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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폭풍을 뚫고 미래로 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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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들은 구태정치를 배격했다

돌밭 길을 걸어가는 마음가짐을

대통령 탄핵 입맛 다시는 민주당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당선자가 2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에서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자폭 전당대회’, ‘분당대회’라는 대단히 한심한 명칭이 붙여졌다. 후보들 간의 언쟁은 증오심까지 뿜어내는 느낌을 줬다. 사실은 ‘후보들 간’이라고 할 수 없었다. 1대3의 대결이었다. 보기에 따라 후보 한 사람에 대한 이지매였다. 단 한 사람만 대표로 당선되는 선거였다. 한 사람을 떨어뜨리면 세 후보가 다 대표로 당선되는 그런 경쟁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한사코 한 사람을 집중적으로 난타했을까?

① 한동훈 대표는 지난해 12월 26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했다. 집권당을 이끌고 22대 총선에 출정했으나 참패당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6월 23일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입당 6개월도 채우지 못한 신입이었다. 경쟁자들에게는 그를 비난·비판·폄훼, 심지어 폄척(貶斥: 벼슬을 깎아내리고 물리침. 남의 인망을 깎아내리고 배척함) 할 이유로 부족함이 없다고 여겼을 법하다. 오랜 정치경력을 가진 입장에서 신출내기의 도전에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다.

당원들은 구태정치를 배격했다

② 총선을 참패로 이끈(?) 책임자가 바로 당 대표가 되겠다고 나서는 모습에서 격한 반발심을 가졌을 것 같기도 하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비상대책위원장 데자뷔라는 느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③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의 관계가 나빠졌다는 판단이 그에 대한 공격 심리를 부추겼을 수도 있다. 여당 대표 후보로서 대통령의 신임을 잃는다는 것은 치명적 약점이 된다. 이 점을 확실하게 부각하면 당원들의 표심은 아마도 그에게서 떠날 것이라고 여겼음 직하다.

④ 똑똑하기는 하지만 정치를 잘 알기엔 경험이 일천하다.

⑤ 윤 대통령의 총애를 얻어 법무부 장관을 지냈고, 그 바람에 대중적 인기도 얻었지만 뚜렷하게 이뤄놓은 성과가 없다. 그런데도 그가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무섭게 지지자들의 팬덤화가 뚜렷해졌다. 갑자기 부풀어 오른 인기는 정치적 경륜을 앞세운 논리적 공격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고 자신했을 것이다.

⑥ 한 대표 쪽으로 판세가 기우는 것을 진작 파악했으면서도 2차 투표에 기대를 걸었다. 유권자들에게는 이들이 애초에 2차 투표를 위해 출마한 인상을 주었다. 한 대표를 집중 공격, 그 지지세를 꺾어 1차 투표에서 과반 이하로 득표율을 떨어뜨린 다음 차점자를 중심으로 연합해서 승리한다는 전략이었을 듯하다. 어쨌든 이런 전략이었다면 패배를 위한 투쟁이었을 뿐이다. 그런 예가 과거에 없지 않았지만, 이들에겐 연대할 유인(誘因)이 부족했다. 유권자들이 그 연대를 승인하고 따라줄 보장도 없었다.

이들 3인이 정말로 간과한 것은 국민의힘 당원 및 지지자들의 기대와 희망이 ‘미래’였다는 사실이다. 전당대회 유권자들은 총선 패배를 딛고 일어서서 마침내 정권 재창출을 이뤄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자 했다. 아주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표와 희망을 바꾸고자 한 것이다. 여기에 ‘정치적 구세대’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이런 유권자들의 열망을 가벼이 여기고 대표 경선을, 옛날처럼 세력 대결로 인식했으니 패배는 진작 예정됐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돌밭 길을 걸어가는 마음가짐을

3명의 후보가 집권당의 중진다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 것도 패인의 하나였다. 한 대표의 인기가 허상이라고 여겨, 그걸 허물어뜨리는 데 너무 급급했다. 흔히 인용되는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를 조금은 감안해야 했는데 그들은 공격에만 너무 몰두해서 그 부작용을 간과하고 말았다. 집단적 공격은 대중의 거부감을 유발하게 마련이다.

투표 결과는 한동훈 62.84%, 원희룡 18.85%, 나경원 14.58%, 윤상현 3.73%로 한 대표의 압승이었다. 2차 투표에 대한 3인의 기대(윤 후보는 아니었을 수도 있어 보이지만)는 아주 우습게 날아가 버렸다.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 부탁 거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구속영장 기각과 이에 이어진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 ‘김건희 여사 검찰 조사와 관련한 국민의 눈높이 원칙 천명’, ‘대통령실과의 대립각 형성’ 등의 공격은 유권자들의 ‘희망’에 대한 갈구를 이겨내지 못했다. 총선에서 그 참담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한 대표에게서 미래를 보고자 했던 당원과 지지 국민이 다른 이유로 그를 놓아버릴 것으로 생각했다면 그건 오산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한 대표에게 언제나 길이 넓게 열려 있어 줄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돌밭길일 수 있고, 절벽의 잔도(棧道)일 수도 있다. 우선 경쟁했던 후보들과의 관계 개선이다. 개표 결과가 발표되고 서로 손을 잡긴 했으나 선거 기간 중 쌓인 앙금이 깨끗하게 물에 씻겨 내려갈 것은 아니다. 패배자들은 협력자가 되기보다는 반대자가 될 개연성이 높다. 어느 때보다 당의 단합이 요망되는 시기에 사사건건 반발·반대가 표출된다면 당의 경쟁력 강화는 기대할 바 못 된다.

더 큰 난관은 대통령실과의 관계 설정에 있다. 윤 대통령의 리더십은 일방적 주도형이다. 반면에 권력의 기반은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 사실은 이미 레임덕에 빠져 있다고 하겠다. 이럴 때 당이 주도력을 행사하려고 하면 마찰은 불가피하다. 부인 김건희 여사 문제를 둘러싸고도 당과 알력을 빚을 수 있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리더십은 ‘하나’가 되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서로 양보하지 않으면 갈등 구조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 탄핵 입맛 다시는 민주당

윤 대통령은 또 ‘우리는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임을 강조했는데 그냥 쉽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고사야말로 한배를 타고 풍랑에 맞서야 하는 당정관계를 아주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중국 춘추시대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늘 적대적 관계에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이 한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을 만나면 필사적으로 도울 수밖에 없다. 이런 이치를 당정의 구성원 모두가 깨닫고 함께 실천할 의지에 차 있어야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거대 민주당과 그 주위를 돌며 덩달아 추임새꾼 노릇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조국혁신당 및 여타 야당들의 특검·탄핵 공세는 갈수록 심해질 게 뻔하다. 요즘 와서는 윤 대통령 정부를 조기에 종식시키고 정권을 잡으려는 욕망을 주체 못하는 인상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추억에 입맛 다시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여당의 지위에서 밀어낸 새천년민주당,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홀대한 집권당 내의 비박(非朴) 세력에 의해 탄핵소추를 당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흔들어 대면 대통령 탄핵소추가 가능하다고 계산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통령 탄핵과 좌파적 개헌을 저지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것 말고는 달리 길이 없다.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습니다. 폭풍을 두려워하며 바라보는 일은 더욱 옳지 않습니다. 제가 당 대표로 있는 한 결코 폭풍 앞에 여러분을 앞세우지 않겠습니다. 제가 새로 선출된 지도부와 함께 스스로 폭풍이 되어 여러분을 이끌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폭풍을 뚫고 미래로 갑니다.”

한 대표는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천둥 번개가 되고 폭풍이 되어 난관을 뚫고 나아가겠다는 기개는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당의 단합, 당정 일체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폭풍을 일으킬 동력도, 폭풍을 뚫고 미래로 갈 추진력도 생겨날 수가 없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라고 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알지만 아무나 실천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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