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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협 ‘독소조항’ 빌드업이 완성한 ‘어감홍’ 자책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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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축구 대표팀 감독은 ‘셀렉시오뇌르(Sélectionneur)’로 불린다. 대표팀 축구 선수를 선발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비슷한 맥락에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은 ‘셀레상(Seleção)’이다. 감독으로부터 선택 받은 축구 선수라는 뜻이다.

실제로 축구 대표팀 감독은 팀의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선수를 선발하는 게 최고의 권한이자 임무다. 미디어가 늘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감독의 대표팀 선수 선발과 관련해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분석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각국 대표팀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감독을 축구협회가 선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축구협회가 감독 선임을 하는 잣대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적으로 축구 스타일과 축구 철학의 적합성이라는 명분을 중요시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명분이 충분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요인이 개입된 경우에는 감독 선임에 대한 비판론이 고개를 든다.

‘어차피 대표팀 감독은 홍명보’, 외국인 감독 면접은 요식행위

지난 7일 홍명보 감독을 대표팀의 차기 사령탑으로 선임한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비판론도 여기에서부터 출발했다.

특히 감독 선임의 절차적 정당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다른 외국인 감독들은 면접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홍명보 감독은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이에 대해 “이미 홍 감독의 축구 철학과 스타일을 잘 알고 있어 면담의 방식이 달랐을 뿐 특혜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협회는 “외국인 감독 후보들이 면접을 위해 상당한 자료를 준비해 온 것은 그들이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 해당 감독의 능력의 근거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협회의 해명에도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 의혹은 해소되지 못했다. 대다수 미디어와 축구팬들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표팀 감독 후보를 선정하는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했던 박주호가 “초기부터 전력강화위원회 위원들은 외국 감독보다 국내파 감독에 호감을 보였다”고 했던 발언에 훨씬 더 공감했다. 대중은 어차피 대표팀 감독은 처음부터 홍명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요식행위 차원에서 외국인 감독을 후보로 올려 소극적인 협상을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됐다.

이 와중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홍명보 감독 선임 발표 이틀 전에 했던 발언이 주목을 끌었다. “결국 대표팀 감독은 원팀을 만드는 능력이 중요하고 전술적인 부분은 코치진이 잘 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마디로 카리스마 리더십의 대명사인 홍 감독이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끌 적임자라는 점을 은연중에 드러냈던 셈이다.

이미 지난 해 3월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축구인 기습 사면에서부터 클린스만 감독의 재택 근무 논란과 아시안컵에서 터져 나온 ‘탁구 게이트’ 등으로 협회는 국민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 터였다. 협회의 신뢰도가 최악인 상황에서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은 또 하나의 악재로 작용했다.

외국인 가운데 가장 유력한 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됐던 제시 마시와의 협상이 결렬된 이유가 “국내 거주와 세금 문제였다”는 협회의 입장 표명에도 이런 의구심은 없어지지 않았다. 사실상 협회가 어떤 해명을 해도 논란을 잠재울 수 없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새 사령탑으로 선임된 홍명보 감독이 자신을 보좌할 외국인 코칭스태프 선임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자 1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기에 앞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절차적 정당성보다 심각한 국내파 감독 돌려막기 관행

어쩌면 절차적 정당성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한축구협회의 K리그와 국내파 감독에 대한 시각이다.

홍명보 감독을 선임하면서 불거진 ‘대한축구협회가 과연 K리그를 존중하고 있느냐’는 지적은 치명적이다. 홍 감독이 K리그 클럽 울산 HD를 이끌고 있던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을 비롯한 대다수 국가에서 시즌 중에 클럽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는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데려 오는 경우는 없다.

유독 한국에선 이런 일들이 꽤 일어났다. 이번 홍 감독 선임으로 전 국민이 알게 된 대한축구협회의 독소조항이 근거가 됐다. 협회 운영규정 12조 2항에는 ‘감독으로 선임된 자가 구단에 속해 있을 때 당해 구단의 장에게 이를 통보하고, 소속 구단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때문에 K리그는 지금까지 협회가 원할 경우 클럽 소속 감독을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일본 언론이 홍 감독 선임 이후 이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한축구협회의 독소조항을 꼬집었을까.

이 조항 덕분(?)에 협회는 위기의 상황마다 K리그 감독을 대표팀 감독으로 데려 올 수 있었다. 허정무, 조광래, 최강희 감독의 경우가 대표적이었다. 실제로 2002년 이후 국내파 감독들은 위기의 순간마다 구원투수로 등장해 대표팀 감독 직을 수행해야 했다.

가깝게는 울리히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된 뒤 신태용 감독이 러시아 월드컵을 채 1년도 남겨 두지 않은 상황에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사례가 있다. 신 감독만의 축구를 선보이기에는 턱없이 짧았던 기간이었다. 그는 당시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을 꺾는 ‘카잔의 기적’을 연출했지만 월드컵 이후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는 더욱 가관이었다. 조광래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사임하자 협회는 당시 K리그 최강팀 전북 현대의 사령탑인 최강희를 대표팀 감독으로 앉혔다. 하지만 최 감독은 월드컵 본선 진출까지만 대표팀을 지휘하겠다는 원칙을 지켰고, 막상 월드컵 본선은 홍명보가 대표팀을 이끌었다.

2014년과 2018년에 드러난 국내파 감독 돌려막기에 대한 비판 여론과 월드컵 성적 부진 때문인지, 협회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선 외국인 파울로 벤투를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 벤투는 4년 간 대표팀을 이끈 최장수 감독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2년 뒤 한국 축구는 또 다시 국내파 감독 돌려 막기 시대로 회귀했다.

본선 진출하면 최초로 월드컵 두 번 경험하는 홍명보

1992년 국가대표 전임감독제가 시작된 이래 대표팀 지휘봉을 두 번 잡은 사람은 허정무와 홍명보밖에 없다.

허 감독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대표팀을 이끌었지만 성적 부진 등의 문제로 2002 한일 월드컵에는 나서지 못했다. 그는 2008년 다시 대표팀 감독 자리에 올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사상 최초의 원정 월드컵 16강을 달성했다.

홍명보 감독이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 나선다면 그는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는 최초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이어 두 번이나 월드컵 무대를 경험하는 감독이 된다.

하지만 그가 감독으로 출전한 첫 번째 월드컵은 재앙이었다. 1승 제물로 평가됐던 알제리에 2대4로 패하면서 한국의 브라질 월드컵은 사실상 끝났다. 홍 감독을 향한 비판 여론은 거셌다. 그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할 때 기여했던 선수들만 믿고 기용하는 ‘의리 축구’를 했다는 비난이 그 중심에 있었다.

압박 수비와 빠른 스피드를 활용한 역습이라는 한국 축구의 특장점도 홍명보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빠른 전술적 변화가 필요했지만 이런 임기응변도 잘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월드컵 준비과정이 1년밖에 없었다는 부족했던 시간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결국 브라질 월드컵의 부진한 결과는 감독 경력이 짧은 홍명보의 한계였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2026년 월드컵까지 홍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은 2년이다. 2014년에 비해서는 훨씬 좋은 조건이다. 그가 선보일 축구의 컬러가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그래도 대표팀에 그의 색깔을 입힐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홍 감독의 부담감은 2014년에 비해 훨씬 더 크다. 현재의 한국 국가 대표 축구팀은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된 황금세대라서 그렇다. 여기에서부터 그의 선수 선발과 기용에 대한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월드컵에서의 성공은 ‘최고’가 아닌 ‘최적’의 선수들이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홍 감독의 어깨를 짓누르는 건 감독 선임에 대해 국민적 분노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대한축구협회의 감독 선임 난맥상 때문에 두 번이나 월드컵 구원투수로 등장하게 된 그가 해결해야 할 힘겨운 과제다.

프레시안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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