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계열사간 분할합병이 꼼수 논란에 휩싸였다. 두산그룹이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 두산밥캣을 떼어내고 두산로보틱스에 합병시키는 ‘사업구조 개편안’으로 대주주를 배불리는 대신 개인 투자자들의 이익을 희생시켰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이 이르면 오는 2025년 상반기를 목표로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을 추진한다.
앞서 두산그룹은 7월 11일 클린에너지, 스마트머신, 반도체첨단소재 등 3대 축으로 한 사업구조 개편안을 내놨다.
이중 스마트 머신 부분에서 두산밥캣은 현재 모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인적분할해 포괄적 주식교환을 거친 뒤 두산로보틱스의 완전 자회사가 되는 내용을 발표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 지분 46%와 일반 주주가 가진 54%를 두산로보틱스에 넘겨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만드는 방식이다.
두산그룹은 사업구조 개편 이유로 경영 효율화, 스마트 머신 사업 강화를 들었다. 하지만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주식교환 비율이 논란됐다. 양사 주식교환비율은 두산밥캣 1대 두산로보틱스 0.63으로 두산밥캣의 1주가 로보틱스 0.63주로 바뀌게 된다.
두산밥캣은 영업이익 1조원, 순자산 6조원에 달하는 두산그룹의 알짜 회사다.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2015년 설립 후 내내 적자였다.
양사의 실적은 차이가 크지만 시가총액은 비슷하다. 양사 시총은 사업구조 개편안을 발표한 7월 11일 기준 두산밥캣 5조2130억원, 두산로보틱스 5조5291억원이다. 이를 근거로 두산은 양사 주가 수준을 바탕으로 합병 비율을 정해 현행법을 따랐다는 입장이지만 두산로보틱스가 고평가된 상황에서 새우가 고래를 삼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행법에는 상장사 간 합병 시 합병가액을 주가만 기준으로 계산하도록 한다. 이에 따라 자산·수익 가치 등과 무관하게 합병가액이 정해진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는 7월 22일 ‘두산그룹 사례로 본 상장회사 분할합병 제도의 문제점’ 세미나를 열고 “두산의 분할·합병 등 자본거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최악으로 이용한 사례를 만들었다”며 “핵심은 두산로보틱스의 과도한 고평가를 이용한 것이다. 매출만 봐도 183배 차이나는 두 회사의 기업가치를 1대1로 동일하게 보는 합병을 가능하게 하는 법제도가 세계 어느 나라에 있을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두산그룹이 주식교환 방식으로 사업구조 개편에 나서며 별다른 자금 조달 없이 그룹 내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알짜 계열사 두산밥캣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게 된다.
두산그룹의 현재 지배구조는 ㈜두산→두산에너빌리티→두산밥캣으로 이어진다.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가 합병하면 ㈜두산의 두산밥캣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은 기존 13.8% 수준에서 42%로 상승이 예상된다.
이럴 경우 ㈜두산이 두산밥캣의 대규모 배당을 받을 수 있어 ㈜두산의 수익성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 ㈜두산의 합병 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42%일 경우 650억원 수준의 배당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 때문에 개인 투자자들의 이익을 침해하면서 지배력을 높인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업구조 개편 계획이 두산 오너가 4세 박인원 두산로보틱스 사장에 힘을 싣기 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의 3남인 박인원 사장은 2022년 말 사장에 승진하며 두산로보틱스 대표를 맡게 됐다.
이번 계열사 분할합병이 성사되면 박인원 사장은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두산밥캣에 힘입어 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다. 이를 통해 박인원 사장이 경영능력을 입증하고 그룹 내 후계 구도에서 더욱 입지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논란이 된 이번 분할합병 방식은 두산 일가 특유의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1997년 OB맥주와 두산음료 합병 추진 당시에도 합병 비율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OB맥주는 3년간 2500억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한 자본잠식 위기에 처한 기업이었다. 반면 두산음료는 수천억원의 현금 유입이 예정된 우량 기업으로 평가받았다. 두산음료가 OB맥주에 흡수합병될 당시 합병 비율은 1대1.15로 두산음료 1주당 OB맥주 1.15주가 됐다. 당시에도 두산음료 주주들은 소액주주들의 이익 침해라는 반발이 거셌다.
두산의 꼼수 사업구조 개편 논란은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두산밥캣 사태를 계기로 최근 상장법인에 대한 공정한 합병가액 산정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자산수익가치 등을 종합 고려해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산정된 공정한 합병가액을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 의원은 “공정한 합병가액 산정책임을 강화하고 계열사간 합병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두산밥캣 사태’ 같은 불공정한 합병비율로 소수주주들이 피해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번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고 설명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 역시 7월 22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두산그룹의 사업구조 개편 논란에 대해 “시장의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선 이를 추진하는 기업에서 주주에 대한 소통 노력이 있어야 한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성은 기자 se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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