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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헌법재판소로부터 매우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필자가 속한 법무법인에서 수행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친족상도례를 규정한 형법 제328조 제1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문제가 된 친족상도례 규정의 내용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간’에서 일어난 재산 범죄(사기, 횡령·배임, 절도, 권리행사 방해 등)는 형을 면제한다는 것이다.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고대 로마의 법원칙에 기원을 둔 것이기도 하고 ‘집안의 일은 가장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라는 가부장적 정신의 유산이기도 하다. 이는 형법이 제정된 1953년부터 있었던 조항이다. 당시에는 위헌이라고 볼 여지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가족은 하나의 경제공동체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처벌할 만한 재산범죄가 일어날 것이라고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71년이 지난 지금은 가족의 개념은 너무나도 달라졌다. 부모와 자식 간이나 형제 간에 벌어지는 일들도 이제는 처벌되어야만 피해자에게도 그리고 사회구성원에게도 납득이 되는 그런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선 4월에는 유류분 조항이 헌재의 철퇴를 맞았다. 유류분 조항은 고인의 유언과 관계없이 유족들이 유산의 일정 부분을 상속받을 권리를 규정한 것이다. 유류분 조항은 민법이 1977년 12월 31일 개정되면서 처음 도입된 조항이다. 당시에는 해당 조항도 위헌이라고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가족의 재산을 일정 부분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정신이 도전 받을 일은 많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가족의 재산을 독점하려는 사람이 경계를 받을 필요가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고인에 대해서 아무런 법적 의무나 인간적 도리도 하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가족이라는 이유 만으로’ 그 재산의 일부를 받아가는 것이나, 형제·자매까지 그 재산의 일부를 받아가는 것이 이제는 납득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요컨대 세상이 바뀌었고, 헌법에 부합하던 법들이 이제는 헌법에 어긋나게 됐다. 즉, 법은 한 번 정당성을 얻었다고 해서 영원히 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의 삶이 변하는 만큼 법이 따라 변하지 않으면 법은 그 정당성을 잃을 수 있다. 법률가들은 때로는 법의 해석을 통해 법을 삶에 맞도록 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해석의 범위를 넘어 법이 어긋나 있게 되면 입법을 통해 개정하거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선언을 기다리게 될 수 있다. 법률가들의 사명 가운데 하나는 법이 우리 삶에 잘 어울리도록 해 법의 규율 안에 있는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를 잃지 않게 하고 의무를 준수하게 하는 것에 있다.
정의를 위한 의지가 있다면 굳은 법 앞에서 주저앉을 필요가 없다. 과감하게 변호사의 손을 잡고 헌법재판소의 문을 과감히 두드리자. 바뀌어 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우리 국민의 건전한 의식이 바로 헌법의 정신이다. 그 헌법의 정신을 법에 비추어 줄 책무는 바로 우리 국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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