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고은 강현민 기자】 “국회에서 법을 없애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법 만드는 국회에서 법을 없애보겠다고 말하는 국민의힘 최수진 의원. 그의 발언은 어떤 의미일까.
22대 초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최 의원은 제약·바이오 분야 전문가로 30여년간 기업과 정부 기관, 학계를 넘나드는 경력을 쌓은 베테랑이다. 1995년 대웅제약 연구원에서 시작해 ‘최연소·최초 여성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정부 바이오 신산업의 기틀을 닦겠다는 일념으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정부기관으로 자리를 옮겨 R&D(연구·개발)전략기획단 신산업 MD(매니징 디렉터)로 ‘보건의료 빅데이터 통합 플랫폼 공통데이터모델(CDM)’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보건의료 빅데이터 통합 플랫폼은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 등 숱한 난제들로 기술을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웠지만, 의료 데이터를 원본이 아닌 통계 분석값으로 제공하게 되면서 다양한 보건의료 연구에 활용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처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산업부의 장벽을 깨부순 경험이 있어서인지 각종 규제로 신기술 검증이나 사업화가 가로막히는 일이 없도록, 규제 해소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1호 법안인 ‘R&D 3법’ 발의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우파, 좌파, 적군, 내 편 구분 짓는 건 국민 생활에 또 경제 활성화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며 “기업을 억압하는 규제를 풀고, 활성화할 수 있도록, 기업·신기술 만들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투데이신문>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최 의원을 만나 그의 정치 목표와 의정활동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이하는 일문일답.
Q. 22대 국회 초선 의원으로 입성했다. 국회의원직에 뛰어들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
사실 정치에 큰 관심 없었다. 그런데 ‘국회에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고, 그 말이 저를 움직이게 했다. 제약, 기업, 과학계에서 일하면서 우리나라 4차 산업이 규제와 정책에 막혀 제자리걸음에 머물러 있다는 문제를 절실하게 체감하고 있을 때였다.
타다 사태처럼 기존 산업과 신규 산업과의 갈등도 많이 일어나는데, 이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정치’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해보고자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회사에 다닐 때, 제 고객은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였다. 지금은 국민이 저의 고객이 됐다. 그때는 상품을 팔았지만, 지금은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싶다.
Q. 연구개발(R&D) 예산 확대를 위한 패키지 3법을 발의했는데 1호 법안으로 낸 이유는.
우리나라 미래성장동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첨단산업 지원을 위한 R&D 예산의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국가연구사업에 대해서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없이 신속한 지원과 융자형 지원 방식, 신뢰 지원 방식 등을 구상하게 됐다. 이렇게 혁신 기술, 산업화 촉진, 기초연구 강화 3개를 모두 다뤄야 기술혁명의 기반을 닦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는 예타 기간으로 인해 신기술 개발의 골든타임을 놓치거나 충분한 자금이 확보되지 않아 기업들이 기존의 쉬운 프로젝트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는 기술혁명이 일어나기 힘든 환경을 조성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추려면 예타를 폐지해야 한다.
다만, 도덕적 해이(모럴 헤저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예타를 폐지하는 대신 기술성 평가를 도입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예산 심의 절차를 간소화하고, 신속한 예산 편성이 가능하게 된다.
또 우리나라 R&D 예산이 5%가 채 되지 않는데, 더 늘리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출연금 대신 융자와 보조 형태로 자금을 지원해, 기업이 대출을 상환함으로써 자금을 재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했다.
최근 기초 R&D 예산에 손을 대면서 논란이 있었고, 현장에선 인건비가 없어서 연구자들이 해고를 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공계 인재 양성이야말로 기초 과학에 대한 투자다. 기초연구 분야 R&D 지원은 정해진 기간만큼은 정부가 임의로 깎거나 끊을 수 없도록 하는 법안도 발의했다.
Q. 민주당에서 발의한 ‘R&D 시스템 재구축 3법’과의 차이점은.
완전히 다르다. 민주당 황정아 의원이 이를 발의한 취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국가 총예산의 5% 이상을 R&D에 투입하도록 규정하려는 것이지만, 이처럼 예산을 반드시 확보하도록 하는 사례는 없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예산을 고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Q. 최근 정부가 정부가 내년도 R&D 예산을 올해보다 13.2% 늘어난 약 24조 8000억 원 규모로 책정했다. 정부가 R&D 카르텔을 언급하고 삭감한지 2년여 만인데 어떻게 평가하나.
여러 루트를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대통령은 “예산을 깎아라”라고 말한 적이 없다. 다만 대통령은 “R&D 효율을 높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왜 글로벌한 연구를 안 하냐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어디선가 뒤틀려 의미가 잘못 전달된 것 같다.
이는 R&D를 모르는 사람들이 한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같이 R&D 분야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안다. R&D에는 손대면 안 된다. 이쪽 사람들은 월급이 적더라도 자부심 하나로 먹고사는 사람인데, 어디서 카르텔이란 말을 하나. 카르텔도 대통령이 한 말은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 차관이 말한 카르텔 사례도 카르텔이 아니라 불법에 해당하는 정도다. 그런 문제는 제재하는 룰이 다 있다.
Q. R&D 3법에 이어 구상하고 있는 법안이나 주력하고 있는 법안이 있다면.
대기업과 중소 벤처기업의 상생 협력 모델도 구상하고 있다. 현재 모태펀드 출자사업은 정부 재정이 60% 내외로 출자되는데, 해외에서는 보통 40% 정도가 출자된다. 그러나 재정 상황이 악화되면 모태펀드 금액은 줄어들게 된다. 이에 대기업이 내는 세금 중 일부를 모태펀드 기금으로 재투자하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
또한, 특허 기술 이전과 관련해 근로소득세법을 적용하면 안 된다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한 회사의 경우 기술이전으로 글로벌 제약사에서 1000억원을 받았는데 세금으로 500억원을 납부했다고 한다. 종합소득세로 절반이 떼이고, 나머지를 연구기관과 나누면 연구자 몫은 20~30%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액 비과세를 핵심으로 한 소득세법 개정안을 냈다.
저는 이 세금의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하고, 이를 다시 벤처에 재투자하게 하고자 한다. 정부가 세금을 거둬 펀드를 만들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계획에 없었던 돈이니 특별 외로 들어오는 세금에 한해서는 기금을 조성해 모태펀드 등으로 조성하면 좋을 것 같다. 이런 방식으로 대기업과 중소 벤처기업 간의 선순환 구조를 조성하고자 한다. 관련 법안이 곧 발의될 것이다.
Q.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을 둘러싼 여야 정쟁으로 과학기술 법안 논의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국민의힘에서 방송과 과학기술을 분리하자는 의견도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재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상임위가 하나 늘게 되면 몇억원의 비용이 든다. 그래서 과학과 교육을 묶고, 방송과 통신을 묶는 법안을 발의하려고 한다.
과학과 교육은 미래 인재 교육비나 과학 방향을 다시 정립할 시기가 됐다. 현재 우리나라 과학고와 과학대는 교육부가 아닌 과기부에서 운영하고 있다. 과학과 교육 간에는 공통 분모가 있다고 본다.
Q. 일본 정부가 넉 달 만에 네이버에 라인야후 지분을 팔라고 했던 요구를 철회했다고 하는데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과학기술 패권 전쟁은 계속 될 수 밖에 없을텐데 향후 정부·국회에서 어떤 지원 및 대책을 마련해야 하나.
산업 현장에서 있었던 사람으로서, 기업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네이버가 왜 지분을 팔고 싶어 하느냐다. 네이버는 구글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하는데, 투자 비용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네이버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IT 기업이다. 구글과 같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우리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산업 기술 정책을 부활시켜야 한다. 그동안 흐름을 보면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기업을 서포트하고, 중국은 정부가 기업을 리드하고 있다. 최근엔 미국도 중국처럼 변하면서 어마어마한 보조금을 뿌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패권 경쟁에서 계속 밀린다. 일본도 해외 기업들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10조원를 투입했는데, 우리나라는 300~500억원 정도밖에 쓰지 않으니 실질적인 효과를 보기 어렵다. 과감하게 보조금을 투입해야 한다.
Q. 제약·바이오 전문가로서 향후 해당 업계 관련 법안 추진 계획이 있는지.
국내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을 육성하는 법안을 구상 중이다. 현재 국내 바이오 벤처 기업들의 경우 벤처케피탈(VC)을 통해 나온 자금을 연구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이 비용에 가장 큰 부분을 임상이 차지하고 있는데, 문제는 임상 비용의 대부분이 해외 CRO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벤처 기업에 쏟은 자금이 해외로 나가면서, 투자를 통한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CRO를 지원할 수 있는 법이 없어 현재로선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국내 CRO 강화를 통해 제약·바이오 산업 생태계의 선순환을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내 바이오 벤처 기업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자 한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쓰임정치. ‘국민에게 쓰일 수 있는 정치를 하자’가 제 정치 철학이다. 여소야대의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고, 정치적 갈등이 많지만 국민의 삶에 쓰이는 정치를 하겠다는 이 목표를 잊지 않고 국민의 삶과 밀착하는 정치를 이어가겠다. 또한 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를 마음껏 발굴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도록 하겠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