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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한 ‘해병대원 특검법안’이 25일 국회 재투표에서 부결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곧바로 수정안을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동시에 ‘김건희·한동훈 특검법’도 추진 중이다. 법조계에서는 한국의 특검 제도가 야당의 정치적 이벤트로 변질됐다면서 이미 오래전 특검법을 폐지한 미국 사례를 참고해 제도 전반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특검 제도는 미국 형사사법체계를 모방해 지난 1999년 제정됐다. 공교롭게도 미국은 1999년 한국이 모방한 특검법안을 폐기했다. 다만 미국도 특검제도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법률을 없앤 대신 법무부 내부 규정으로 바꾼 뒤 극히 제한적으로 운영된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미국이 특검법안을 폐지한 이유는 △삼권분립 위배 △비용 대비 낮은 성과 △극한의 정쟁 유발 세 가지로 요약된다. 무엇보다 국회가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구조 자체가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받아들인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삼권분립에 따라 국회는 입법권을 갖고 수사와 관련한 법률 체계를 만들고, 실제 수사에 대한 권한은 행정부가 갖는다. 마지막으로 수사 결과에 대한 판단은 사법부의 역할인 것”이라며 “국회가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것은 행정부 권한을 침범하고 수사 전반에 개입하는 게 된다. 이런 형태의 특검은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받아들일 때 예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금처럼 야당만 특별검사를 추천하겠다는 것은 위헌적인 발상”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특검법을 폐지한 또 다른 이유는 낮은 성과에 있다. 미국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1978년 특검법을 만든 뒤 1999년 폐지하기까지 총 20번 수사가 이뤄졌는데, 그중 기소된 사건은 4건에 불과하다. 매 특검마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쓰이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실제 1986년 올리버 노스 등의 이란-콘트라 사건의 경우 7년간 수사하며 약 4786만 달러, 우리 돈으로 660억원이 넘게 쓰였다.
한국 역시 특검 때마다 평균 10억~20억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적지 않은 예산임에도 역대 13번의 특검 가운데 성공한 특검은 손에 꼽는다. 특검 도입의 단초가 됐던 1999년 옷로비·한국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의 경우 ‘디자이너 앙드레 김 본명이 김봉남이란 사실만 밝혀졌다’고 할 정도로 평가절하 됐고, 2003년 ‘대북송금 특검’ 때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오너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다.
미국이 특검법을 없앤 또 다른 이유는 극한의 정쟁을 유발했다는 데 있다. 특히 1994년 클린턴 대통령 부부의 화이트워터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이 사건은 클린턴 대통령이 아칸소 주지사이던 시절 부동산 개발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에서 출발했으나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에 모든 관심이 쏠렸고, 결국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
법조계에서는 현재 야당이 추진하는 ‘김건희·한동훈 특검’ 역시 실제 수사가 진행돼도 화이트워터 사건처럼 정쟁으로만 번질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과거에도 잘만 특검에 합의해 놓고 왜 지금은 안 되느냐는 말이 나오는 데 기본적인 상황이 다르다”며 “지금 야당이 추진하는 특검은 여당을 완전히 배제한 형태다. 정부여당이 받을 수 없는 법안을 계속 발의하는 건 제도를 오남용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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