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계속된 노사 갈등 이슈에도 조용하기만 하다. 그동안 임직원과 소통을 강조해온 것과는 다른 기조다. 재계에서는 노조가 전례없는 총파업에 돌입한 만큼, 이 회장이 실리적인 판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한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는 29일 오후부터 사흘동안 사측과 집중 교섭에 들어갔다. 교섭에는 김형로 부사장, 전대호 상무 등이 사측을 대표해 참석한다. 전삼노에서는 손우목 위원장, 허창수·이현국 부위원장 등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업계 일각에서는 임직원과 소통을 강조하고 삼성의 큰 결단이 필요할 때 존재감을 나타내던 이재용 회장이 노조 문제에서 만큼은 너무도 조용하다는 반응을 내놓는다. 실제 이재용 회장은 인도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14일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전삼노)이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간 것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어떤 답변도 하지 않았다.
이는 4년 전 이 회장이 노조와 관련해 본인의 소신을 밝혔던 것과도 사뭇 다른 모양새다. 무노조 경영 폐지를 공식 선언한 2020년 5월 당시 그는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노동 3권을 확실히 구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또 노조 이슈는 아니지만, 2007년부터 이어온 ‘반도체 백혈병’ 갈등의 매듭을 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8년 당시 이 회장이 삼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고민한 끝에, 11년 넘게 해묵은 난제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풀겠다고 결심한 것이라는 업계의 추측이 나왔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과거 ‘통큰 결단’과 달리 노조 이슈에서 만큼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총수가 직접 개입하는 그림이 근본적인 갈등 해소와 실질적인 교섭 타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시각에서다.
특히 전삼노는 8일 총파업 집회에서 이 회장을 ‘바지회장’이라고 부르며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았다. 그러면서도 이 회장이 총수로서 이 사태의 해결책을 제시하라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 요구에 응답하는 듯이 이 회장이 나서는 것은 외부에 노조의 승리, 사측의 패배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대기업 노사 간 임금교섭에서 총수가 직접 해결사로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진 않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21년 SK하이닉스 임직원들의 성과급 불만을 달래기 위해 직접 소통에 나서 30억원 규모의 연봉 반납을 약속하고 이행한 적 있다. 다만 SK하이닉스 등 관계사의 노사 간 임금교섭에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이 회장의 등장은 교섭 주체가 되는 사측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노조가 타협을 거부하고 요구안을 그대로 고수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결과적으로 노사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먼저 손을 내민 사측만 조급해지고 총수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게 될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회장이 교섭에 직접 개입하는 그림이 이목을 끌지는 몰라도, 실질적인 타결로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며 “노사 간 임금교섭 주체가 따로 있는 만큼, 이들 스스로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라고 설명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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