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기반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회사 큐텐그룹의 산하 업체인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금 미지급 사태가 금융 및 산업계와 소비자로 번지자, 정부와 금융당국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판매자와 소비자의 피해 구제 및 법정 대응을 지원하며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수년간 이어진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지금으로선 자금 조달 외엔 없어서다. 시장에선 이번 사태로 거액의 대금이 물린 중소 업체들의 파산 도미노가 현실화할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그룹을 이끄는 구영배 대표는 아무런 입장도 내놓고 있지 않다. 이번 사태는 지난 11일부터 불거졌다.
◇금감원까지 출동, ‘티메프 사태’ 막을 수 있나
26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관계 부처 긴급 점검 회의를 열고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에 정면 대응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날 카드사 소비자 담당 임원들을 불러 티몬·위메프 사태 관련 소비자 환불 협조를 요청했다. 또 정산 지연 사태 피해자를 위한 민원 접수 전담 창구를 운영하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환불 지연·거절 등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구제 및 분쟁조정 지원을 위해 이날부터 한국소비자원에 전담팀을 운영, 집단 분쟁조정 개시에 착수하기로 했다. 향후 민사 소송도 지원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피해 규모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은 두 업체의 미정산 대금을 최소 1700억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위메프의 경우 지난 11일 기준 491개 판매사에 369억원을 정산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플랫폼에 입점한 판매자(셀러)들이 체감하는 미정산액은 5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지난 5월분 미정산액을 추산한 것으로, 6, 7월 판매분까지 더하면 피해액은 조 단위로 폭증할 전망이다.
이번 사태로 거액의 대금이 물린 중소 업체와 소상공인 등은 하루아침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티몬과 위메프 등 큐텐그룹 플랫폼에 입점한 셀러 업체는 약 6만 개로 추산되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중소 판매자다. 대부분 선정산 대출을 받아 사업을 하는데, 정산 지연으로 이를 제때 못 갚게 되면서 줄도산할 위험에 처했다.
선정산 대출이란 이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한 업체가 판매 대금을 은행에서 먼저 지급받고, 플랫폼이 대금을 정산하는 날 은행이 정산금을 대신 받아 자동으로 대출이 상환되는 상품이다.
티몬에서 전자 제품을 판매하는 한 업체는 이달 티몬으로부터 받기로 한 5월분 정산금 약 10억원을 아직 받지 못했다. 한 소셜미디어(SNS) 오픈 채팅방에는 이런 식으로 발이 묶인 전자제품 중소 업체 관계자가 100명이 넘게 모였다.
티몬과 위메프에서 쌀과 잡곡류를 판매해 온 한 정미소 업체 관계자는 “5억원이 넘는 정산 금액이 세 차례 입금이 밀리더니 이번 사태가 터져버렸다”면서 “우리가 파산하게 되면 상품을 실제 공급하는 농민들도 돈을 받지 못해 피해를 보게 된다”라고 말했다.
◇큐텐도 자본 잠식… 구영배 대표 자금 마련에 주목
사태 해결을 위해선 당장 티몬과 위메프에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티몬은 현재 완전 자본 잠식 상태로, 판매자와 소비자 구제를 위한 자본력이 상실됐을 가능성이 크다. 위메프도 작년 말 기준 유동부채가 398억원으로, 유동자산(617억원)의 5배에 이른다.
하지만 모 기업인 큐텐 그룹의 상황도 좋지 않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큐텐은 2019년 이후 누적 적자가 수천억원에 자본 잠식 상태로 알려졌다. 자본 여력이 부족한 큐텐은 최근 2년간 5개의 플랫폼을 사들이면서 대부분 회사 지분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덩치를 키웠다.
큐텐이 싱가포르 기업청(ACRA)에 제출한 보통주 주주 현황을 보면, 과거 티몬 대주주였던 몬스터 홀딩스가 지분율 25.65%를, 과거 위메프 대주주였던 원더홀딩스가 보통주 18%를 갖고 있다. 창업 당시 구영배 대표와 미국 이베이가 각각 51%, 49%의 지분을 출자했지만, 현재 이베이 지분은 찾을 수 없다. 우선주 주주 역시 대부분 투자 회사들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은 “큐텐의 주주 구성을 살펴보면 현 사태를 공동 책임질 만한 의미 있는 주주가 없다. 이베이와 같은 글로벌 기업만 있어도 자금을 마련할 여지가 있는데 지금은 없어 보인다”라고 했다.
시장에선 큐텐의 최대 주주인 구영배 대표가 어떻게 자금을 끌어내 위메프와 티몬을 살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구 대표는 현재 국내에 머물며 사태 해결을 위한 자금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그가 사재를 출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구 대표는 앞서 2009년 지마켓을 미국 이베이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715억원을 손에 쥐었다.
최악의 경우 티몬·위메프의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계열사가 파산신청을 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파산관재인이 남은 자산을 처분해 투자자와 미수금이 있는 셀러들에게 재배분하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소송을 걸던, 압류를 하던 실질적인 구제에 이르기 위해선 돈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티몬과 위메프에 그만한 자금이 없어 보인다”라며 “구 대표가 돈을 구해와야만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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