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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잼도시 탈출하지 맙시다

미디어오늘 조회수  

▲ 관광, 여행. 사진=gettyimagesbank
▲ 관광, 여행. 사진=gettyimagesbank

포털 사이트에서 ‘노잼 도시’라고 검색해봤다. 

① [노잼 도시 탈출기] 특급호텔 유치 절실
② [노잼도시 울산 탈피] 관광객 유인·경제 가치 창출 ‘랜드마크’ 일석이조 효과
③ ‘노잼도시’ 대전, 국립게임박물관 유치해 ‘꿀잼도시’로

위 기사는 모두 지역신문에서 썼다. 대부분 엇비슷한 늬앙스다. 자꾸 돋보이는 뭔가를 짓자고 보챈다. 제목을 곱씹을 수록 이물감만 올라왔다. 서울 지상파 개표 방송이 떠올랐다. 경남을 ‘통영 꿀빵’ 그래픽으로 소개할 때 그 불편한 심정. 서울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꿀빵의 고장에 사는 김연수입니다”라고 인사라도 올려야 되나 싶다.

‘노잼도시’라는 표현은 인터넷 밈이었다. 2019년 본격적으로 확산됐다고 한다. 대전시가 ‘대전 방문의 해’를 선포했던 그때 온라인 상에서 누리꾼들은 키득거렸다. ‘대전에 볼 게 뭐가 있냐’는 것이다. 그것은 서울이 지방을 바라보는 우월감 섞인 시선이었다. 이후 지방도시 누리꾼들도 ‘이곳이 진정한 노잼도시’라는 자조적인 반응을 보이며 유행은 더 확산됐다.

밈은 밈으로서 끝났어야 됐다. 단물 빠진 ‘노잼’ 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신 분들이 있다. 바로 지자체장님들이다. ‘노잼 탈출’을 비장한 각오로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노잼 탈출’ 플랜은 단순하다.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지자체장님들에게 ‘노잼 탈출’은 곧 ‘관광 시설 개발’이다. 그것은 거주민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개선되는 것과는 무관하다. 노잼과 유잼을 가르는 기준을 외부인에게 의탁한다. 외부인에게 ‘유잼 도시’로 인정받자는 것이다. 지역민들을 자극하는 그 욕망은 마치 TV 방송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백인들이 한복을 입고 고즈넉한 한옥 마을을 거닐며 감탄사를 연발하거나, 달콤한 양념치킨에 생맥주 한 잔을 벌컥 들이키며 엄지를 추켜세울 때 차오르는 ‘국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노잼 탈출’을 명분으로 관광 시설 개발에 속도를 낸다고 치자. 그러면 진짜 그들이 말하는 ‘노잼 탈출’은 가능한가. 그마저도 성공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레고와 무관한 춘천에 레고랜드를 짓고, 로봇과 무관한 마산에 로봇랜드를 지어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전국에 40개 넘게 깔려있는 케이블카는 또 어떤가? 돈을 얼마를 들이붓는다고 한들 맥락없는 개발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지역마다 난개발로 얻은 오랜 교훈이다.

진짜 문제는 지역 언론에 있다. 감시견 노릇을 해야될 지역 언론이 ‘노잼 도시 탈출’로 분칠된 개발 논리에 찬동한다. 지역 토착세력과 지방 출신 재경(在京) 엘리트, 민간개발업체, 지자체장 등이 각자의 이득을 위해 뭉칠 때 그들을 견재해야 하는 최후의 보루가 지역 언론이다. 지역 언론이 타당성을 제대로 따지지 않으면 개발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주체는 사실상 없다. 지방의 개발 실패 사례를 가장 많이 축적한 곳이 다름아닌 지역 언론이다. 지역 언론이 구태여 ‘개발이 시급하다’는 구호를 외칠 필요가 있나 싶다. 그렇잖아도 개발 욕망은 언제나 어느곳에선가 들끓고 있다.

지방 사람으로서 지방이 ‘노잼’인 이유는 생애주기마다 누릴 수 있는 취미 활동이 모두 ‘평균’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평균에서 벗어난 취미 활동은 접할 기회조차 없다. 이를 테면 지방에서 에어로빅은 쉽게 배울 수 있을지 몰라도 탱고는 여간해서는 접할 길이 없다. CGV에 가서 영화 <인사이드 아웃2>는 쉽게 볼 수 있지만, 다양성 영화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지방도시에서는 개개인이 내면의 다채로운 취향을 발현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소소하게 모일 기회도 적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작당모의’를 할 일이 없는 도시에서는 서사가 있는 장소 또한 생길 수가 없다. 취향과 서사가 깃들지 않은 장소에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찾아들리 없다.

결국 지방도시는 무엇을 짓고 부수든 노잼을 쉽게 탈출하지 못하는 단서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진정 노잼 도시를 탈출하려면 지자체장은 삐까뻔쩍한 무언가를 짓고 볼 게 아니라, 그 돈으로 지역민들이 갖가지 취향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역민이 저마다 독특한 취향을 하나쯤은 품고 있고, 또 그것을 적극적으로 발현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비로소 외부인들에게 ‘유잼 도시’로 비춰지지 않을까?

장소성이 배제된 관광 시설은 기껏해야 SNS 사진 업로드용으로 반짝 뜨고 사라질 것이 뻔하다. 그것이 ‘노잼 도시 탈출 플랜’이라면 당장 폐기하는 것이 훨씬 낫다.

미디어오늘
content@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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