 연구재단 전체 예산의 3.3%에 불과하다. 연구재단 홈페이지에는 여전히 2021년 기준이다. 따라서 연구비 증액이 절실하다. 하지만 연구비 증액도 사실 연구비 ‘배분’ 방식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큰 의미가 없다. 연구과제 선정 방식을 분과학문별 나눠 먹기나 지원사업별 돌려막기식으로 해서는 안된다. 또한 연구자 개인연구와 집단연구를 어떻게 구성할지도 심도있게 논의해야 한다. 지원사업의 전면적인 개편논의가 필요하다.

당장 비정규직 연구자들에게 가장 관심이 큰 지원사업은 학술연구교수이다. 그런데 이 사업을 졸속적으로 시행하다 보니 해마다 연구자들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2024년 A형 학술연구교수 신규과제는 300명, B형 학술연구교수는 1,275명을 선정했다. 선정률은 A형 24.6%, B형 29%이다. 이들 사업을 합하면 A형에는 1,220여명, B형에는 4,400여명 등 도합 5,600여명의 연구자가 지원한 셈이다. 그런데 고작 1,600여명이 선정되고 4,000여명은 탈락했으니, 이 노릇을 어찌할까. 결론적으로 예산 증액이 최선의 방안이다. 오랫동안 고등교육예산 GDP 대비 1.1% 확대 요구와 운동을 지속하고 있지만 교육부의 대답이 없다.

연구재단 혁신안은 쉬운 방안은 아니지만 그리 어렵지도 않다. 교육부 장관은 사회부총리다. 기획재정부 장관인 경제부총리와 동급이기 때문에 필요한 재정을 충분히 요구해서 확보해야 한다. 비정규 연구자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학문적 자원이고 미래에 대한 전망이다. 비록 이들의 삶이 비루하지만 그렇다고 시혜의 대상은 아니다. 이들도 당당하게 연구안전망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 이들도 대학의 한 주체로서 학문공동체, 나아가 학문생태계를 보호하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 대학을 진보적 삶을 위한 탈물질주의, 코뮌주의, 생태주의 등 새로운 시대를 위한 협동적 덕목을 가진 인재를 양성하는 곳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대학의 진보적 가치는 인류의 보편적 삶을 주도하는 인재 양성에 있다는 자명한 논리를 정부 당국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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