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는 내년에 통계청이 실시할 ‘2025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새로운 조사 항목을 추가하는 방안을 놓고 국민 의견을 묻고 있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함께 살고 있는 연인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파악해 정책 설계 기초 자료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결혼식은 올렸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혼인 신고는 하지 않은 부부가 얼마나 있는지도 집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9일 통계청 의뢰로 홈페이지 내 ‘국민생각함’에서 2025 인구주택총조사 항목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 항목에 변화하는 사회 모습을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지난 10일부터 의견 수렴이 시작돼 19일 만에 1300명이 참여했다.
권익위가 물은 것은 국민들이 5년 마다 조사원 면접이나 인터넷 페이지, 전화로 참여하게 되는 인구주택총조사 문항 중 가구 형태와 출산에 관한 부분이다.
앞서 2020년 실시된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가구주와 어떤 관계입니까?’라는 질문에 ①가구주 ②배우자 ③자녀 ④자녀의 배우자 ⑤가구주의 부모 등에서 한 가지를 답하게 돼 있다.
이번에 권익위는 배우자와 자녀 사이에 ‘함께 사는 애인(비혼 동거)’을 넣는 방안에 대해 국민 의견을 듣고 있다. 또 혈연과 혼인으로 이뤄진 전통적인 가구가 아닌 ‘비혼 동거’와 함께, 결혼식은 올렸지만 혼인 신고는 하지 않아 법적인 부부가 아닌 커플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도 파악한다. ‘혼인 상태는 어떠합니까’라는 질문에 ‘배우자 있음’이라고 답했다면 ‘혼인신고 함’ ‘혼인신고 하지 않음’ 중에서 고르게 하는 방식이다.
비혼 동거 커플의 숫자를 정부가 파악하는 것은 동거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서다. 통계청이 작년 8월 발표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 의식 변화’ 자료에 따르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는 청년(19~34세)의 비중은 2012년 61.8%에서 2022년 80.9%로 높아졌다. 2022년 기준 전체 국민의 65.2%가 비혼 동거에 동의했다. 결혼에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청년은 2012년 56.5%에서 2022년 36.4%로 줄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0년 조사에서 ‘성인 남녀가 결혼하지 않고 동거해도 가족이다’는 응답은 54.1%, ‘결혼하지 않은 이성간 동거에 대해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응답은 61.9%로 집계됐다.
비혼 동거 연인을 어떻게 봐야 할지 정부 입장은 오락가락했다. 지난 정부는 2021년 4월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서 비혼 동거 연인을 법률상 가족에 포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는 2022년 9월 건강가정기본법에 규정된 가족의 범위를 넓히지 않고 현행법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법 개정보다 현실에 맞는 실질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실질적인 지원을 위해 비혼 동거 가구가 전국에 어느 정도나 있는지 기초적인 통계도 현재 조사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정확히 파악해 볼 필요가 있는 셈이다. 권익위는 설문 목적에 대해 “비혼 동거 가족 형태가 점점 증가하지만 정책 대상 규모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비혼 동거 연인에게 어느 정도 정책적 지원을 할지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2021년도 가족과 출산 조사’ 보고서에서 비혼 동거나 사실혼 상태의 커플 중 32.2%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데 대해 ‘집 마련이나 결혼식 비용 등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면 그 때 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28.3%는 정부 지원 혜택에서 제한을 겪었다고 답했다.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는 2017년 3월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해 일정한 요건을 갖춘 비혼 동거나 사실혼 커플에게 결혼과 동등한 제도적 혜택 부여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혜택으로는 기본 소득공제, 자녀 출산시 배우자 출산휴가 등이 거론됐다. 다만 그 뒤 구체적으로 논의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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