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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떠난 병원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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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수련병원을 떠난 지 140일이 넘었다. 남은 병원 노동자들은 과중한 업무로 고통받고 있다. 환자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 의정갈등 장기화에 따른 의료공백이 현장에 미친 영향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소속 병원 노동자들의 글을 통해 전한다. 편집자

저는 지방 사립대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입니다.

3년 전, 예고 없이 찾아왔던 코로나19는 수많은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했습니다.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코로나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으나, 코로나 전담병원들은 지금 경영 위기, 임금 체불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 2월, 정부가 발표한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대하며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의료현장을 떠나 ‘의료 공백으로 인한 대란’이 발생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병원에 의사가 부족해 아픈 환자가 제대로 된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응급이 아니면 진료받을 수 없고, 치료를 받기 위해 수용 가능한 병원을 찾아 뺑뺑이 하듯 헤매는 환자들이 매일 수 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의사가 없어 진료를 볼 수 없는 병원 현실에 분노한 환자들의 감정은 오롯이 병원 노동자에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이후, 전공의들의 업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간호사가 의사 업무까지 대신해야 했습니다. 그동안 수련병원이라는 이유로 부족한 전공의를 대신하여 PA(Physician Assistant, 진료지원) 간호사가 이미 의사 업무를 대신해 왔는데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간호사의 업무는 너나 할 것 없이 더 가중되었습니다.

병원장 책임 하에 이루어진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한시적 PA(전공의 복귀 전까지만 PA업무를 함), 공통 PA(동의서 받는 업무와 환자·보호자에게 설명하는 업무만 전담함)’ 등 업무 재조정에 대한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병원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힘들다 말하지 못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진 부족 현상은 갈수록 심해졌고, 진료부 교수들도 전공의 대체 업무에 번아웃(burnout)되어 서로 예민해져 가는 가운데 직종 간의 갈등만 남은 혼란스러운 상황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간호사 본연의 업무, 그리고 의사를 대신한 추가 업무들로 하루하루 지쳐가고 있는 가운데 왜 이런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지 화나는 감정들이 한순간에 몰려옵니다.

의료 공백 장기화로 환자들은 ‘의사가 부족한 병원’, ‘진료와 치료를 할 수 없는 병원’이라며 서서히 병원을 떠났습니다. 이는 병상가동률 감소, 수술 건수 감소, 외래 환자 수 감소로 이어지며 ‘수익을 내지 못하는 병원’이 되어 심각한 적자 상태로 이어졌고 열심히 일하던 우리들의 생계인 한 달 급여 지급이 불안정한 위기 상황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정부와 한 집단의 이기심으로 인한 갈등은 열심히 잘 다니던 직장을 한순간 위기로 몰아 무너뜨렸습니다. 하루아침 심각한 적자 상태가 된 직장은 노동력의 대가인 임금조차 지불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누구의 잘못으로 이 사태가 벌어졌는지. 그리고 병원을 살려보고자 애쓴 우리가 왜 이렇게 극심한 피해와 고통을 입어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 누구도 대화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본인들의 기득권과 자존심만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싸움에 나와 내 가족이 괴로워야 하며,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져야 하는지 답답합니다.

의사가 부족해 떠난 환자들의 공백은 너무나 컸습니다. 병상 가동률은 바닥을 쳤고, 환자가 없으니 우리는 눈치 보며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명 어제는 부서에서 필요 인력, 필수 인력이었는데 환자가 없는 지금 ‘잉여 인력’이 되었고, 개인 일정, 개인 휴가는 전혀 고려되지 못한 채 환자 수에 따라 눈치를 보며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나의 개인 연차 휴가는 자율이 아닌 강제 휴가가 되어버렸습니다.

부서의 결원이 있어도 인력 충원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누군가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쉼 없이 업무를 해야 했습니다.

결원이 대체되지 못한 부서에서는 한 사람이 2인, 3인의 역할을 해야 했고, 내 업무가 아니더라도 매일 주어지는 업무를 교육이나 지침 없이 수행할 수밖에 없는 일용직과 같은 삶 속에서 그동안 지켜왔던 모든 근로 조건들이 깨지는 억울함과 함께 비참함도 느꼈습니다.

계속되는 근무로 인한 과도한 피로와 스트레스 누적은 나와 환자의 안전에 위협을 가하고, 번아웃 상태로 이끌어 결국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를 초래할 것이 분명합니다.

의료원은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했습니다. 함께 이겨내기 위해 자율적 무급휴가 방안을 수용했습니다. 무급휴가로 인한 임금 손실은 금전적 어려움을 가져왔고 매달 생계가 불안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당장 다음 달 급여가 걱정되고 아픈 부모님, 아이들을 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유지를 걱정해야 하는 내 모습이 너무나 절망스럽습니다. 이 사태를 가져온 모두를 원망하고 싶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은 이미 터졌고 그 속에서 병원 노동자들은 피 흘리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책임져 줄 수 있을까요?

의료공백과 이에 따른 병원의 재정적 압박은 ‘고용불안정’이라는 불안감으로 다가옵니다. 조기 퇴직이라는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은 남아 있는 직원들의 사기와 업무 효율성을 떨어뜨렸습니다. 갑자기 빠진 인력을 대체하지 못해 여기저기 타 부서 근무를 하며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지원해야 하는 또 다른 위기 상황을 감내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

직원들은 그동안 누렸던 복지혜택이 줄어들더라도 힘든 상황을 이해하며 함께 이겨내기 위해 다 같이 허리띠를 졸라매 보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매달 수십 억의 적자를 기록하며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사립대학병원 운영 상황은 한계 상황, 병원의 존폐 위기에 처해 있는 실정입니다.

당장 다음 달의 급여, 그리고 나의 고용유지를 고민해야 하는 생계의 기로에서 우리는 많은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언제 답할 수 있을지 모르는 질문을 해봅니다.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왜 이런 피해를 고스란히 남아 있는 우리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하는가.

의정갈등으로 빚어진 이 사태는 근본적인 해결책, 장기적인 대안으로 조속히 타개되어야 합니다.

살얼음판 위에 선 사립대 수련병원의 경영 위기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고 있는 병원 노동자들의 영혼까지 불태운 희생과 배려가 있었음을 누구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한 대형병원 수술실 인근에서 의료진이 인큐베이터와 이동하고 있다(사진은 본 글과 무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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