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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화성, 울산 등 전국 각지에 있는 공공·임대아파트와 병원, 경찰서 등 공공건물의 안전 시공을 관리·감독하는 감리 업체들이 5700억 원대 입찰 물량을 짬짜미로 나누고 심사위원들에게 뒷돈을 준 68명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감리 업계의 구조적인 부정부패가 드러난 사건으로 감리업체 중 일부는 지난해 철근을 빼먹어 지하주차장이 붕괴돼 ‘순살 아파트’라는 오명을 받은 인천 검단 소재 아파트와 2022년 붕괴 사고가 난 광주 아파트 감리 업체도 있었다.
30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김용식 부장검사)는 공공건물 감리 입찰 담합과 금품 수수 사건을 수사한 결과 68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수뢰 혐의를 받는 심사위원(대학교수) 등 6명과 뇌물을 준 감리업체 대표 1명은 구속됐다. 뇌물액 합계 6억 5000만 원 상당에 대한 추징보전 조치도 완료했다.
감리업체들은 2019년 10월부터 2023년 2월 공공 발주 감리 입찰에서 ‘용역 나눠 갖기’ 등으로 총 94건, 낙찰금액 합계로 약 5740억 원 규모로 담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법인 17개사와 개인 19명을 입찰 담합으로 인한 공정거래법 위반 등으로 기소했다.
업체들은 LH 용역 79건과 조달청 발주 용역 15건에서 낙찰 기업을 미리 정하고 서로 들러리를 서주는 방식을 썼다. LH는 연간 발주 계획을 세우는데 감리업체들은 이를 바탕으로 낙찰 물량을 나눴다. 특히 2020년에는 전체 물량의 70% 가량을 이들 담합업체가 나눴다.
국토교통부와 LH는 최저가 낙찰제도로 감리 품질이 저하되거나 대형 업체들에게 낙찰이 편중되는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2019년 심사위원의 정성평가 비중을 늘리는 ‘종합심사낙찰제’와 ‘상위업체간 컨소시엄 구성 제한’ 규정을 도입했다. 감리업체들은 이 같은 제도의 허점을 파악해 담합과 심사위원 포섭을 시작한 것이다.
실제 교수와 공무원 등 입찰 심사위원들은 2020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업체들로부터 ‘좋은 점수를 달라’는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한 행위에 대해 심사위원 18명, 감리업체 임직원 20명을 특정경제가중처벌법(뇌물) 등으로 기소됐다. 청탁을 받은 심사위원들은 전·현직 대학교수와 시청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 등이 포함돼 있었다. 적게는 300만 원부터 많게는 8000만 원 가량 금품을 받았다.
감리업체 심사위원 명단이 나오면 지역단위로 배치된 영업사원들이 텔레그램 등 보안이 잘 되는 메신저로 연락해 금품을 지급하기로 약속하고 인사비 명목으로 현금을 지급했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교수 연구실 쓰레기 봉투에 있던 금품이나 주거지 화장품 상자에 보관하던 현금더미를 찾아냈다. 한 심사위원은 아내에게 메시지를 통해 “앞으로(정년까지) 9년 8개월 남았는데 죽어라고 심사하고 돈벌어야지요”라며 심사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노골적인 도덕적해이도 보이기도 했다. 또 발주청에서 받은 자문 업무를 감리업체 직원에게 대신하게 한 심사위원 사례도 있었다.
극비리로 진행되던 이들 범행은 형벌감면제도(리니언시)가 큰 역할을 했다. 감리업체들 일부가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에 각각 자진 신고서를 제출해 검찰 수사와 공정위 조사가 동시에 진행되며 속도가 났다. 검찰에 1순위로 자진신고를 한 업체는 기소를 피할 수 있었다.
검찰은 이 같은 입찰 제도에 큰 허점이 있다고 판단하고 국토부 등 유관 부처, 기관과 협의회를 열어 현행 입찰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했다. 검찰 관계자는 “형벌감면신청 제도를 수사 실무에 정착시켜 공정위와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함으로써 카르텔 범죄를 엄단할 것”이라며 “이번 사건도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되도록 철저히 공소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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