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역폭메모리(HBM)가 메모리 업계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가운데 차세대 제품인 HBM4(6세대)를 두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치열한 전략 경쟁을 벌인다. 양사는 HBM4 개발 로드맵을 공개한 데 이어 각각 ‘종합 반도체 기업’, ‘HBM 시장 강자’ 등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주도권 확보를 자신하고 있다. 맞춤형 수요에 대응해 고객사에 대한 물량 확보를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내년 출시를 목표로 6세대 HBM4를 개발하고 있다. HBM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맞춤형 수요가 늘고 있어 선단 공정에 대한 기술력 확보가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칩의 성능과 용량뿐 아니라 전력과 열효율성도 중요해졌는데, 이를 위해 다양한 기술을 적절히 구현하는 것이 곧 공급사의 경쟁력이 된다.
HBM 시장에서 앞서 나가는 SK하이닉스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 대만의 TSMC와 손잡았다. HBM4부터 성능 향상을 위해 베이스 다이 생산에 TSMC의 로직 선단 공정을 활용하고, 2025년부터 양산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HBM4 12단은 내년 하반기, 16단은 2026년을 목표 시점으로 잡았다. 두 회사는 올해 4월 HBM4 기술 개발 협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김규현 SK하이닉스 담당은 HBM4 기술 로드맵과 관련해 “D램 12개를 쌓는 HBM4 제품엔 어드밴스드 MR-MUF 패키징 기술을 적용할 예정이다”라며 “16단 제품에는 어드밴스드 MR-MUF와 하이브리드 본딩 공정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드밴스드 MR-MUF는 D램을 쌓은 뒤 각 반도체 사이 공간에 회로를 보호하기 위한 액체 형태의 보호제를 주입하고 굳히는 공정이다. SK하이닉스는 HBM2E부터 MR-MUF를 적용해왔다. 4세대부턴 이를 개선한 어드밴스드 공정을 적용한다는 설명이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반도체를 위아래로 직접 연결해 신호 전송 속도를 대폭 높이고, HBM 높이는 줄일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다만, 기술적 난이도가 높아 ‘꿈의 패키징’으로 불린다.
SK하이닉스는 하이브리드 본딩 양산 적용에 있어 고객사와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언급하며, 회사가 HBM 선두업체로서 개발에 이점이 있는 점을 강조했다.
김규현 담당은 “현재 HBM 공급업체별로 적용하는 패키징 기술이 다르고, 각 사가 가진 역량과 리소스도 다르기 때문에 하이브리드 본딩 적용 효과는 업체마다 다를 수 있다”며 “해당 기술 양산 적용을 위해선 고객과 파트너사의 협업을 통해 시스템 레벨에서 철저한 특성과 품질 검증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객 니즈에 부합하는 최적의 방식을 선택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김우현 SK하이닉스 CFO 역시 고객사 신제품 출시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 것에 대해 “시장 리더에겐 오히려 유리한 환경이다”라며 “타임투마켓이 중요한 시장 특성상 기술경쟁력과 풍부한 양산 경험을 갖춘 선두 업체와 협력하는 것이 고객사 입장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도 HBM4부터 역전을 노리고 있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패키징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종합반도체(IDM) 기업인 점을 앞세워 HBM 기술에서 경쟁사와 차별화하고 있다. 실제로 HBM4에선 GPU와 HBM을 연결하는 베이스 다이의 설계와 파운드리 역량이 중요한데, 삼성전자는 이미 자체적으로 두 가지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최장석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최근 진행된 삼성 파운드리 포럼에서 “HBM4는 HBM3 대비 성능이 대폭 향상됐다. 48GB 용량까지 확대해 내년 생산목표로 개발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많은 고객이 기존의 범용성보다 맞춤형 최적화를 지향하고 있다”며 “회사는 계획된 일정에 맞춰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HBM3E까지 MOSFET 공정을 적용했는데, HBM4부턴 핀펫 공정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MOSFET 적용 공정 대비 속도가 200% 빠르고, 성능은 50% 이상 향상되는 장점이 있다. 또 16단 HBM4에 대해선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 등 다양한 최첨단 패키징 기술 적용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삼성전자는 최근 HBM 개발팀을 신설하는 등 차세대 메모리 시장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해당 조직은 HBM3와 HBM3E, HBM4 등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박혜원 기자 sunon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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