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노골적 금리 인하 압박
경제성장률 회복되자 급해진 마음
중앙銀 독립된 지 이제야 20여년
결과만큼 과정 중요해진 시대정신
한국은행을 향한 정부와 여당의 간섭이 도를 넘고 있다. 통화정책의 방향성을 두고 공자 왈 맹자 왈 식의 원론적인 평론만 내놓더라도 중앙은행에 대한 참견이 지나치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마당에, 이제는 대놓고 금리 인하를 요구하며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민생경제안정특별위원장은 최근 물가와 금리 등 서민경제 현안들을 다룬 회의 이후 “특위 위원들이 한은을 상대로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문을 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모두 발언에서도 “한국개발연구원은 장기적 내수 부진의 주원인이 고금리 장기화라고 지적했고,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소상공인들의 내수 부진 주원인으로 고금리를 꼽고 있다”며 금리 인하에 힘을 실었다.
앞서 성태윤 대통령실 실장은 한 방송에 출연해 “금리 인하가 가능한 환경으로 바뀌어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갈 부분이 있다”고 했다.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은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당대표가 되면 금리 인하 논의를 주도하겠다”고 선언했다.
기준금리가 빨리 내려가길 바라는 정부와 여당의 마음은 십분 이해된다. 경제성장률이 드디어 회복세를 보이는 와중 금리까지 내려간다면 천군만마가 아닐 수 없다. 기왕이면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고 싶다는 얘기다.
하지만 통화정책은 정권의 바람이 아닌 시장의 안정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때로는 절차가 너무 복잡해 답답한 구석이 있을지라도, 우리 법이 한은을 독립 기구로 보장한 이유다. 한은을 면전에 두고 정부·여당이 감 놔라 배 놔라 식으로 공개 발언을 이어가는 건 법치주의 관점에서 월권이며, 중앙은행으로서는 모욕이다.
한은을 둘러싼 정권의 압박에 더욱 민감한 시선이 있을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아픈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한은이 중앙은행으로서 독립된 주체라는 사실은 어느덧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이는 아직 20여년 밖에 되지 않은 일이다. 한은은 1998년 한은법이 개정 시행된 이후에서야 명확한 법적 독립 기관으로 인정받았다.
한때 한은은 정권의 시녀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등장한 대한민국 제3공화국은 출범 직후 한은법을 개정, 중앙은행에 대한 전면 통제를 강화했다. 수출을 중심으로 한 고도 경제성장이란 명분에 한은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독재 정권이 쫓겨난 지 한참 후인 1997년까지도 통화정책 결정 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은 재무부 장관이었다. 그래서 당시 한은의 별명은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였다.
경제성장에 힘을 보태기 위해 금리를 내리라는 정부와 여당의 목소리가 일견 낯설지 않은 까닭은 아직도 이와 같은 과거의 그림자가 남아 있어서일 테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싶은 건 모든 정권의 소망이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고,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중요해졌다.
결국 이런 모든 부담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이 한은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이는 건 조급함의 발로다. 경제성장률의 상승 곡선을 끌어 올리기 위한 무리한 언행이 계속될수록, 뇌리를 스치는 건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의 하강 곡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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